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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총총 맥심 총총 !!

에세이 09

by 정숙



별 총총 맥심 총총!!


총총히 떠 있을 밤하늘의 별을 그리며 계획했던 2012년도 맥심문학 기행을 떠나는 날, 버스에 한가득 총총 문우들을 싣고 영양 두들마을로 향했다. 도심을 벗어나자 비릿한 밤꽃 냄새가 코끝에 들이쳤다.


비로소 내가 어디론가 사유의 자유를 찾아 떠난다는 기대감에 마음이 한껏 부풀었다. 몇 년 전 내가 독일에서 이탈리아로 가는 국경선 어디쯤에서 복숭아꽃 향기의 마법에 걸려들었던 것처럼 초록의 바다를 유영하는듯했다.


가는 길에 안동 원촌리의 이육사 문학관을 찾았다. 이육사는 퇴계 이황의 14대 손이다. 강직한 저항성의 퇴계학풍을 이어받은 집안의 인물답게 항일 투쟁과 독립운동의 선봉에 선 작가이다.


그의 생애를 영상으로 감상하고 난 뒤 무남독녀인 이옥비여사가 단아한 한복차림으로 강단에 올랐다. 그 당시 베이징 일본총영사관 감옥에서 아버지의 마지막 순국을 증언하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문학관을 둘러본 나는 그의 묘소와 옛 집터에 세워진 청포도 시비를 감상하고 문우들과 함께 도산서원을 찾았다. ‘매화에 물을 줘라” 퇴계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다. 추위 속에서도 어김없이 꽃을 피우는 지조와 절개 때문이었을까,


시사단이 바라보이는 도산서원 앞마당 언덕아래에는 퇴계선생의 청청한 기개를 닮은 청매 한 그루가 자라고 있었다. 안동댐 수몰로 송림이 사라진 인공 섬에 조선시대 지방별과를 보였던 기념으로 세워진 비각이 시사단이다.



매화, 매화에 물을 줘라!



정조대왕께서 퇴계선생의 유덕을 추모하여 1792년 관원 이만수를 도산서원에 보내어 임금의 제문으로 제사를 지내게 하고 그 다음날 이곳 송림에서 어제御題로 과거를 보았는데 응시자가 7천명에 달했다고 한다.


도산서원 전교당 앞에 섰다. 서재로 쓰였던 박약재와 홍의재, 광명당이 한눈에 들어왔다. 단정하면서도 검소하다. 툇마루에 총총히 올라앉아 해설사의 말에 귀를 쫑긋 세운 맥심문 우들의 눈빛이 별처럼 총총하다.


꽃잎을 떨군 모란위로 유생들의 글 읽는 소리가 바람결에 묻어오는 듯 했다. 안동은 유교문화의 전통을 지켜왔던 선비들의 체취가 오롯이 남아있다. 그 중심엔 퇴계와 도산서원이 있다.


안동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고택들조차도 퇴계의 흔적들이다. 퇴계와 그의 제자들이 주도해왔기 때문이다. 유성룡의 병산서원, 김성일의 의성김씨 종택, 광산김씨 종택과 예안향교 등. 이 지역에 남아있는 서원, 서당만도 40곳이 넘는다. 고매한 품격을 갖춘 선비들의 삶을 다시금 되새겨보았다.


이육사 문학관과 도산서원 관람을 끝내고 사십여 분을 달렸을까 유교문화의 본거지인 안동에 왔으니 헛제사밥으로 이른 저녁을 먹기로 했다. 타지방 사람들에게는 낯설은 상어고기로 만든 돈배기 산적이며 탕,


갖가지 나물과 떡, 과일을 놋그릇에 정갈하게 담아 내고 그 분위기도 마치 가족 친지들이 모여 차례를 지내고 음복하는 분위기였다. 헛제사밥의 후식으로 내어 온 붉은 고춧가루 국물에 생무를 잘게 썰어 넣고 삭힌 안동식혜가 별미중에 별미였다.



광산문우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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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 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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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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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당겸 사랑채



한 시간 남짓 달렸을까 광산문우가 있는 두들마을 어귀에 들어서니 한 눈에 보기에도 양반들의 멋과 품격이 느껴졌다. 여장을 풀기 위해 짐을 챙겨 병암 고택문간에 들어서니 오래 떠나와 있던 고향집 문간을 들어서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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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방이라도 돌아가신 할머니가 댓돌 위의 하얀 고무신을 끌며 두 팔을 벌려 ‘아이고 내 강새이’ 하며 꼭 안아줄 것만 같은 할머니의 체취가 대청마루 밑에서 풍겨 나왔다.


최근 기사를 통해 알게 된 슬로우시티가 바로 이런 곳이 아닐까? 삶에 찌든 도시인들에게 잠시나마 문명을 벗어나 자연과 더불어 달팽이처럼 느리게 살아가는 법을 체험해 보는 것.


내면에 품고 있는 자신과의 만남을 통해 진정한 삶의 의미를 짚어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러웠는지. 그날 밤 여지없이 언덕 위의 마을이란 이름을 가진 두들마을 밤하늘엔 총총히 별이 쏟아져 내렸다. 참 오래도록 머물고 싶은 밤이었다.


마을의 제일 높은 언덕에 자리 잡은 광산문우 匡山文宇는 이문열 작가의 경기도 이천 부악문원에 이어 두 번 째로 문을 연 문학연구소이다. 학사와 강당 사랑채 서재 또 안채에 딸린 대청과 식당 그리고 정자가 있는 ㅁ자모양의 한옥 구조이다.


심상 대소설가와의 한담閑談시간을 마련한 강당에 들어서자 마치 몇 백 년은 거슬러 궁궐에라도 앉아 있는 듯 착각을 일으켰다.


이튿날 새벽 나는 산책을 나섰다. 이 마을은 퇴계선생의 학맥을 이은 석계 이시명 선생이 병자호란이후 세상과 연을 끊고 정부인 장계향과 이 마을에 터를 잡았다고 한다. 그 밖에도 퇴계학문을 이어받은 여러 학자와 독립운동가 항일시인 등 현존하는 작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인물을 배출한 마을이다.


석계고택을 지나 석천서당에 이를 쯤 유년시절 이곳에서 한문공부를 했다는 이문열작가의 추억담도 생각이 났다. 생가를 돌아 음식디미방 전시장에 들렀다. 음식디미방은 340여 년 전 정부인 장계향이 양반가의 숱한 손님을 맞이하면서 터득한 과학적이고 지혜가 담긴 요리에 대한 서책이다. 이문열 작가의 13대조 할머니이기도 하다.


나는 두 해 전 이문열 작가의 초대로 일행들과 함께 이곳을 다녀간 적이 있다. 작가를 가까이에서 대하다 보니 작가의 인간적 고뇌가 깃든 숨결과 소탈함에 참 편안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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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은헌 아래 작은 연못



이튿날 아침 떠나려는 우리들에게 배웅하려다말고 수줍은 듯 사모님이 이층 누각의 정자로 안내하였다.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정자를 자랑하고 싶으신 게다. 그 때 이문열 작가가 정자에 대한 내력을 들려주었다.


이 정자의 이름은 사모님의 호를 따서 ‘자은헌’이라 하고 자색이 숨어있는 마루라는 뜻인데 ‘자색’은 불가에서 아주 길상스러운 색깔로 불상의 붉은 금빛을 가리킨다.


사람에게도 일생에 한 두 번은 아주 기쁜 일이 있을 때 얼굴빛이 자색으로 비친다하니 이곳은 큰 환희와 기쁨이 서려있는 곳을 의미한다. 작은 연못에는 청동자라 한 마리가 띄워져있다.


정자를 지을 당시 높은 지대임에도 불구하고 자라 한 마리가 느닷없이 나타났다고 한다. 상서로운 징조라고들 해서 지리학과교수(최**)에게 자문을 구한 결과 그 곳에 연못을 파면 분명 물이 있을 거라 해서 그 때 만들었다고 한다.


그 자라는 숲으로 돌려보내고 대신 형상을 만들어 띄웠으며 사모님께 생일선물로 이 정자를 바쳤노라고 했다. 산 중턱 작은 연못이지만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마르지 않는 게 참 신기하다고 했다.




이튿날 동해로 달리는 버스 안, 모두들 신이 나는 모양이다. 앞자리에서 나는 여유롭게 차창을 내다보았다. 밤잠을 설친 문우들은 오수 삼매경에 빠졌고 어느새 영덕대게 간판이 확대되어 들어오며 눈을 번쩍 뜨게 했다.


멀리 바다가 보이는 이층 건물에 자리 잡은 우리들은 뜻밖의 호사를 누리며 포효하듯 살찐 홍게의 다리를 마구 뜯기 시작했다. 호사를 누리고 나니 하늘을 찌를 듯 표적 없는 질주가 시작 되었다.


탁 트인 동해바다를 끼고 마냥 달리고만 싶은 사람들, 바람도 새소리도 길가의 파릇한 잎새들도 모두가 총총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안타깝게도 몇 해 전 두들마을 광산문우가 방화로 소멸되어 가슴이 무너지는 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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