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11
두들마을을 나서려니 갑자기 날씨도 수선스럽고 일정이 바쁜 일행들마저 떠나고 나니 인원이 단출해지자 인솔자가 제안을 했다. 병산서원을 접고 그 대신 점심은 영덕대게로 쏘겠단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모두들 총 맞을 자세를 하며 환호성을 질렀다.
아무래도 병산서원은 여름풍경이 제격인 것 같다. 몇 년 전 나는 배롱나무 꽃이 지천으로 핀 병산서원을 다녀왔다. 안동의 풍악서당을 서애 류성룡 선생이 병산으로 옮기면서 이름을 바꾸었고,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서당을 중건하고 서애 류성룡 선생의 위패를 모시는 존덕사를 건립하면서 병산서원이 되었다고 한다.
특히 자연경관이 빼어난 병산서원은 유생들이 한자리에 모여 풍류를 즐기며 행사를 하던 만대루가 유명하다. 그 때 우리들도 만대루에 둘러앉아 병풍처럼 둘러친 병산과 어우러져 한 눈에 굽이쳐 흐르는 낙동강의 백사장 풍경을 배경으로 시낭송회를 열기도 했다.
당시 유교적 대표의 건축물로서 현재도 유림은 선생의 학덕을 기리고 추모제를 지내고 있다. 무엇보다 나의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있는 것이 있다. 격조 높은 건축물 한 귀퉁이에 생뚱맞게 토담으로 지은 노천 통싯간이다. 시골에서 자라서인지 그 때의 정겨움이 아직도 생생하다.
두 대의 승용차가 영덕으로 향해 질주했다. 지휘소통이 한결 가뿐해졌으니 모두들 신이 나는 모양이다. 뒷자리에서 나는 여유롭게 차창을 내다보며 단체장을 맡고 있는 문학회에서 곧 있을 문학기행코스를 구상해 보기로 했다.
내 의도대로라면 삶에 찌든 도시인들에게는 잠시나마 문명을 벗어나 고적한 곳에 머물면서 자신과의 만남을 위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싶어서다. 최근 기사를 통해 알게 된 청송 슬로우시티가 바로 그런 곳이 아닐까,
어느 계절에 찾아도 신기하고 아름다운 주산지도 다시 가보고 싶은 곳이다.
밤잠을 설친 일행들은 오수 삼매경에 빠졌고 어느새 영덕대게 간판이 확대되어 들어오며 눈을 번쩍 뜨게 했다. 멀리 바다가 보이는 이층 건물에 자리 잡은 우리들은 뜻밖의 호사를 누리며 포효하듯 살찐 대게의 다리를 마구 뜯기 시작했다.
호사를 누리고 나니 하늘을 찌를 듯 기세등등하여 표적 없는 질주가 시작 되었다. 탁 트인 동해바다를 끼고 마냥 달리고만 싶은 사람들, 바람도 새소리도 길가의 파릇한 잎새들도 모두가 가슴으로 파고들어 출렁거렸다.
어느덧 정신없이 달리다보니 정동진까지 와버렸다. 정말 오랜만에 와 본 곳이다. 고운 모래사장을 걸으며 청춘의 한 때를 돌아보고 파도치는 바위에 걸터앉아 기념사진도 찍었다. 우리들은 노천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순간의 질주에 마냥 즐겁기만 했다.
건축가 류춘수 /작품 한계령 휴게소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내친김에 류춘수선생의 작품인 한계령휴게소에서 저녁을 먹기로 의기투합하고 한계령으로 차를 몰았다. 산새가 험한 고갯길을 반 쯤 올랐을 때다. 갑자기 짙은 구름이 몰려와 비를 뿌리는 듯 싶더니 함박눈으로 변해버렸다.
시야는 분간할 수 없었고 날은 저물었다. 겨우 휴게소에 닿았을 땐 바람마저 거세게 몰아쳤다. 겁에 질린 우리들은 간단한 간식거리만 사들고 한계령을 내려와야만 했다. 쌓인 눈은 얼어서 빙판이 되었고 가로등도 없는 암흑천지였다.
올라올 때와는 달리 내리막의 꼬부랑길은 허방이었다. 아무런 장비도 없이 운전대를 잡은 인솔자는 침착하려 애를 쓰지만 긴장감은 더했다. 가다 멈추다를 반복하며 혼비백산하여 지상으로 내려와 보니 아무 일도 없는 듯 고요했다. 인제의 어느 휴게소에서 뜨끈한 국밥 한 그릇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며 늦은 저녁을 때웠다. 우리들은 그 때, 그 베추모의 질주를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