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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씁쓸한 행진

제2부 시베리아에 빠지다 13

by 정숙


온돌아궁이가 발견된 두만강 조선 곡谷은 강제이주 전 고려인들이 살던 곳, 산에 오르면 가슴 뻥 뚫리는 동해요. 울창한 숲에는 치밀하고 담대하나 포효치 않는 엄숙한 풍모의 암컷호랑이가 극진한 모성애로 삼남매를 키웠다. 새끼들이 다 자랄 무렵 어미가 밀엽꾼 총에 죽고,





큰딸은 내륙사슴계곡에 터를 잡아 새 가정을 꾸렸지만, 어미의 땅을 물려받은 아들이 한 달 만에 올가미에 또 목숨을 잃었다. 태반의 영역이라 포기할 수 없는 걸까. 다시 작은 딸이 그 땅을 물려받아 두 아들을 키웠으나 불행은 끝나지 않았다.




벌목과 밀엽 숲은 점점 사라지고 먹이사슬이 고갈된 짐승들이 해동기를 맞아 동해로 몰려드는 길목 밀엽꾼이 출몰하기 일쑤, 먹잇감을 놓고 싸우다 동생을 잡아먹기까지 했다. 여럿 암컷을 거느리고 이 지역을 지키는 왕대아빠가 있지만 호랑이는 각자 영역에서 홀로 살아가는 습성이라 묵묵히 순찰을 돌 뿐이다.





사슴계곡 눈밭 큰딸가족 남매는 햇볕 쬐기를 하며 은밀하고 평화로운 한 나절을 보내고 있을 때, 작은 딸은 그날 밤 새끼 하나를 가슴에 묻고 절룩이는 큰 놈을 채근하며 어디론가 눈 길을 떠나는 참 씁쓸한 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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