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시베리아에 빠지다 14
제피나무 애벌레가 껍질을 벗고 훨훨 날아오르는 호랑나비를 보았지. 오로라의 섬광처럼 밤하늘을 번득이는 도시의 불빛을 봤을 때도 같은 느낌이었어. 내가 모르는 또 다른 세상, 나는 밤마다 어디론가 달아나는 꿈을 꾸었지. 종달새 울음을 쫒아 형산강 둑에 섰을 때 간밤에 달아났던 그 길이 보였어.
그림처럼 펼쳐진 들판 강가에는 온통 사과밭이라 부자마을로 꼽히지만 나는 그들의 그늘이 두려웠고, 가로막힌 산이 호리병속 같아 숨이 막혔어. 어른들은 범울리, 아이들은 호명리라고 해. 이발소와 점방이 있는 공굴담은 마을의 입이자 항문이야.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듯 산에 오르는 일 빼고는 이곳을 통해야하거든, 고향 길 아버지가 마중 나오고 어머니가 배웅해 주던 곳.
공굴담 간이 정류장
살을 발라낸 횅한 능선 가시 돋친 고향의 굽은 등뼈, 언 손 비비며 따라 나서는 내 어린 날의 초상, 아득한 세월이 버겁다며 종종 안부를 물어오던 눈이 슬픈 그 아이가 두고 간 짧은 생애, 뒷동산 굽은 능선이 낯설게 다가온다. 떠나오는 간이정류장 나를 업어 키운 등뼈 마디마다 깊어가는 고향의 주름살 위로 눈꽃이 핀다. 죽어도 다시 태어날 그 뼈 속에 나를 함께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