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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규 Sep 06. 2024

가릴 간(柬)에서 파생된 한자들

정제하다, 가로막다

한자는 수천년의 역사를 지닌 문자이기 때문에, 지금은 서로 다른 음인 한자들이 옛날에는 같은 음인 경우가 있다. 그 예 중에 하나가 《설문해자》에서 잔물결 련(漣)의 본자로 제시하는 물결 란(瀾)이 지금은 서로 다른 글자인 것이다. 漣은 성부로 이을 련(連)을 쓴 것이고, 瀾은 가로막을 란(闌)을 쓴 것이니 옛날에는 두 한자의 음이 비슷했을 것을 암시한다.

瀾의 성부인 闌은 현대에 거의 쓰이지 않으나 난간 란(欄)이나 난초 란(蘭) 등의 성부로 활용되고 있는데, 이 글자도 형성자로 문 문(門)이 뜻을 나타내고 가릴 간(柬)이 소리를 나타낸다. 이번 글에서는 柬에서 파생된 한자들을 살펴보자.

柬은 얼른 보기에도 동녘 동(東)이나 묶을 속(束)과 비슷해 보이는데 실제로도 연관이 있다. 束은 나무를 줄로 묶어 놓은 모습을 본딴 문자고, 柬은 이 안에 점을 두 개 찍은 모습이다.

왼쪽부터 주나라 초기 금문, 전국시대 진(晉)계 금문, 초나라 간독 문자 2종, 설문해자 소전. 출처: 小學堂

《설문해자》에서는 이 두 개의 점을 '나누다'를 뜻하는 여덟 팔(八)로 보아, '구별하여 나눈 대쪽'이라 해서 '분별하다'를 뜻하는 글자로 해석했다. 최근에는 두 개의 점이 八과는 거리가 있다고 보아, 금문에서 비슷하게 생긴 향풀 훈(熏)과 연관해 해석하는 설도 나왔다. 금문에서도 柬을 熏으로 해석해야 하는 용례가 있다.

향풀 훈(熏)의 금문. 출처: 小學堂

熏과 柬을 비교해 보면 熏은 점이 4개, 柬은 점이 2개 있다. 주머니에 넣어 둔 향풀 조각들에 주목하는 것이 熏이며, 향풀을 가려 뽑아 주머니에 넣어 둔 행위에 주목하는 것이 柬에 해당한다.

가릴 간(柬, 어문회 준특급)에서 파생된 한자들은 다음과 같다.  

柬+手(손 수)=揀(가릴 간): 간택(揀擇), 분간(分揀) 등. 어문회 1급

柬+木(나무 목)=楝(멀구슬나무/소태나무 련): 연엽적(楝葉炙), 고련자(苦楝子) 등. 급수 외 한자

柬+火(불 화)=煉(달굴 련): 연유(煉乳), 연탄(煉炭) 등. 어문회 2급

柬+糸(가는실 멱)=練(익힐 련): 연습(練習/鍊習), 세련(洗練/洗鍊) 등. 어문회 준5급

柬+言(말씀 언)=諫(간할 간): 간언(諫言), 사간(司諫) 등. 어문회 1급  

柬+金(쇠 금)=鍊(쇠불릴/단련할 련): 연단(鍊鍛), 훈련(訓鍊/訓練) 등. 어문회 준3급  

柬+門(문 문)=闌(가로막을 란): 난문(闌門), 흥란(興闌) 등. 어문회 특급

柬+魚(물고기 어)=鰊(청어 련): 연란해(鰊卵醢), 은연어(銀鰊魚) 등. 급수 외 한자

䦨에서 파생된 한자들은 다음과 같다.  

闌+巾(수건 건)=幱(내리닫이 란): 난삼(襴衫/幱衫), 금란굴(金幱窟) 등. 급수 외 한자

闌+手(손 수)=攔(막을 란): 난조(攔阻), 좌차우란(左遮右攔) 등. 급수 외 한자

闌+木(나무 목)=欄(난간 란): 난간(欄干/欄杆), 본란(本欄) 등. 어문회 준3급

䦨+水(물 수)=瀾(물결 란): 난한(瀾汗), 파란(波瀾) 등. 어문회 1급

䦨+火(불 화)=爛(빛날 란): 난상(爛商), 찬란(燦爛/粲爛) 등. 어문회 2급

闌+玉(구슬 옥)=瓓(옥빛 란): 이희란(李熙瓓) 등. 어문회 특급

䦨+艸(풀 초)=蘭(난초 란): 난초(蘭草), 목란(木蘭) 등. 어문회 준3급

闌+衣(옷 의)=襴(내리닫이 란): 난삼(襴衫/幱衫), 수란(繡襴) 등. 급수 외 한자  

柬에서 파생된 한자들.

柬에서 파생된 한자들은 가려 뽑아 정제한다는 뜻을 지닌다.

揀(가릴 간)은 手(손 수)가 뜻을 나타내고 柬이 소리를 나타내며, 柬이 뜻도 나타내 손으로 가려 뽑는 행위를 한다는 뜻이 나왔다.

煉(달굴 련)은 火(불 화)가 뜻을 나타내고 柬이 소리를 나타내며, 柬이 뜻도 나타내 불로써 정제하고자 달군다는 뜻이 나왔다.

練(익힐 련)은 糸(가는실 멱)이 뜻을 나타내고 柬이 소리를 나타내며, 柬이 뜻도 나타내 실을 정제한다는 데에서 익힌다는 뜻이 나왔다.

諫(간할 간)은 言(말씀 언)이 뜻을 나타내고 柬이 소리를 나타내며, 柬이 뜻도 나타내 정제한 말이라는 데에서 간언이라는 뜻이 나왔다.

鍊(쇠불릴/단련할 련)은 金(쇠 금)이 뜻을 나타내고 柬이 소리를 나타내며, 柬이 뜻도 나타내 쇠를 정제한다는 데에서 단련한다는 뜻이 나왔다.

闌에서 파생된 한자들은 대부분이 순수한 형성자지만, 일부는 가로막는다는 뜻을 지닌다.

攔(막을 란)은 手(손 수)가 뜻을 나타내고 闌이 소리를 나타내며, 闌이 뜻도 나타내 손으로 가로막는 행위를 한다는 뜻이 나왔다.

欄(난간 란)은 木(나무 목)이 뜻을 나타내고 闌이 소리를 나타내며, 闌이 뜻도 나타내 가로막는 나무에서 난간이라는 뜻이 나왔다.

이상의 관계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柬에서 파생된 한자들의 의미 관계도.

柬은 금문에서 처음 발견되고, 이에서 파생된 한자들은 대부분 전국시대 이후에 나타내기 시작한다. 금문에서 발견되는 파생자는 諫과 䦨이 있다.

諫은 금문에서는 지금의 뜻인 '간하다'가 아니라, 칙서 칙(敕)과 통용되는 글자로 쓰였다. 칙서 역시 가려 뽑은 왕의 말이라는 점에서는 뜻에서 柬과의 관련을 찾아볼 수 있다.

금문의 諫(간할 간). 출처: 小學堂

諫의 금문을 보면 柬의 束 안에 있는 두 점이 八이 아니라는 것이 좀 더 명백해진다. 맨 오른쪽은 문 문(門) 안쪽에 柬과 言이 나란히 놓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지금의 헐뜯을 란(讕)과 글자 구성이 같지만 금문의 諫과 같은 의미로 활용되었다. 아래에 현대의 해서화한 형태를 나타내 보았다. 가려 뽑은[柬] 말[言]이 문(門) 밖을 나가 칙서로 반포되었다는 의미로 보면 될 것 같다.

門이 더해진 諫의 해서화. 출처: zi.tools.

䦨의 금문은 화려한 변형을 자랑한다.

금문의 다양한 闌과 해서화. 출처: 小學堂

기본 형태인 門과 柬이 합한 형태 외에, 閒(사이 간, 한가할 한)과 柬이 합한 형태도 있고, 여기에 柬 대신 宀(집 면)+束+月이 들어가기도 하는 등 복잡한 변화를 보인다.

금문에서는 종 소리가 조화롭고 아름답다는 의미로 난란(闌闌)이라는 단어를 쓰는데 《시경》에서는 이 단어를 간간(簡簡)이라고 쓴다. 설문해자에서 柬을 해설할 때에도 대쪽 간(簡)을 사용해서 풀이하는데, 柬, 簡, 闌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䦨의 금문에 있는 閒도 어쩌면 소리를 나타내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柬은 향풀을 가려 뽑아 주머니에 묶어 두었다는 데에서 '가리다'를 뜻한다.

柬에서 揀(가릴 간)·楝(멀구슬나무/소태나무 련)·練(익힐 련)·諫(간할 간)·鍊(쇠불릴/단련할 련)·闌(가로막을 란)·鰊(청어 련)이 파생되었고, 闌에서 幱(내리닫이 란)·攔(막을 란)·欄(난간 란)·瀾(물결 란)·爛(빛날 란)·瓓(옥빛 란)·蘭(난초 란)·襴(내리닫이 란)이 파생되었다.

柬은 파생된 한자에 '정제하다'의 뜻을, 闌은 '가로막다'의 뜻을 부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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