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글을 쓰는가2
하루는 금방 지나가지만 그 안에서의 시간은 생각보다 더디 흐른다. 백수 시절에는 말 그대로 남는 게 시간이었으니 더욱 그러했고 기간제 교사로 일하고 있는 지금도 여전히 시간 부자다. 수업 준비를 크게 하지 않아도 되고 운 좋게 행정 업무도 없고 담임이 아니라 학생들을 케어할 필요도 없다. 많으면 하루 4시간 있는 수업 외 나머지 시간은 온전히 자유롭게 쓸 수 있다.
그렇다고 교문 밖으로 뛰쳐나갈 수는 없고 게임 같은 걸 하지도 않으니 그때 할 수 있는 건 글쓰기다. 종이와 펜 또는 노트북만 있으면 할 수 있는 글쓰기. 내가 쓰는 글은 정말 다양하다. 조용한 교무실에 앉아 3교시 수업을 기다리며 쓰고 있는 이 글처럼 내 생각을 주절주절 꺼내어 놓기도 하고, 지난주에 다녀온 인천의 어느 노포 중국집 후기를 써서 블로그에 올리기도 하고, 지금은 연재를 마쳤지만 대만 워킹홀리데이의 추억을 떠올리며 자기반성적 글을 쓰기도 한다. 그렇게 사유의 글이든 정보 전달의 글이든 쓰다 보면 금세 수업에 들어가라고 재촉하는 종이 울린다. 글쓰기는 시간을 빨리 흐르게 하는 재주가 있는 듯하다. 마치 강한 중력처럼.
만약 내가 우울증에 걸리지 않았고 심란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글쓰기를 다시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이 붕 뜨는 시간에 뭘 했을까 상상해 본다. 유튜브 영상을 보며 시간을 뗴웠을까? 더 이상 고칠 것도 없는 수업 자료에 없어도 되는 사진을 추가했을까? 네이버 지도를 들여다 보며 퇴근하고 갈 곳을 탐색했을까? 아니면 별 필요도 없는 무언가를 사기 위해 인터넷 쇼핑몰을 배회했을까?
어릴 때 투니버스를 못 보고 자라서인지 상상력이라고는 내 손등의 점만큼도 없는 탓에 퍼뜩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아니면 어제 했던 일도 다 까먹는 이 좋지 않은 기억력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무엇 하나 명확하지 않지만, 이거 하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무엇을 하든 지금 이렇게 글을 써내는 것만큼 생각 많고 걱정도 많고 말까지 많은 나에게 도움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책을 낸 작가도, 좋아요를 많이 받는 인플루언서도 아니지만 글을 쓰는 걸 좋아해서 다행이다. 아무도 읽어주지 않아도 내 손으로 뭔가 만들어 내고 있다는 뿌듯함, 그 성취감은 아무 능력도 없는 내가 인생을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게 한다. 그것이 허무맹랑한 착각이라도 물에 닿은 솜사탕처럼 사라졌던 자존감을 조금이라도 되찾아 주고 있으니 글을 쓴다는 건 제법 효과적인 치료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