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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끼미 Aug 22. 2024

'코끼리 베이글' 오픈런을 다녀왔어요

일상 관찰자의 사적인 편지#01

'코끼리 베이글'의 귀여운 간판


오늘 아침에 영등포구청 쪽에 있는 ‘코끼리 베이글’에 다녀왔어요. 그것도 오픈런으로요. 요즘 잠을 잘 못 자는데 오늘도 새벽 6시엔가 한 번 깼더니 다시 잠이 안 오더라구요. 머리가 아파서 어쩔까 하다가 일단 걸으려고 나왔는데, 갑자기 ‘코끼리 베이글’이 생각나서 찾아보니 8시 반 오픈이더라구요. 지금 가면 8시쯤 도착할 테니 가서 기다리면 되겠다 싶어 출발했어요. '평일 아침이고 오픈 30분 전이니 내가 일빠겠지?’ 이러면서 갔는데, 웬걸요, 이미 두 분이나 기다리고 계신 거 있죠?


베이글 샌드위치 만드는 모습과 베이글 튀기는(데치는) 모습
화덕에서 베이글 굽는 모습


기다리는 동안 유리창 너머로 일하시는 분들의 모습을 지켜보는데 기분이 묘했어요. 저도 저렇게 빵집에서 일하던 때가 있었거든요. 사실 요즘 잠을 잘 못 자는 이유가 빵집에서 다시 일을 할지 말지 고민하고 있어서였어요. 대만 워홀을 다녀오고 나서 '죽기 전에 안 하면 후회할 것 같은 일을 해보자' 싶어 제빵을 배우고 빵집에 취직도 했는데 8개월 만에 그만뒀었어요. 여러 이유가 있어서 퇴사했지만 왠지 모를 미련 때문에 잠까지 설치면서 고민 중이었어요. 


그런데 오늘 ‘코끼리 베이글’ 오픈런 하면서 깨달았어요. 빵집으로 돌아가는 건 아무래도 힘들겠다는 걸요. 일단 그 잠깐 30분 서 있는 데도 다리가 아팠어요. 원래도 안 좋았던 다리가 빵집에서 매일 10시간을 서서 일한 후로 더 안 좋아졌었거든요. 자기 전에 스트레칭하면서 고통스러워서 끙끙 앓을 정도였어요. 빵집 그만둔 지 벌써 4개월 됐으니 좀 괜찮아졌을 줄 알았는데, 오늘 보니 전혀 아니더라구요. 다시 빵 일을 하면 두 다리가 얼마나 또 아플지 상상하니 씁쓸해졌어요.


좀 웃길 수도 있지만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어요. 모자 쓰고 일하기 싫어서예요. 대부분의 빵집은 위생 때문에 모자 쓰고 일을 하는데요, 저처럼 탈모 있는 사람에겐 모자 쓰는 게 정말 최악이래요. 더군다나 온종일 땀까지 흘리면서 일하니 얼마나 두피에 안 좋겠어요. 모자 쓰고 일하시는 직원분들을 보니 마침 며칠 전에 미용실에 갔다가 탈모 얘기했던 기억이 떠올랐어요. 빵도 좋지만 그래도 제 머리카락이 더 소중하겠죠?   


바로바로 구워져 나오던 베이글들

  

아무튼 3번 타자로 들어가서 플레인 베이글만 3개 사서 나왔어요. 원래 하나만 사려고 했는데 기다린 생각 하니 왠지 하나만 사기 아쉬웠거든요. 제 앞에 계셨던 두 분이 많이 사가시기도 했구요. 사람 마음이 참 그래요. 뜨끈하다 못해 뜨거운 베이글을 들고 지하철역으로 걸어가는데 출근하는 분들을 마주쳤어요. 아마 9시까지 출근하시는 분들이겠죠. 누구는 돈 벌러 출근하고 있는데 백수인 누구는 이 아침부터 할 일 없이 빵이나 사서 집에 간다니. 왠지 한숨이 나왔어요.


한편으론 이런 모습들도 눈에 들어왔어요. 아침부터 아아메 사서 출근하시는 분들과 누가 봐도 출근하기 싫은 표정으로 회사 건물에 들어가시는 분들이요. 우리나라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이런 아침을 맞이하시겠죠? 다들 정말 고생하며 살고 있다는 생각에 괜히 마음이 아팠어요. 놀고먹는 처지에 누가 누굴 걱정하나 싶지만요. 일반 회사에서 사무직으로 일해본 적은 없지만 분명 힘든 일이겠죠. 빵집 일이든 사무직이든 세상엔 참 무엇 하나 쉬운 일이 없는 것 같아요. 


'코끼리 베이글'의 플레인 베이글


그래서 베이글은 맛있었냐구요? 솔직히 제 입맛에는 별로였어요. 쫄깃하긴 엄청 쫄깃한데 맛있는 베이글인지는 모르겠어요. 밍밍하고 싱거워서 별맛이 안 난달까요. 밀가루의 고소한 맛도, 화덕의 불향도 안 느껴져서 아쉬웠어요. 기본 빵 맛이 궁금해서 플레인 베이글만 산 건데 너무 심심한 맛이라 결국 땅콩버터를 발라먹었답니다. 개인적으론 맨빵만 먹어도 맛있는 빵이 진짜 맛있는 빵이라고 생각하는데 기대에는 못 미치는 맛이었어요. 남은 두 개는 샌드위치 만들어서 먹어야 할 것 같아요. 그래도 종이봉투의 코끼리 그림이 너무 귀여워서 이 봉투는 간직해야겠어요.


'코끼리 베이글'의 귀여운 봉투


여러분들도 빵 좋아하시나요? 어떤 빵을 좋아하시나요? 단골 빵집도 있으신가요? 빵이 몸에 좋다 안 좋다 말이 많지만, 그래도 과하지만 않으면 맛있는 빵 먹으면서 즐겁게 사는 게 정신 건강에는 더 좋은 것 같아요. 천천히 발효하고 숙성시키면 더 맛있어지는 빵처럼 우리의 인생도 날마다 더 맛있어지기를 소망해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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