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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송 Oct 27. 2024

청도 가는 날

어제는 청도 가는 날이었다.


경상북도 청도는, 어릴 적 친구 중 가장 친한 친구가 수년 전 그곳에 임야를 산 후, 조그마한 농막을 짓고 농막 주변에 텃밭을 조성한 후로, 주말마다 방문해 소일하곤 하는 곳이다.

그 덕분에 나도 한국에 갈 때마다 꼭 한 번은 방문하는 곳이다.


한여름에 계곡에 발 담그고 노는 재미도 쏠쏠하고, 텃밭에서 가꾼 깻잎, 상추, 고추, 고수 등을 따서, 장작 화로에 구운 삼겹살과 함께 맛보며, 밤하늘의 별구경을 하다 보면 세상시름 하나 없는 별천지에 온 기분을 느끼곤 했다.


어제는 오랜만에 다른 친구 1명과 같이 세 사람이 청도를 찾았다.

청도에는 감나무가 꽤 많이 심겨 있다.

작년에는 친구가 비료를 적게 쳐서 알맹이도 작고 수확량도 너무 적어, 친구네 옆 집 감나무에 열린 감을 얻어 맛보았는데, 올해는 감이 얼마나 열렸을지 무척 궁금했다. 


청도 마트에 들러 우리 세 사람이 먹을 삼겹살과 야채, 막걸리부터 챙겼다.


친구네 농막 입구에 들어서면서 보니 실하게 익은 굵은 감들이 감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올해 제대로 큰 감을 처음으로 수확해 보기 위해 친구는 비료도 3번이나 주었다고 한다.


몇 개월 전 한국 왔을 때 친구 따라 비료를 한번 같이 주었을 때 힘들었던 기억이 났다.

감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감 하나하나가 친구의 수고와 땀의 결실이란 것을 잘 안다.


짐을 풀자마자, 텃밭으로 가서 고추부터 따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고추 따는 요령도 배웠다.

줄기와 매달린 고추 간의 연결 부위에 구부러진 부분을 구부러진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꺾으면 고추가 아주 쉽게 따지는데, 소리마저 경쾌하게 '똑 똑' 소리가 난다. 요령을 알고 나니 재미가 있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고추를 땄다.


일찍 지는 산간 지방의 해가 산 허리를 넘어가면서, 우리도 준비해 간 삼겹살을 구워 신성한 노동 후의 성찬을 즐겼다.

맑은 공기와 초로의 친구들 간에 나누는 대화가 술맛을 더해주는 덕택에 맥주, 막걸리, 설중매가 술술 넘어간다.


오늘 아침, 기상과 동시에 남은 고추를 모두 따고 있는 친구를 도와 고추 따기를 마무리한다.

부지런한 친구는 순식간에 추어탕을 끓이고, 김치찌개와 따뜻한 밥을 준비한다.

친구 덕분에 푸짐하고 맛있는 아침 밥상을 받는다. 쌈장에 찍어 먹는, 아침에 딴 고추도 아삭아삭 씹히며 밥 맛을 더해 준다.


후식 커피 한 잔씩 마신 후, 본격적인 감 따기 작업에 돌입했다.

준 전문가 수준인 친구는 사다리와 나무 가지 위에 올라, 전지와 동시에 전문가다운 감 따기 기술을 선보인다. 나는 친구한테 전수받은, 긴 장대를 활용한 감 따기 기술에 심취해 친구가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감 따기 놀이를 즐겼다.


나와 또 다른 보조역 친구는 어느새 따 놓은 감을 운반하느라 마지막 땀방울을 흘리고 있었다.

친구는 우리가 집으로 가져갈 감과 고추를 박스에 정성스레 담아 차 트렁크에 옮겨 싣는다.


친구 덕분에 집에 도착한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아내 앞에 감과 고추가 담긴 박스를 내려놓는다.

친구들과 유쾌하게 보낸 1박 2일의 청도 나들이 사진을 한 장 한 장 바라보며, 미소와 더불어 보람찬 하루를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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