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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헤어질 결심

이혼 D-60

by 유해나

나의 전남편, X와 나는 5년간 장기 연애를 했다. 우리는 연애 기간 내내 불안정한 사이였다. 사이가 좋을 땐 너무 좋았지만 싸울 땐 극단으로 치달았다.


언젠가 우리 관계에 대해 X는 이렇게 비유했다.

우리가 100조각짜리 퍼즐이라면, 99개의 조각이 잘 맞지만 딱 한 조각이 안 맞는데 그게 전체 퍼즐의 40%를 차지하는 크기라고.


그 한 조각은 바로 갈등 해결 방식의 차이였다.

흔히 말하는 불안형과 회피형의 연애. 우리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 X는 견디지 못해 도망쳤고, 나는 불안함에 더욱 X를 닦달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X는 더욱 깊숙한 동굴로 들어갔고, 나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절망했다.





그래도 연애만 할 때는 괜찮았다. 일주일에 한두 번 만날 뿐이었으니까. 갈등 해결 방식만 제외하면 우리는 가치관과 취향이 꽤 잘 맞는 편이었고, 주말에 만나서 여기저기 놀러 다니다 보면 어느새 싸워서 힘든 감정은 잊혀지고 즐거운 마음만이 남았다.


그런데 결혼을 결심하고, 같이 살게 되니 더 이상 문제를 외면할 수 없었다. 이제 우린 일주일에 몇 번 만나 즐겁게 데이트하는 것이 아닌 매일 함께 살면서 이런저런 과제를 함께 해결해나가야 했다.


서로의 관계가 주말의 [힐링]이 아닌

함께 공동의 과제를 해결해야 하는 [일상]이 되었을 때,

우리의 어긋남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다.





결혼 후 갈등이 생기면 피할 수도 없이 한 공간에 있다 보니 연애 때의 몇십 배로 싸움이 심해졌다.


마치 불과 기름 같던 우리의 성향 때문에 싸움은 점점 격해졌다. 사소한 의견 차이도 좁히지 못해 몇 주씩 서로를 완전히 무시한채 투명인간 취급하는 일은 예사였다. 그러다가 끝내 폭발하면 차마 입에 담지 못할 폭언 고성이 오갔고 몇 번은 경찰도 불렀다.


그렇게 심각한 상황이 1년 사이에도 여러 번 터지고서야 연애는 어찌 저찌 할 수 있었어도, 이 사람과 평생 같이 살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어느 순간부터 X는 잘못된 싸움 방식을 고치려는 노력, 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 그저 될대로 되라는 태도로 일관했다. 노력하지 않는다는 건 관계의 끝이라는 나의 말에도 X는 나를 잡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결혼식 10개월 만에 완전히 남남이 되었다.





결혼식을 올린 지 1년도 안돼서 이혼을 결정한 게 놀라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린 이미 연애할 때부터 서로의 문제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갈등을 봉합하기 위해 연애 5년 + 결혼 1년의 시간 동안 다양한 시도를 해봤으나 결국 해결되지 않았기에, 이혼이라는 빠른 결단을 내릴 수 있었다.


애초에 해결되지 않는 문제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면 결혼까지 가지 말았어야 하는 건데

어리석게도 직접 해보고 나서야 결론을 내렸으니 참 미성숙했다.


이혼 과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남들처럼 밑바닥까지 가지도 않았다. 6년 동안 수없이 헤어졌다 다시 만나는 것을 반복하며 우리의 끝은 정말 최악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까. 서로 어느 정도는 이런 결론을 예상했기에 그랬을 수도 있다.


결혼식 직전에도 파혼 위기를 겪으면서 이미 합쳐놓은 재산은 어떻게 나눌지 다 얘기했기 때문에 합의할 것도 많지 않았다. 그저 그때 작성했던 엑셀 시트에 몇 가지 항목만 추가하면 됐다.


결혼식만 올리고 혼인신고는 아직 하지 않은 사실혼 상태였어서 복잡한 서류상의 절차도 필요하지 않았다.




이혼 직후에는 X를 원망하기도 했지만 1년이 지난 지금은 X가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X도 최선을 다했으나 그저 우리가 안 맞았던 것일 뿐. X를 미워하는 마음이 아예 없다면 거짓말이지만 결국 나의 미성숙함에도 원인이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다.


우리 둘 다 어리석었기에 아닌 관계를 붙잡고 질질 끌고 온 것 같다. 너무 어릴 때부터 함께해서 스스로가 어떤 성향을 가졌고, 어떤 사람과 함께해야 행복한지 미처 생각해보지도 못한 채 결혼했다.


그러니 한쪽의 잘못이라기보단 스스로에 대해 너무 모르고 결혼한 우리 둘 다의 잘못이었다.


10개월의 짧은 결혼 생활이 끝나고, 나는 서른이라는 젊은 나이에 이혼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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