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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이직 그리고 이사

이혼 D-30

by 유해나


이혼 결정하고부터는 내 삶을 180도 뒤바꿔야 했다.


6년간 함께해 왔던 관계를 끝내야 했고,

정성 들여 꾸민 아늑한 신혼집을 떠나야 했고,

이사 갈 지역에 있는 새로운 직장으로 옮겨야 했다.


당장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았기에, 이혼을 합의하고도 새 집을 구하기까지 약 한 달간 신혼집에서 X와 각방 생활을 했다.


돌이켜보면 이혼을 결정하고 나서 X와 함께 지냈던 이 한 달의 시간이 심리적으로 가장 고통스러운 시기였다.




이사 갈 집을 구하고, 이직 면접을 보고, 가족들에게 나의 이혼 사실을 알리느라 낮 동안에는 눈코뜰 새 없이 바쁘게 움직였다.


그렇게 분주한 일과를 보내고 밤이 되어 고단한 몸을 홀로 침대에 누일 때면 형용할 수 없는 우울감이 밀려와 가슴이 답답해지고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지금 옆 방에 있는 저 사람이 내가 6년 동안 사랑해 왔고 평생을 함께할 거라고 믿었던 사람이 맞는 건지, 우리 관계가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인지. 나는 과연, 익숙한 모든 것을 떠나 홀로 설 준비가 되어 있는지 복잡한 감정이 휘몰아쳐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곤 했다.


나를 걱정해 주는 주변 사람들에게는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슬픔을 느낄 새가 없다고 했지만 그건 거짓말이었다. 아무리 바빠도 순간순간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당장 처리해야 할 일들은 너무 많은데, 한 번 슬픔에 빠지면 영영 회복할 수 없을까 봐 내 진짜 감정은 꽁꽁 봉인해 뒀다.


덕분에 한 달 내내 머리가 지끈거리는 두통을 달고 살았다.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어서 퀭해진 낯빛으로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매일을 버텨냈다.




이혼을 결심하고도 나의 선택이 맞는 것인지 하루에도 여러 번 마음이 오락가락했다. 그냥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모른 척하고 넘어가면 되지 않을까.


하지만 6년의 시간이 아까워서 앞으로의 60년을 이 사람과 살기엔 분명 후회할 것 같았다.


헤어질 기회는 무수히 많았고 결혼 전 파혼까지도 고려했었지만 관계를 깨는 게 두려워 머뭇거린 내 잘못이고 미련이었던 거다.


깨진 유리조각을 겨우겨우 이어 붙인다고 해도 이미 생겨버린 금은 어쩔 수 없다. 우리는 기둥에 묶인 코끼리처럼, 헤어지지도 그렇다고 관계 회복을 위해 노력하지도 못한 채 무기력함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더 늦기 전에, 정말 돌이킬 수 없기 전에, 나중에 아이에게 너 때문에 참고 산다는 말을 하기 전에 차라리 지금 이혼하는 게 명한 선택이었다.




신혼집에서 짐을 빼던 날을 떠올리면 아직도 가슴 한 켠이 쓰라린다. 아침 일찍 X와 작별 인사를 하고, X가 나간 직후 부모님이 짐 정리를 도와주러 신혼집에 오셨다.


고등학교 때부터 타지 생활을 하며 부모님과 함께 수도 없이 이삿짐을 싸고 풀었지만, 그날의 이사처럼 적막하고 씁쓸했던 적은 없었다.


불과 몇 달 전, 행복한 새 출발을 축복하며 가족들과 집들이를 했던 공간에서 이제 다시 혼자가 되기 위한 이사를 하고 있다니.


부모님은 묵묵히 짐 정리를 도와주시고 나를 한 번 안아준 뒤, 걱정 가득한 눈으로 돌아갔다. 아직 완전히 정리가 안 되어 너저분한 집을 보니, 정말 나 혼자 꾸려나가야 하는 생활이 시작되었나 실감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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