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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이 알려준 결혼의 진짜 이유

2부.결혼에 관한 고찰(3)

by 유해나

"나는 다시 결혼을 하고 싶은가?”


이혼 후 스스로에게 가장 많이 던진 질문이다. 이미 한 번 다녀온 경험이 있지만 아직 서른, 만으로는 스물여덟이라는 어린 나이였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재혼의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과거처럼 마냥 핑크빛 환상에 젖어 있던 시절은 지나갔다. 이제는 결혼의 장점과 단점을 모두 알고 있으니 어떤 선택이 나에게 맞을지 더 객관적으로 살펴볼 때였다. 같은 실수를 두 번 반복하고 싶지 않았기에, 먼저 ‘결혼의 이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사람들은 왜 결혼을 하는 걸까?

예전의 나는 연애의 연장선이 곧 결혼이라고 믿었다. 한 사람과 오래 연애했고, 큰 문제가 없다면 자연스럽게 결혼으로 이어지는 게 당연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결혼에는 로맨스 이상의, 더 복합적이고 현실적인 이유들이 숨어 있었다.




결혼의 이유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결혼은 삶에 목표와 방향을 제시해 준다는 점이다.


우리는 학생 때부터 늘 “좋은 대학”이라는 목표를 향해 달려왔다. 대학교에 들어가면 “좋은 회사”가 새로운 목표가 된다. 좋은 회사에 입사한 뒤에는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고, 돈을 모아 집을 사고, 노후를 준비하는 것이 정석 코스이다.


이미 정해진 코스가 숨 막히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 인생에 목표가 있다는 건 분명 필요한 일이다. 결혼은 보통의 사람들에게 그런 ‘자연스러운 목표’를 제시해준다. 무엇보다 이 방식은 사회에서 인정받고, 주류에 편입되는 길이다.


굳이 머리 싸매고 나만의 인생 목표를 고심하지 않아도 된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그 자체로 주류의 길에 올라서는 셈이니 말이다.




하지만 만약 사회가 권장하는 결혼 코스를 벗어나겠다고 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 경우에는 스스로 삶의 목표를 찾아가는 긴 과정이 필요하다. 인간은 삶의 의미가 없으면 금세 공허해지기에, 결혼이나 육아 대신 열정을 쏟을 만한 무언가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니 결혼하지 않기로 했다면, 스스로 목표와 방향을 세우기 위해 더 부지런해져야 한다. 동시에 사회 속에서 비주류로 살아가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더 부지런히 살면서도, 공허함과 사회적 시선이라는 이중고를 함께 견뎌내야 하는 셈이다.


결국 결혼하지 않겠다는 선택은 “사회의 주류”라는 거대한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길이다. 절대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확고한 이유가 있지 않다면, 굳이 돌고 돌아 고생스러운 길을 택하지 않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결혼은 서로에게 1순위가 되겠다는 공식적인 약속이기도 하다. 물론 현실에서는 평생 서로에게 충실하기는커녕 외도를 하거나, 배우자가 아플 때 모른 척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결혼이라는 제도를 선택한 이상, 그 역할을 다하지 않은 사람은 사회적으로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현대 사회이기에, 내가 아프고 힘들 때 나를 지켜줄 수 있을 것 같은 ("있는"이 아니다) 가족의 존재는 소중하다.


게다가 젊을 때는 언제까지나 곁에 있을 줄 알았던 친구들도 시간이 지나면 하나둘 각자의 가족을 우선시한다. 그러다 보면 노후에 아픈 순간만이 아니라 주말에 함께 시간을 보낼 사람조차 드물어지게 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아무리 혼밥·혼술·혼자놀기의 고수라 해도 함께할 사람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은 자연스럽다. 표면적이라도 곁을 지켜주고, 일상의 공허함을 덜어주는 가족의 존재는 그래서 더욱 소중하다.




정리하자면 결혼은 인생의 목표와 방향을 제시해 주고, 사회적으로 인정받으며 주류에 편입되는 길인 동시에, 서로에게 1순위가 되어주겠다는 공식적인 약속 이기도 하다.


반대로 결혼하지 않는 삶을 선택한다면, 시행착오를 거쳐가며 부지런히 나만의 인생 목표를 찾아야 하고, 가족을 대신할 수 있는 끈끈한 관계를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 결혼하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들을 직접 찾아야 하니 분명 쉽지 않은 길이다.


그러나 싱글의 삶에는 자유가 있다. 내가 나답게 살 수 있는 자유, 다른 무엇에도 얽매이거나 틀에 맞출 필요 없이 나다운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는 자유 말이다.


자유는 상에서부터 큼직한 결정을 내리기까지 매 순간마다 빛난다. 퇴근 후 갑자기 여행을 떠날 수도 있고, 주말 내내 침대와 한 몸이 된 채 뒹굴거려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어디에서 살지, 무슨 일을 할지도 누구와도 조율할 필요 없이 오롯이 내 선택으로만 움직일 수 있는 즐거움. 이런 자유는 삶을 더 유연하고 다채롭게 만든다.


다만 자유는 책임과 세트다. 내가 선택한 방향만큼의 결과를 전부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오롯이 나만의 의지로 삶을 그려갈 수 있다는 점에서 자유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것이다.


결혼의 수많은 이점보다 ‘나답게 살 수 있는 자유’가 더 중요한 사람들은, 결혼이 주는 안정과 편익을 포기하더라도 제도 안에 들어가지 않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이렇게 결혼과 싱글 각각의 무게를 저울질해 본 끝에, 지금 내 삶에서는 결혼보다는 싱글 쪽으로 무게가 기운다는 결론을 내렸다.


결혼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한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무엇보다 중시하는 가치는 나답게 살 수 있는 임을 이제는 알게 되었다. 젠간 다시 결혼을 선택하게 된다면, 더 평등하고 더 자유로운 형태여야 할 것이다.


만약 내가 한 번 결혼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결혼에 대해 객관적으로 볼 수 없었을 것이다. 그저 제도 안에서 때때로 숨이 막혀올 때마다 "왜?"라는 의문의 답을 찾아 헤맸겠지.


그래서 지금의 선택은 스로의 가치와 기준에 따라 주체적으로 판단한, 내가 나답게 살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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