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결혼에 관한 고찰(4)
내가 이성적인 매력을 느끼는 사람이 좋은 배우자일 확률은 얼마나 될까.
일반적으로 좋은 남자친구라고 하면 [매력(외모), 다정함, 재미] 가 중요한 요소이다. 하지만 좋은 남편이 되려면 [책임감, 무던함, 성실함]이 더 중요할 것이다.
즉, 좋은 남자친구의 조건과 좋은 남편의 조건은 상당수 일치하지 않는다. 매력적인 외모를 가지고 있는 데다가 성격까지 성실하고 무던한 사람은 드물 테니까.
그렇다면 어째서 연애와 결혼이 연장선상에 놓이게 되었을까. 매력적인 이성은 최악의 배우자가 되기도 한다. 반면 연애할 때는 재미없었던 사람이 결혼하니 최고의 배우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 좋은 남자친구와 좋은 남편의 조건이 다르기 때문이다.
나의 전남편 X는 좋은 남자친구였다. 호감 가는 외모에 같이 있으면 재밌고, 다정하고, 취향도 잘 맞는 편이었다. 심지어 싸우는 순간마저도 도파민이 마구 분비됐다.
하지만 결혼하고 나니 X의 단점은 굉장히 치명적이었다. X는 예민하고, 갈등 상황 대처를 힘들어했고, 나와 생활 패턴이 정반대였다.
X는 나를 위해서라면 별도 달도 따다 줄 수 있을 것 같은 낭만적인 사람이었다. 내가 아프면 나를 위해 기꺼이 한쪽 콩팥을 떼어줄 수는 있어도, 곁에서 나를 간병해주지는 못할 것 같은 그런 사람. 좋은 남자친구였지만, 좋은 동반자는 아니었다.
그건 아마 나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나는 매력적인 여자친구였겠지만, 좋은 아내는 아니었다. 누군가와 함께 살기에 나 역시 너무 예민하고, 통제적이고, 다혈질이었으니 말이다.
지금까지는 항상 첫눈에 끌리는 사람과 연애를 시작했다. 그 사람의 외모, 분위기, 취향 같은 것들이 마음에 들면 곧바로 상대와 사랑에 빠졌다.
무난한 결혼을 한 사람들을 보면, 나와 정반대인 경우가 더 많았다. 첫눈에 이성적인 끌림은 없더라도, 만날수록 마음이 편하고 안정적으로 스며드는 사람과 결혼했을 때 행복하게 잘 사는 것 같다.
이혼을 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결혼은 연애의 연장선이 아니다. 부부는 함께 했을 때 문제를 잘 헤쳐나갈 수 있는, 동업 관계에 더 가까워야 한다.
상대와 있을 때 내가 가장 능력을 발휘할 수 있고, 최상의 팀워크를 이끌어낼 수 있는 사람과 결혼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이성적으로 끌림을 느끼는 상대가 그런 능력까지 모두 갖췄을 확률은? 매우 낮을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연애와 결혼은 분리해서 보는 것이 더 현명할지도 모른다 고 생각한다.
다시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면, 그 사람의 첫인상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몇 번은 더 만나보기로 했다. 오히려 첫눈에 끌리는 사람과 안정적인 관계는 양립하기 어렵다는 생각도 든다.
너무 사랑하면 눈이 멀어버려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깊이 빠지게 되면, 마음은 롤러코스터를 타듯 불안해진다.
덜 좋아할 때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게 예전에는 슬프게 느껴졌지만, 이제는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조건 보고 결혼한 사람들이 오히려 더 잘 산다는 것은 바로 여기서 나오는 게 아닐까.
나와 X는 강렬한 끌림으로 결혼했지만, 우리는 결국 각자의 길을 가게 되었다. 연인으로는 좋았어도 부부로서는 최악의 상성이었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고 나니, 다음에는 엄청나게 매력적이지는 않아도, 무던하고 문제 해결력이 있는 사람을 만나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이성적인 끌림은 덜하더라도, 그런 사람이어야 오랫동안 평온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