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결혼에 관한 고찰(6)
아이를 낳지 말아야 할 수많은 이유에도 불구하고, 100% 확신할 수 없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새로운 경험에 대한 갈망이다.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단순히 가족이 한 명 더 늘어나는 일이 아니다. 그 순간부터 완전히 다른 차원의 경험이 시작되는 것이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것, 나를 꼭 닮은 얼굴을 매일 마주하는 것, 아이가 한 발 한 발 자라면서 보여주는 작은 성취와 좌절을 곁에서 함께 겪는 것.
그 모든 과정은 책으로 배울 수도, 다른 사람이 대신해 줄 수도 없는 ‘내 인생의 고유한 경험’이 된다.
지금까지 나는 늘 인생에서 다양한 경험을 해보는 것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생각했다. 여행을 떠날 때도, 새로운 일을 선택할 때도, 제일 우선시 되는 기준은 항상 "내가 이걸 경험해 봤느냐"였다.
그런 나에게 ‘엄마가 되는 경험’은 인생에서 시도할 수 있는 가장 큰 변화이자 도전일 것이다. 아이를 통해 마주할 감정과 깨달음은 지금까지의 나를 넘어, 더 깊이 있고 입체적인 나를 만들어줄 것이다.
엄마가 된다는 새로운 경험이 내 인생을 한층 더 풍요롭게 만들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아이를 낳고 싶은 첫 번째 이유다.
두 번째 이유는 본능적인 것이다. 사실 아이를 낳고 싶다는 마음은, 이성이 아니라 감정의 영역이다.
마치 사랑에 빠지는 것 같다고 할까? "저 사람을 좋아하지 말아야지"라고 아무리 머리로 생각하고 자제하려고 해도, 두근거리는 마음을 완전히 막을 수 없다.
아이를 낳고 싶은 마음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람과 나를 닮은 아이를 보고 싶다는 욕구는 아주 자연스럽게, 저 깊은 곳에서 올라온다. 그건 논리로 통제할 수 없는 본능이자 감정의 힘이다.
아이를 낳을 것인가 vs 낳지 말아야 할 것인가의 대결은 언제나 낳지 않는 쪽의 이유가 더 합리적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그 모든 합당한 이유를 단숨에 무너뜨린다. 그리고 결국 우리를 움직이는 건 숫자나 논리가 아니라, 감정의 힘일 때가 많다.
X와의 관계에서 내가 가장 크게 배운 것도 이것이다. 때로는 아무리 이성적으로 생각하려고 해도, 마음의 소리를 따를 수밖에 없는 순간도 있다는 것. 그게 사랑이라면 더더욱.
예전의 나였다면 합리적이지 않은 선택을 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겠지만, 이제는 알게 되었다.
삶의 어떤 부분은 그냥 감정에 충실할 수밖에 없고, 그 속에서 또 다른 선택이 시작된다는 것을.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그런 감성의 영역 중에서도 가장 순수하고 강렬한 파도에 몸을 맡기는 일과 같다. 머리로는 막을 수 없고, 마음이 향하는 대로 흘러가게 되는, 인간으로서 가장 본능적인 선택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세 번째 이유는, 주변에서 딩크였다가 아이를 낳은 사람들에게서 가장 많이 들은 대답이다.
“남편과 둘이서 놀만큼 놀았고, 일도 열심히 해봤고, 여행도 다녀봤더니, 이제 더 이상 특별히 하고 싶은 게 없어서.”
보통 30대 중후반쯤 되면, 일에 완전히 몰두하지 않는 이상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시기를 맞는 것 같다. 특히 이미 결혼한 상태라면, 어느 순간 아이를 통해 새로운 원동력과 활기를 얻고 싶어 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앞서 <결혼의 이유> 에서 말했듯, 육아는 인생의 목표와 방향을 설정해 주는 일이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커다란 성취이기도 하다.
아직 나는 육아보다 하고 싶은 일이 더 많아서 망설이고 있지만, 언젠가 나 또한 모든 것이 공허하게 느껴지는 순간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모든 것을 고려했을 때, 아이를 낳는 선택지에 대한 지금의 내 결론은 이렇다.
수많은 걱정과 고민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과 함께라면 충분히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사람이 생기면 그때 결정해도 되겠다는 것.
지금의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들보다, 그 사람과 함께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키우는 삶이 더 의미 있어 보인다면, 그때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 순간에 너무 감정에만 휩쓸리지 않도록, 아이를 낳음으로써 생길 수 있는 문제들을 지금 미리 생각해 둘 필요는 있었다.
어쩌면 평생을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인생은 언제나 불확실하니까.
그래서 나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바로 혼자서도 충분히 즐겁게, 나답게 사는 법을 배우고 경험하는 것이다.
단지 ‘외로움이 두려워서’ 또다시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도록, 스스로의 내면을 단단하게 다지는 것. 그것이 지금의 나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다.
그러고 나면 아이를 낳든, 낳지 않든, 행복하고 충만한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