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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사는 삶에도 적성이 있다면

2부.결혼에 관한 고찰(7)

by 유해나


혼자 사는 건 자유롭다. 내 취향으로 채워진 공간에서, 내 생활패턴에 맞게, 자유롭고 평온하게 살 수 있다.


더 이상 분리수거를 누가 할지, 몇 시에는 씻고 침대에 들어와야 할지, 화장실 대청소는 언제 할 건지 하나하나 논의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내가 하고 싶을 때 하고, 게으르고 싶을 때 마음껏 게으를 수 있는 생활이 펼쳐진다.


처음부터 혼자 살았다면 자유를 당연하게 느꼈겠지만, 둘이 살다 혼자가 되니 이런 자유로움이 너무나도 소중하다. 사소한 집안일에서부터 대소사까지 누군가와 조율하며 에너지를 쏟지 않아도 되는 지금이 참으로 달콤하다.


내가 원할 때 청소하고 게을러지고 잠을 잘 수 있다니. 상대방과 하나하나 맞춰가지 않아도 된다니 이렇게 편할 수가.




꼭 남편이 아니더라도, 각자 다른 성격을 지닌 성인 두 명이 한집에서 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사소한 생활습관도 수면 패턴도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아무리 친한 친구나 심지어 가족이라도 트러블이 생길 수밖에 없다.


혼자 살게 되면 더 이상 누군가의 거슬리는 생활 습관을 보지 않아도 된다. 수건을 똑바로 걸어놓지 않는다던가, 설거지한 그릇을 바로바로 넣어놓지 않는다던가, 새 휴지의 방향을 반대로 끼운다던가 하는 아주 사소한 일들.


사소해 보이지만 하나하나 모이면 스트레스가 된다. 타인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엄청난 배려심과 포용을 요구하는 일이다. 이제 그럴 필요 없으니 얼마나 홀가분한지!




혼자 사는 삶에 자유가 있다면, 둘이 사는 삶은 여유가 있었다. 경제적인 여유 말이다.


지만 이제 막 혼자가 된 나는 여유보다는 자유가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내가 나 스스로를 책임지고 먹여 살리고, 삶을 꾸려나가야 해서 함께할 때의 여유는 느끼기 어렵겠지만 그냥 지금이 더 좋다.


상대방의 성격이나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여유와 달리, 자유는 내가 원한다면 언제까지나, 마음 가는 대로 유지할 수 있다. 내가 벌고, 내가 살림하고, 내가 운전하고.


혼자 사는 삶에도 적성이 있다면 아마 나는 상위권일 것이다.


비로소, 이제야 온몸이 숨 쉬는 느낌이다. 더 이상 내 생각과 행동을 검열하지 않아도 된다. 누군가와 맞추기 위해서 나의 어떠한 부분을 숨기거나 죽이지 않아도 된다. 나는 그냥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혼자 자유롭게 살다 보니, 둘이 잘 살기 위해서는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 바로 상대방의 자유를 존중해 주는 것, 그리고 무 자르듯이 계산적으로 굴지 않는 것이다.


처음 동거를 시작했을 땐 뭐든 반반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청소를 했으면 네가 설거지를 해야 하고, 내가 너의 쓰레기를 치웠으니 너도 내 방식에 맞춰야 한다는 식이었다.


하지만 그런 방식은 오히려 갈등만 불러올 뿐이었다. 상대방의 행동 하나하나 지켜보며 잔소리하는 것도 힘들고, 잔소리 듣는 것도 괴로울 것이다.


그러니 성공적인 동거를 위해 가장 필요한 건 적당한 흐린눈과, 차라리 내가 조금 더 하겠다는 마음인 것이다. 그게 안되면 차라리 혼자 사는 게 훨씬 복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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