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서기 1년 후기
이혼하고 처음 맞이한 긴 연휴가 생각난다. 원래 연휴가 되면 항상 X와 함께 여행을 가곤 했는데, 오롯이 혼자서 보내야 하는 4일간의 휴일이 너무 길게 느껴졌다.
평소 주말 이틀 중 하루는 사람들을 만나고, 하루는 집안일을 하고 혼자 카페에 가면 딱이었는데 그 2배로 늘어난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몰라 연휴의 상당수를 지루함과 허전함으로 채웠다.
책 보고, 글 쓰고, 집안일하고, 가족들하고 식사하고, 친구까지 만나고 왔는데도 시간이 남다니. 항상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게 익숙했기에, 혼자서 시간 보내는 것에 서툴다는 것을 여지없이 깨달은 휴일이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추석 연휴 10일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새로 생긴 취미인 운동을 연속으로 나가고, 동생과 전시회를 다녀왔고, 독서 모임에 참여해서 사람들과 얘기하고 왔고, 부지런히 글을 썼다.
그 와중에 고양이랑 놀아주고, 집안일하고,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밀린 집안일을 하다 보니 10일이 금세 지나갔다. 널널하지도 빠듯하지도 않은 딱 좋은 정도를 이제 알게 되었다.
1년 전 혼자서 뭘 하면서 시간을 보내야 할지 몰라서 막막했던 내가 이제 나에게 딱 맞는 정도로 시간을 활용하게 되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혼자서도 잘 지낼 수 있는 법을 찾은 스스로가 정말로 기특하다.
이혼 후 1년간 내가 한 일은 결국엔 균형 잡기 였다. X 한 사람에게 온통 집중되어 있던 에너지를, 나 자신과 가족과 친구와 커리어와 취미 생활에 각각 분산했다.
X와의 관계에만 에너지를 쏟을 때는 그도 나도 버거웠다. 한 사람에게만 에너지와 자원을 몽땅 투자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이었던지. X와의 관계가 무너지면, 나 자신도 속절없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이혼 후 나는 여러 개의 버팀목을 만들었다. 일에 진심이 되었고, 운동이라는 새로운 취미도 생겼고, 좋은 친구도 생기고, 가족들과 더 돈독해지고, 무엇보다 나 자신과 잘 지내는 법을 배웠다.
이혼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모습은 없었을 것이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이제 와서 보니 미숙했던 나에게 꼭 필요한 성장통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괴롭고 힘들었던 수많은 날을 지나며 이제야 길고 긴 어둠의 터널을 통과한 느낌이다. 이제 나는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않고 온전히 내 두 발로 서서 찬란한 빛을 마주 보게 되었다.
이혼은 분명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일이었지만, 그만큼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성장의 기회를 선사해 주었다.
이혼으로 인해 괴로운 분들에게, 맞지 않는 사람과의 관계를 고민하고 있는 분들에게, 나의 글이 작은 위안과 용기가 되어주면 좋겠다.
-95년생 이혼녀 END-
연재 후기
<95년생 이혼녀>는 이혼 후 1년간의 일기를 엮은 글입니다. 이혼 직후 혼란스럽고 격렬한 감정을 최대한 가감 없이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이혼 2년 차가 된 지금은 이때와는 또 가치관이 달라진 부분도 있습니다. 생각이란 늘 변하기 마련이니까요.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사랑"에 대한 생각입니다. 이혼 직후에는 상처가 워낙 커서 또다시 누군가를 사랑을 할 수 있을까, 그냥 혼자 살아야지,라고 움츠러들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온전히 스스로를 보듬으며 1년의 시간을 보내고 나니, 결국 성숙한 사랑을 배우는 것도 인생에서 꼭 필요한 일 이라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아마도 저는 언젠간 새로운 사랑을 하겠지요. 또다시 상처받을 까봐 두려운 마음이 앞서지만, 이 마음을 극복하고 용기 있게 뛰어드는 것이 지금의 제가 해야 할 일인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그 사랑이 또다시 결혼이라는 제도로 이어질지는 미지수입니다. 자유로운 싱글의 삶, 화목한 가정을 꾸리는 삶 모두 가치 있는 인생입니다.
한 가지 변하지 않는 사실은, 어느 쪽을 선택하든, 다른 무엇보다 나 자신이 1순위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직 제가 어떤 선택을 할지 모르지만 이혼이라는 대사건은 저에게 분명 필요한 일이었고 성장의 자양분이 되어주었습니다.
저의 다음 이야기도 기대해 주세요. 지금까지 <95년생 이혼녀>를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유해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