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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꼬 용미 Jul 24. 2024

결코 평범하지 않은 미국 생존기

16. 막내의 얼리버드 입학

   

  막내가 메릴랜드에 갔을 때, 아이는 10개월이었다. 몸에 비해 머리가 컸던 막내는 돌이 지나면서 걷기 시작했다. 기저귀를 차고 뒤뚱뒤뚱 걷는 모습이 엊그제 같다. 행동반경이 넓어지자, 부엌 싱크대 하부장 안으로 들어가 숨고 곰솥에 들어가 앉기도 하면서 주로 부엌 바닥에서 놀았다. 하부장에서 꺼낸 프라이팬과 넓은 볼에 장난감 야채들을 넣고 요리를 했다. 보글보글~ 지글지글~

      

  막내는 따라쟁이였다. 형들이 학교에 갈 때, 스쿨버스 스탑까지 꼭 따라 나가 배웅을 했고 형이 쓰던 바퀴 달린 가방을 밀고 다니며 형처럼 학교도 가고 여행도 갔다. 물론 집에서 이 방 저 방을 옮겨 다니는 거였지만. 

나는 틈틈이 보면 영어를 배울까 싶어 하루 종일 PBS kids를 틀어 놨는데, 막내는 Cat in the Hat를 보며 “Buckle up!”(벨트를 매!)을 따라 했고 Word World를 보며 동물들의 노래를 따라 불렀다. 

     

  만 3살쯤 되었을 때는 컴퓨터에 앉아 영어 자판을 누르더니 알파벳을 혼자 뗐다. 나는 오히려 한글을 가르쳤는데 말이다. 제법 똘똘하다고 생각했다. 집에만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장을 다니는 엄마들은 더 어릴 때부터 아이들을 Nursery School(유아원, 사립이고 비용을 지불해야 함)에 보내 영어를 배우게 하는데 말이다. 막내도 도서관 스토리 타임만으로 안 되겠다 싶어 남편의 옆구리를 찔렀다. 뭐든 방법을 찾아보라고.    

   만 4살부터는 무료로 다닐 수 있는 Public Prekindergarten(공립 유치원, 킨더가튼부터 5학년까지를 초등학교과정으로 봄.)을 기다렸다. 

  얼리버드 입학이 있었다. 새 학기는 8월에 시작, 9월생까지 1년 먼저 조기 입학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막내는  9월생, 만 3살이 되던 해였다. 10월에 갑자기 알게 된 것이었다. 들어가기 전 인터뷰가 한번 있다고 했다. 영어책을 읽어 주긴 했고 TV를 3년째 봤고 스토리 타임을 다녔으니 한번 해보는 거지. 


  무조건 GO!   

  

  아빠 손을 잡고 막내가 인터뷰를 다녀왔다. 

  결과는 합격! 

  이제 예방주사 등 서류를 넣어야 한다. 이것도 매우 중요하다.     

 

  첫째가 캘리포니아에서 프리킨더를 들어가려 했을 때, 예방접종 서류가 없었다. 한국에서 영문으로 준비해서 갔어야 했다. 미국 병원에 서류를 떼러 갔다가 첫째는 양쪽 팔뚝에 주사를 네 방? 맞고 왔다. 아이는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빨개서 돌아왔다.      


  나였다면 한국에 연락해 예방접종 영문서류를 떼서 보내 달라 했을 것이다. 하지만, 복잡한 절차에 남편의 선택은  예방주사를 그 자리에서 다시 맞히고 서류를 떼 온 것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부모 때문에 미국까지 건너가 아들이 참 고생이 많았다. 그 경험 덕분에 메릴랜드에 올 때는 세 아이들의 예방접종기록을 영문본으로 모두 준비해 갔다.      


  막내가 학교에 간 첫날. 뒤늦게 혼자 입학하는 막내는 교실 앞에서 쉽게 들어가지 못했다. 둘째를 동원해 막내를 교실 안으로 들여보내려고 했지만, 실패…. 멀리서 지켜보던 내가 선생님에게 양해를 구하고 교실 안으로 같이 들어갔다. 막내는 엄마랑 한 번도 떨어져 본 경험이 없었던 거다. 막내의 생애 첫 학교였으므로.    

 

  교실에 들어가 매트에 동그랗게 둘러앉았다. 선생님이 커다란 스크린에 화면을 켰다. 알파벳 노래가 나왔다. 래퍼가 즐겁게 철자를 읊조리고 단어를 리듬에 맞추어 뱉어냈다. 유튜브였다. 선생님이 유튜브를 수업에 이용하는 것을 보고 신기했다. 나는 유튜브를 잘 몰랐고 영어 테이프나 학습도구를 구입해 영어 공부을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무료로 영어 자료를 볼 수 있다니 신세계였다.  

   

  “What color do you like?” (무슨 색깔을 좋아하니?)

  선생님이 질문을 던졌다.  손을 들라는 제스처를 하자, 막내가 수줍게 손을 든다. 선생님이 막내를 지목했다.

  “Green.”

  들려? 말도 해? 나는 뒤로 살짝 빠졌다. 막내는 다시 내 손을 잡아끌었다. 조금 더 머물러야 했다.      


  센터 놀이시간이 되었다. 교실은 파트별로 나누어져 있었다. 아이들은 세 그룹으로 나뉘어서 읽기 그룹은 선생님과 테이블에 앉아 읽기를 하고 다른 그룹은 부엌놀이?, 과학 놀이? 등 다른 활동을 했다.  거기에는 규칙이 있는 것 같았다. 아이들은 뭔가 붙어 있는 스틱을 갖고 이동했고 일정시간이 지나면 로테이션을 했다. 나는 교실 한쪽에 서 있다 막내 허락을 받고 그제야 나올 수 있었다. 1시간 30분 만에. 프리킨더는 오전, 오후반으로 나누어 3시간씩 운영되고 있었다.     

 

  막내가 수업을 마치고 나온다. 다른 아이들 보다 한 뼘이나 작았다. 그러나 아이의 얼굴이 밝다. 재밌다고 스스로 말을 한다. 선생님도 안 울고 잘했다고 칭찬해 주었다. 남편이 차를 가져가 우리는 한 시간을 걸어 집으로 왔다.(버스를 탈 수 있다는 건 생각도 못했다.)  둘이서 처음으로 걸었던 그 길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막내는 그날의  ‘First day of school’을 기억할까. 막내가 적응할 때까지 꼬박 일주일을 함께 수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막내는 나를 놓아주고 형들과 스쿨버스를 탈 수 있었다. 


  막내가 학교에 가자 나에게도 세 시간의 자유가 생겼다. 막내랑 함께 마트에 갈 때도 좋았지만,  혼자 한국 마트까지 국도를 달려갈 때가 더 좋았다. 한국음악을 들으며 40분을 달리는 그동안이 오로시 혼자만의 시간이었다. 차 안은 노래하는 가수와 나만 있는 공간이었다. 적당한 속도는 행복감을 주었고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느끼게 했다. 육아시작 9년 만에 맛보는 최고에 순간이었다. 


   아는 동생들과 짧은 외출도 가능해졌다. 점점 3시간이 너무 짧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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