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응원
남편이 승진 시험공부를 한다. 팀장에서 과장이 되기 위해서는 자격시험에 통과해야 한다. 얼마 만에 또 시험인지. 주말마다 나랑 놀아 주던 남편이 회사에 나가 시험공부를 하고 늦게 들어온다. 기분 탓인지 남편 얼굴이 핼쑥하다.
실험하고 연구하던 박사 남편은 본청으로 가 기획하고 돈을 만지는 사람이 되었다. 회사의 연구자들을 위해 예산을 따오고 연구를 기획하고 예산을 편성하며 서로를 조율한다.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관계들 속에서 소통해야 한다. 남편 머릿속이 온통 할 일들로 가득 차 있다. 엉킨 실타래를 풀어 예쁜 뜨개 작품을 만들어 내야 하는 일이다. 머리 쓰는 일은 체력을 갉아먹는다. 빵빵했던 근육은 어딜 가고 몸 곳곳에 흐물흐물 지방들만 물결을 친다. 술로 인한 근 손실이 온 거라고 아들도 아빠를 걱정한다.
주말 단짝을 회사시험에 빼앗기고 난 집에서 혼자다. 아이들은 집에 있어도 자기 방에서 나오지 않고 밥 먹고 학원 가고 스치듯 아주 가끔 얼굴을 보여 준다. 어쩌면 익숙해져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주말은 가족과 함께라는 대명제가 슬슬 금이 가고 있다. 아니 이미 많이 진행 중이다. 모아 놓은 빨래를 돌리고 아이들 좋아하는 음식들을 만들고 집 안 청소하는 주중과 똑같은 주말이 더 따분하게 느껴진다. 밀린 책을 읽고 글을 쓰거나 놓친 드라마를 보며 마음을 겨우 달랜다.
시험 준비 막바지, 남편은 일주일 먼저 시험을 보고 온 ㅇ박사님을 만나 시험장 분위기를 듣고 왔다. 정답이 없는 시험이라고 한다. 여러 상황에 대한 빠른 판단과 대처 능력을 보는 모양이다. 게다가 압박 면접도 있다. 20-25 명의 직원들을 통솔하는 과장이 되자면 업무 능력과 리더 십, 사람 관리 능력 등 많은 것들을 평가받아야 할 테지. 그래도 압박 면접이라니, 내가 다 숨이 막혔다. 결과는 전혀 예측하기 어렵다고 한다. 얼마 후 조심스럽게 물었다.
“o 박사님은 합격했어?”
“아니. 떨어졌어.”
“정말? o 박사님 말씀 정말 잘하시잖아. 친화력도 좋고..... 떨어지기도 하는 거였어?”
“많이들 떨어진대.”
그냥 형식적인 시험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주말마다 얼굴이 노래져서 들어온 남편은 말수가 부쩍 줄었다. 그런 남편을 보자니, 짠하다.
드디어 이틀 후가 남편 시험 날이다. 남편은 출장이 있어서 볼일을 보고 거기서 자고 시험장으로 가야 했다. 남편이 출장 가방을 싸고 있다. 나는 옆에서 셔츠와 양복을 예쁘게 접어주고 넥타이와 로션을 챙기라는 말밖에는 해 줄 게 없었다. 시험은 전적으로 남편 몫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장한 남편을 위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잠시 생각했다.
우리 엄마는 소풍날과 운동회날이면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산더미처럼 김밥을 쌌다. 아빠 도시락과 우리 4남매 도시락을 김밥으로 꽉꽉 채우고도 남을 만큼 김밥을 쌌다. 여섯 식구가 아침, 점심, 저녁 세끼 모두 김밥으로 먹을 만큼 많이 쌌다. 김밥은 하루 종일 먹어도 물리지 않았다. 분홍 소시지가 들어간 예쁜 김밥은 신나는 날만 맛보는 선물이었다. 봄 소풍, 가을 소풍과 1, 2학기 운동회. 일 년에 딱 네 번! 나에게 김밥은 즐거운 날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남편의 경우는 달랐다. 어머님은 늘 부업으로 바쁘셨다. 어머님이 부라보콘 종이를 접거나 인형 눈을 붙이거나 포장지를 접을 때, 삼 형제(남편 포함)는 그 옆에서 놀았다. 사촌 누나랑 함께 살았고 누나가 집안일을 도왔다.
어느 소풍날. 중학생 사촌 누나가 남편의 도시락을 싸 주었다.
잔디밭에 동그랗게 둘러앉아 도시락 뚜껑을 열어 본 어린 남편은 조용히 도시락 뚜껑을 닫고 눈물을 흘렸다. 도시락 안에는 흰쌀밥과 오이무침이 있었다고 한다. 어린 남편은 소풍날 당연히 먹는 김밥을 혼자 먹지 못했고 쫄쫄 굶었다. 그렇다고 엄마에게 투정 한번 부리지 못했을 게 뻔하다.
겨우 중학생인 사촌 누나가 김밥 도시락을 쌀 수 있었을까.
생계를 위해 납품 날짜를 맞춰야 했을 어머님도 안쓰럽고 사촌 누나와 어린 남편의 마음은 또 어땠을까 생각하면 내가 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래서 남편은 유난히 집에서 싼 김밥을 좋아한다.
미국 유학 시절에 나는 수백 줄의 김밥을 쌌고 큰아들 고등학교 3년 동안 아침마다 김밥을 쌌지만, 남편은 질리지 않았다. 싸우고 화해하고 싶을 때도 난 김밥을 싸곤 한다. 남편은 어린아이처럼 김밥을 아주 좋아한다.
우리에게 김밥은 특별하다. 김밥에 대한 아린 기억을 가진 남자가 즐거운 기억을 가진 여자를 만난 것이다. 그 여자(나)는 김밥을 아주 잘, 많이 싸는 여자가 되었다. 삶의 허기는 언제, 어디서든 누구한테든 느닷없이, 불시에 보상받기도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어려워도 힘들어도 삶은 살아 볼만한 것이 아닐까. 또 못 받고 크면 어떤가. 남편이고 아내고 자식에게, 친구와 이웃들에게 주면서 얻는 기쁨은 또 얼마나 큰지...
그래. 열심히 공부한 남편을 위해 나는 김밥을 싸야겠다고 결심했다! 남편의 승진 시험을 응원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겠다.
남편 출장 가는 날 아침. 나는 평소보다 더 정성을 담아 김밥을 쌌다. 달걀은 체에 내려 알끈을 제거하고 부드럽고 도톰하게 부쳤다. 그리고 오징어채와 무말랭이를 빨갛게 무쳐 빨강 김밥도 쌌다.
“떨지 말고 평소 하던 대로 해요. 당신은 잘할 거야.”
남편이 긴장하지 않도록 최대한 차분하게 무난한 멘트로 배웅해 주었다.
곧바로 개수대로 가서 설거지를 말끔하게 끝냈다. 그리고 행주를 깨끗이 빨아 예쁘게 널었다. 시험을 앞둔 사람을 위해, 또는 소망을 이루기 위해 행주는 늘 깨끗하게 유지해야 한다고 어디선가 주워 들었다. 미신 같기도 했지만, 옛날 어머님들이 장독대에서 정화수를 떠 넣고 달을 보며 빌었던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하루에 몇 번씩 수시로 행주를 빨면서 간절한 소망을 떠올리고 비는 정성을 하늘이 알아주는 것이 아닐까.
나는 행주를 빨 때마다 ‘우리 큰아들 원하는 대학에 꼭 들어가게 해 주세요.’ 3년을 빌었다. 이루어졌다!
그날도 나는 ‘남편이 승진 자격시험에 꼭 붙게 해 주세요.’ 행주를 빨면서 내가 믿는 신에게 간절히 빌었다.
시험을 앞둔 아들과 남편을 위해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한 것이다.
드디어 남편은 시험을 마쳤다. 결과는 다음날 오전 10시에 나온다고 했다.
다음날, 아침 10시가 넘어 10분이 지나도 연락이 없다. 내가 먼저 연락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을 때, 휴대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남편의 목소리가 밝고 경쾌하다.
“됐구나?”
“어. 합격했대. 이제 막 연락받았어.”
“와~~ 축하해요!! 수고 많았어요!!”
내 목소리가 하이~ 높이높이 올라가 거실 공기를 뒤흔든다. 남편 목소리도 도레미파 솔 쯤에서 춤을 춘다.
나는 김밥을 싸고 행주만 빨았다. 열심히 하는 남편을 위해 나도 뭔가 도움이 되고 싶었다. 김밥과 행주 때문에 남편이 붙은 거라고 우기는 게 아니다. 애쓰는 사람 옆에서 작은 응원을 했을 뿐이다.
(그저 뿌듯하고 행복하다.)
나는 또 고3 둘째와 고1 막내를 위해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고 행주를 깨끗이 빨 것이다. 그것이 애쓰는 아이들을 위해 내가 보내는 작은 응원이다.
뭐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한다! 소소한 하루하루가 나의 삶을 채우고 있다.
"우리 해군 큰아들 부디 건강하게 제대할 수 있게 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