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날도 아닌 날을 특별하게 만드는 법
집에서 객사까지는 걸어서 30분이다. 늘 운동이 부족한 남편은 주말에 몰아서 운동을 한다. 별일이 없다면 주말마다 나를 떠밀어 함께 걷는다. 천변을 따라 남부시장을 거쳐 한옥마을과 객사 번화가까지 걸어서 집으로 온다. 세 시간도 좋고 다섯 시간도 좋다. 무릎이 아프다고 투덜거리면 잠깐 쉬는 것이 전부다. 물 한 병만 들고 다녔고 남부시장 안에 있는 천 원짜리 커피 하나를 사서 둘이 나누어 마셨다.
요즘 남편이 바쁘다. 햇살이 고플 때, 한낮에 혼자 천변을 걷는다. 뛰다가 걷다가 땀이 좀 났고 목이 말랐다. 큰맘 먹고 혼자서 천 원짜리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사 마셨다(한여름에도 난 뜨아). 한순간에 갈증이 잡히고 입안이 깔끔해진다.
‘아~ 이거였구나!’
머리가 맑아지면서 작은 깨달음이 번쩍 찾아왔다.
이거였어.
저녁 먹고 소화시키자고 산책을 나서도 천변-남부시장-한옥마을-객사-집이었다. 먹거리 가득한 남부시장의 음식 골목을 지날 때, 한옥마을 주전부리 간식들 냄새가 폴폴 날 때, 객리단길 양옆으로 술기운과 안주를 곁들인 이야기가 가게 문밖으로 새어 나올 때. 난 괴로웠다. 자꾸 가게 앞에서 기웃거려졌고 다리가 아팠으며 찡찡댔다. 아무 날도 아닌 저녁에는 그냥 산책이었다. 걷고 소화시키고 대화하고. 끝.
보상이 없었던 거였구나! 돈 한 푼 허투루 쓰지 않는 우리 둘 성격에 작정하고 나서지 않으면 십원빵, 닭꼬치 하나도 얻어먹기 힘들어서 운동 가자면 싫었던 거구나…. 이제야 알겠다.
어릴 때부터 참는 건 이력이 났다. 가족이 함께 놀이공원이나 유원지에 놀러 가도 엄마표 도시락과 간식 말고는 솜사탕이나 아이스크림, 사탕 하나 얻어먹지 못했다. 늘 남 먹는 것을 쳐다보며 군침을 삼켰다.
남편과 연애할 때도 점심과 저녁 끼니를 때우기 위해 밥을 사 먹었지, 군것질이나 후식을 먹은 적이 거의 없었다. 그 흔한 카페에 앉아 우리 둘 다정히 커피를 마셔 본 기억이 없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웬일인지 이 나이에 없던 식탐이 생겼다. 평생 모아둔 심통이 폭발한 것일까.
이제 음식 관리하며 건강에 저축해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고 선배 언니들이 말했다. 나를 생각한 충고라는 걸 알지만, 난 심술보가 터지고 자꾸 어깃장이 놓아진다.
먹고 싶어요! 먹어 보고 싶다고요! 한 번도 보상이 없던 내 삶에 보상이라는 것을 나도 좀 받고 싶다고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반항기가 올 1월부터 불쑥불쑥 올라왔다.
마침 25일, 남편 월급날이었다.
오늘은 뭘 먹지? 매일 똑같은 반찬과 국. 그 나물에 그 식탁. 좀 지겹다. 그렇다고 전업주부인 내가 먼저 외식을 하자고 말하긴 미안했다. 그때 남편한테서 전화가 왔다.
“오늘 월급날인데. 뭐 사 갈까?”
“아니. 나가서 먹자!”
바로 대답이 튀어나왔다.
“그래, 좋아. 준비하고 있어. 곧 갈게.”
그날따라 남편 대답도 시원시원했다. 고등학생 아들 둘은 저녁 급식을 먹고 자율학습까지 한다. 아이들이 크니까 좋다. 룰루랄라~~
우리는 객사까지 걸었다. 차를 두고 걸어서 좋고 술 한잔을 먹어도 대리운전 걱정이 없다.
아침, 저녁으로 좀 쌀쌀했다. 올드타운, 조용한 우리 동네가 따뜻하고 온화한 달빛으로 물들어 있다. 골목골목을 지나 인도를 따라 걸었다. 신호등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서 있었다. 갑자기 남편이 내 손을 자기 주머니로 가져간다. 이건 <폭삭 속았수다>의 한 장면인데? 평소 안 하던 행동이다. 나는 수줍은 척 가만히 있었다.
따뜻한 체온을 나누며 우리는 객리단길 안으로 걸어갔다. 평일 저녁이라 길은 한산했지만, 가게 안에는 시끌벅적 사람들로 가득했다. 여기는 젊은 사람들의 거리다.
“우리가 들어가면 민폐일까?”
가맥 분위기의 편의점 술집 앞을 지날 때마다 우리는 늘 같은 질문을 했었다.
전주는 가맥이 유명하다. 가게에서 술을 팔고 테이블이 있어 그 자리에서 술을 마실 수 있다. 술은 저렴하고 가게마다 독특한 메뉴가 있다. 나의 지인들은 먹태를 가장 좋아한다. 가맥은 어르신들의 문화라고 생각했는데, 시내 한복판에 가맥 편의점이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었다. 투명한 무대가 마치 젊음을 뽐내기라도 한 것처럼 거기 서 있었다. 자격지심..... 우리는 가맥 편의점을 지나쳤다.
“자기야, 곱창구이 먹고 싶어.”
그때까지 내 손을 주머니에 넣고 있던 남편이 “그럼, 먹자!” 한다.
남편이 레트로 감성이 물씬 풍기는 곱창구이 집 앞으로 날 안내했다. 들어가도 될까 살짝 망설이다 우리는 애순과 관식이 되어 가게 앞에 줄을 섰다. 테이블이 꽉 차 대기 의자에 한참 앉아있다가 들어갔다. 젊은 사람들 사이로 우리는 용기를 내어 가게 안으로 돌진(?)했다. 청년들의 기운이 가득하고 후끈후끈 새파란 기운이 넘쳐흘렀다.
어둑한 조명 아래 남편 얼굴이 젊은 관식이 처럼 탱글탱글하다. 남편은 소주를, 나는 맥주를 지글지글 익어가는 곱창과 함께 마셨다. 대창을 추가하고 공깃밥과 김치찌개를 나눠 먹고 볶음밥까지 시켜 알뜰하게 먹었다. 우리는 기분 좋을 만큼 알딸딸해졌다. 우리의 다음 코스는 코인 노래방이다.
작년 겨울, 회식을 마친 남편이 객사로 데리러 오라고 했다. 남편은 많이 취해 내 손을 잡고 코인 노래방으로 들어갔다. 멀쩡한 나는 취한 남편과 한 시간 동안 노래를 불렀다. 음정 박자가 맞지 않아도 목청껏 소리소리 지르는 것이 좋았나 보다. 그 후, 우리는 가끔 코인 노래방으로 밤 산책을 다닌다.
나의 18번은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이고 남편은 윤도현의 <사랑 TWO>다.
국민학교 다닐 때,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한 <킬리만자로의 표범> 가사를 받아 적고 외웠던 것이 아직도 남아 있다. 초등학교 여자아이가 고독한 남자의 심정을 알기는 뭘 얼마나 안다고….
연애 시절 남편은 윤도현의 <사랑 TWO>를 자주 불러 주었다. 이제 보니 가사가 주옥같다. 그때는 남자 친구가 노래 불러 주는 모습에 푹 빠져 가사가 들어오지 않았다.
널 만나면 말없이 있어도
또 하나의 나처럼 편안했던 거야
널 만나면 순수한 네 모습에
철없는 아이처럼 잊었던 거야
내겐 너무 소중한 너
내겐 너무 행복한 너
(윤도현의 사랑 TWO 중에서)
우리 시대의 스타! 뱅크, 김경호, 쿨, 이승철, 윤도현, 빅마마, 김광석의 노래가 술술 나온다. 실력이 예전 같지 않다. 그래도 좋다. 무제(지드레곤의 노래), 돌덩이(하현우, 이태원 클라쓰 OST), 회전목마(소코도모의 노래) 등… 아이들에게 배운 노래도 연습한다. 우리가 부르니 무슨 노래인지 모르겠다. 그저 웃었다. 그래도 즐거웠다.
아들 셋이 엄마는 박치, 음치라고 노래방을 같이 안 가준다. 같이 갈 시간도 없으면서. 아들 셋은 아빠를 닮아 노래를 잘한다. 래원의 <느린 심장 박동>을 기가 막히게 부르는 막내. 능청스럽게 그루브를 타며 부르는 그 모습이 무척 사랑스럽다. 방탄소년단 노래는 둘째가 춤을 따라 해 알게 되었다. 한동안 푹 빠져서 방탄소년단 노래만 들었다. 그들의 가사가 얼마나 절절하고 위로가 되는지, 사람들이 왜 그렇게 열광하는지를 알 것 같았다. 늦게까지 공부하고 돌아와 밤에 샤워하면서 늘 노래를 크게 불렀던 큰아들의 목소리도 듣고 싶다.
갑자기 아이들이 보고 싶어진다. 각자의 자리에서 애쓰고 있는 우리 아들 셋과 함께 노래방에 가고 싶어진다.
매일 열심히 일하고 반복되는 일상 속에 살면서 그날 하루, 우리의 밤 외출은 보상이었다. 아이들을 키우며 함께 웃었던 그 모든 순간이 다 보상이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아이들은 매일 자라고 독립을 위해 우리 곁을 떠나가고 있는 중이다. 우리 둘만 남을 것이다. 가끔 등장하는 나의 양관식이 내 곁을 지키고 있다는 것은 든든하다. 이미 행복이었다.
남편은 "그래, 좋아." 늘 준비된 대답을 갖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낀다고 아무 날도 아닌 날에 밖에서 먹자고 당당하게 말하지 못한 것은 나였는지도.....
이제 나도 나의 관식이 옆에서 당당한 애순이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