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찜질방 데이트를 했다

남편이 변했다

by 꼬꼬 용미

“당신이나 나나 이렇게 살다 죽을 거야? 죽어라 일만 하고 아들자식 뒷바라지만 하다가? 한겨울에도 찬물로 세수하고 거실에서 이불 뒤집어쓰고 궁상스럽게 살다가? 난 싫다고! 이제 우리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되잖아. 응? 여보~ 나 혼자 친정에서 대중목욕탕에 갔는데, 얼마나 좋았다고!


옆에 누운 남편은 말이 없다.


“내가 사준 코트 얼마나 잘 입고 다녀? 다들 멋있다고 하지?”


얼마 전까지 남편은 설날에 나를 시댁에도 가지 못하게 했던 그 문제의 새 코트만 입고 다녔다.(1화 까치설날에 대중목욕탕에 갔다) 서울과 세종 출장에도, 승진 시험 면접에도, 매일 출근길에도 그것만 입었다.


그 일을 계기로 난 알았다. 고집 센 남편을 이겨 먹은 것이 20년 넘게 살면서 몇 번 안 된다는 것을. 늘 남편이 옳았다고 생각해 따랐지만, 한 번씩 남편을 설득하거나 내 의견을 관철시키는 것이 그렇게 힘들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며느리 말이니까 듣지. 평생 내 말은 듣지도 않고 뭐 하나 하려면 싸워야 하니, 원. 힘들어. 힘들어.”


고개를 저으며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던 시어머님의 말이 무슨 뜻인지 한 번에 알 것 같았다. 아무것도 모르고 시아버님 편만 들었던 게 조금 미안했다. 나보다 더 했을 그 시절을 살아내신 시어머님이 존경스럽다. 남편은 시아버님을 닮았다. 걱정이다.



결혼 준비를 할 때였다.


예비 남편은 경기도에 14평 전세면 충분하다고 했다. 종로 한복판에 둘이 서서 처음으로 크게 싸웠다. 나는 15평은 넘어야 결혼한다고 우겼지만, 끝내 지고 말았다. 나중에 알았다. 19평이 넘는 아파트 거실에 대형 냉장고가 들어가지 못하는 아파트가 있다는 것을. 우리 집 14평 아파트가 부엌(?)인지, 거실(?)인지 모를 그 공간에 4인용 식탁과 대형 냉장고가 들어가는 꽤 잘 빠진 아파트라는 것을. 두 살 많은 오빠의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하니 이후에는 무조건 남편의 의견을 따랐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긴 적은 딱 두 번(?)이다.


미국에 살 때, 뚜벅이를 정리하고 운전면허를 따게 해달라고 시위 아닌 시위를 했다. 미국에 간 지 2년 만에 미국면허를 땄다. 이후 마트 장보기와 남편, 아들 픽업은 내 몫이 되었지만 자유의 대가는 달콤했다. 내가 갈 수 있는 영역이 넓어진 거다. 세상의 크기가 더 커졌다. 남편은 내 운전면허 덕분에 여러모로 혜택을 누린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서 차가 필요하다고 했다. 지방에서 버스를 타자면 시간이 4배쯤 더 걸린다. 여기서도 웬만한 곳은 뚜벅이로 걸어 다니고 2년을 넘게 버스를 탔다. 주택의 골목이 좁아서 운전이 어려울 것 같아 망설였으나 차를 몰고 다니던 사람이 차가 없으니 많이 불편했다.


그래서 또 차를 달라고 시위를 했다. 남편은 고심 끝에 회사 선배의 폐차 직전의 차를 물려받아 끌고 왔다.

곳곳에 녹이 슬고 보기에도 우스웠지만, 거의 공짜로 받은 것에 남편은 흐뭇해했다. 결국, 자기가 그 차를 몰고 남편 차는 내게 주었다. 내가 차를 몰기 시작하면서 장보기와 아이들 픽업, 남편 대리 운전과 회사 모셔다 드리기를 다 감당하고 자유를 얻었다. 다섯 식구 살자면 기본 두 세 박스씩 장을 보는데, 다 내 몫이 되었다. 차 두 대를 유지하자면 비용문제도 있으니 난 또 가만히 있지 않았다. 알바를 시작했다. 남편이 훨씬 이득이다.



뭐 한번 하자고 들면 설득의 과정과 기간이 꽤 길고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이제 곧, 앞자리가 바뀔 위기 앞에서 나는 더 이상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평생 누구에게도 부리지 않은 땡깡(생떼)을 이 나이에 남편에게 부려보았다.


남편이 변했다.


“찜질방 가자.”


근처에 쓰레기를 태운 열을 이용한 찜질방이 있다고 했다. 대중목욕탕에 이어 찜질방에 가고 싶다고 했더니 남편이 정보를 물어왔다. 기특했다.


눈이 와서 추운 주말에 아이들 먹을 부대찌개를 한 냄비 끓여두고 우리 둘이 갔다. 사우나는 6,000원, 찜질방은 8,000원이다. 시내 찜질방의 반값이다. 역시 우리 남편이다.


우리는 목욕을 말끔하게 하고 1시간 후에 만나기로 했다. 샤워할 때마다 찔끔찔끔 이태리타월 질을 했음에도 온탕에서 나와 때를 미는 데, 지우개 가루가 뚝뚝 떨어진다. 좀 민망하면서도 아주 시원하고 개운하다. 일 년에 한 번도 때를 미는 법이 없이 샤워만 하는 남편도 지우개 때를 보고 오졌다(흡족했다)고 한다.


우리는 널찍한 찜질방에서 만났다. 나란히 매트를 깔고 얼굴에 팩을 올리고 누웠다.


KakaoTalk_20250408_114951914_02.jpg 얼굴에 팩을 올리고 기념사진~


서울 언니 집에 인사하러 갔다가 남자 친구가 너무 취해서 우리 둘, 찜질방에서 잤던 게 떠올랐다. 당시 나도 찜질방은 처음이라 잘 모르는데 취한 남자 친구에게 옷을 갈아입고 소지품을 사물함에 잘 넣고 지갑이랑 폰만 들고 나오라고 설명하자니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었다. 우리의 추억이 새록새록 깃털처럼 살아난다. 오랜만에 연애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


찜질방 요금이 저렴해서 식혜를 사 먹는데도 부담이 없었다. 미역국도 먹고 싶었지만, 아점을 먹은 탓에 배가 고프지 않았고 저녁 메뉴는 남편이 따로 생각해 둔 게 있단다.


주위를 둘러보니 가족 단위로 많이들 왔다. 아빠는 피곤해서 자고 아이들은 그 옆에서 게임하고 엄마는 소금방, 황토방, 보석방, 소나무방 등을 오가며 따뜻한 나들이를 즐긴다. 4인 가족이 평화롭다. 두 살배기 딸을 데리고 온 젊은 엄마가 보인다. 아이는 사람들 사이를 아장아장 걸어 다니고 엄마는 아이를 쫓지만, 힘든 육아에서 잠깐 콧바람 쐬러 나온 것 같았다. 아빠는 부재중이라도 눈이 와 추워서 밖에는 못 나가도 이곳이 주말 나들이지 싶었다. 그래, 집에만 있으면 우울하지. 젊은 엄마들이 더 현명하다. 정다운 노부부도 보이고 남자들끼리 온 어르신들도 보인다. 일주일 동안 바삐 뛰었을 직장인들도 보이고 살림하는 주부들도 삼삼오오 수다로 충전을 하고 있다. 새파란 청춘들도 여기서 둘만의 데이트를 즐긴다. 이렇게 사는 거지. 이게 행복이지.


소소하지만, 보기가 너무 좋았다.



“우리 한 달 치 수도세를 오늘 다 쓰고 왔네? 그래도 괜찮아?”


찜질방 밖으로 나왔다. 하얀 눈이 군데군데 쌓여 있고 해가 저물고 있다. 뽀얘진 남편 얼굴을 보며 놀리듯 물었다.


좋네. 아깝지 않아.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우리 같이 와서 쉬자.”


“그래. 좋아~”


“저녁은 푸짐한 해물탕으로 내가 쏜다!


남편이 말했다. 그리고 우리 지역을 벗어나 외곽으로 차를 몰고 달렸다. 가성비 끝판왕의 산더미 해물탕을 사고 해물은 먹지 않는 고등학생 두 아들을 위해 시장 치킨을 사서 집으로 왔다. 행복하고 푸짐한 저녁을 먹었다.


또 몇 주가 흘렀다. 드디어 진짜 봄이 왔다.


4월 5일, 지난주에도 남편과 찜질방 데이트를 다녀왔다. 건물 옆으로 고온과 저온의 고령토 한증막 불가마가 두 개 더 있다는 걸 그날 알았다. 들어가자마자, 바로 땀이 난다. 강력하다.


두 번째는 익숙해서 좋다. 감흥은 조금 옅어졌지만. 날씨가 많이 풀린 탓이다.


처음 하는 즐거움,

상대적인 만족의 크기,

익숙함과 설렘.


여러 단어들이 교차한다.


우리는 설렘과 감격의 크기를 잃지 않기 위해 아주 가끔, 찜질방 데이트를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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