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행복담기 씨소 Jul 03. 2024

달빛 산책

나는 평화로운 오늘을 걷는다

 딸~ 조금만 쉬면 안될까?
어허, 젊게 살고 싶지 않습니까?

 


[달빛 산책]

                                      씨소 에세이, 그림


 “엄마, 준비 됐어요?”

 “으응, 10분만.”

 “엄마, 더 늦으면 안 되는데.”

 “알았어~, 지금 나가려고 했어.”

 저녁 8시. 꾸물대는 내 모습에 딸아이가 재촉을 한다. 밀린 설거지를 끝내고 산책하는 시간이다. 정확히는 ‘건강 되찾기 프로젝트’다.

 몇 해 전, 코로나19의 확산은 내 삶을 바꾸었다. 학교나 기업에서는 줌수업으로 필요한 인력이 줄었고, AI의 등장과 핸드폰 번역기의 우수한 성능은 나를 사지로 내몰았다.

 나를 찾는 사람은 없는데 갱년기가 찾아왔다. 불면증과 알 수 없는 통증으로 하루 3시간 이상 잘 수가 없었다. 스트레스로 2년 동안 체중이 12kg 늘었다. 사람들은 ‘건강을 잃으면 모두 잃은 거다’라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일자리도 건강도 잃었던 시간 속에 내 존재는 갇혀있었다.     


 어느 날, 불어난 체중과 통증으로 끙끙거리는 나를 안으며 딸아이가 울먹였다.

 “우리 엄마, 정말 예뻤는데... 엄마 오래 살아야 해. 건강하려면 많이 걷고 운동해야 해. 계속 살찌고 잠도 못 자면 큰일 날 거 같아.”

 딸아이의 목소리는 나를 슬프게 했다.

 그날부터 나를 위해, 아직 내 손길이 필요한 아이들을 위해 건강을 되찾아야 한다는 결심을 했다.

막상 결심은 했지만 뭘 해야 할지 몰랐다.

 얼마 전 딸아이는 더 미루면 안 된다며 저녁 식사 이후 매일 걷자고 제안했다.

 “엄마, 내가 검색해 보니까 오래 살려면 유산소 운동을, 멋지게 살려면 근력운동을 하래. 이제부터 나하고 저녁마다 걷는 거야. 알았지?”

 고개를 끄덕였지만 역시나 자신이 없었다. 워낙 운동을 싫어하지만 12kg이 늘어서인지 조금만 움직여도 무릎이 아팠다.



 봄바람 부는 저녁, 딸아이의 손에 이끌려 문밖의 세상으로 나갔다.

 막상 바깥세상으로 나오니 기분은 상쾌하다.

 문제는 기분은 좋은데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공원 한 바퀴 돌자 다리에 힘이 풀리고 어질어질했다. 앉을 곳을 찾자 딸아이가 갑자기 구령을 외친다.

 “벌써 포기합니까? 앞을 보고 팔은 높이 치켜들고!”

 화들짝 놀라 난 다시 걷기 시작했다. 팔다리가 엇박자로 맘대로 움직인다.

 “어허, 배에 힘주고. 젊게 살고 싶지 않습니까? 쉬지 말고 앞으로 가!”

 흐느적거리는 모습에 딸아이가 깔깔대며 웃는다. 웃음소리가 밤하늘에 울려 퍼지자 내 마음에 평온이 내려앉았다.     


 불과 얼마 전까지 내 마음에 평온이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다. 일자리와 건강을 잃었을 때 살아갈 이유를 찾지 못했다. 요즘 나는 안정된 직업이나 건강보다 더 소중한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평범한 내 일상의 평화다.

 아이들과 자전거를 타고 공원 한 바퀴 돌며 웃던 날, 하루를 애쓰며 보낸 가족을 위해 얼큰한 김치찌개와 삼겹살을 구운 일, 가족 간에 오가는 안부 메시지와 집안에서 풍기는 온기.

 살아가며 나에게 또 적신호가 울린다 해도 소중한 이 일상의 평화를 놓치지 말아야겠다.

 딸아이의 구령에 맞추어 흔들림 없이 나는 평화로운 오늘을 걷는다,

 “하나 둘, 하나 둘.”


씨소 드로잉~*


#산책 #평온 #건강회복 #봄같은딸

이전 02화 나의 두 번째 여행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