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2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 헨드릭 안톤 로렌츠
이번에는 지난번 글에서 다룬 피테르 제이만과 함께 1902년 "자기장이 방사 현상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로 노벨상을 수상한 헨드릭 안톤 로렌츠의 업적에 대해 다룬다.
지난 글에서는 제이만이 제이만 효과를 발견한 과정에 대해 다뤘으면 이번 글에서는 로렌츠가 어떻게 제이만 효과를 이론적으로 설명했는가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뤄보자.
지난 글에서 제이만 효과란 불꽃반응을 일으키는 금속에 자기장을 걸었을 경우 금속에서 방출된 빛의 스펙트럼이 갈라지는 현상이라고 설명했었다. 특히 제이만이 카드뮴 선에서 발견한 제이만 효과의 특징은 카드뮴 불꽃의 스펙트럼이 3갈래로 나뉜다는 사실이다.
제이만 효과를 설명하기에 앞서 과거에는 어떻게 불꽃반응 현상을 이론적으로 설명했는지 알아보자.
고전적인 전자기 이론에서 빛은 전자기파의 일종이며 전하를 가진 입자가 진동 운동을 할 경우 그 진동 운동의 에너지에 해당하는 빛이 방출된다는 사실이 제임스 맥스웰에 의해 밝혀졌다. 그래서 당대에는 이 이론을 이용해 불꽃반응을 설명하려 했다.
로렌츠 또한 그러한 학자 중 한 명이었으며 그는 여러 가지 광학 현상을 맥스웰의 전자기파 이론을 통해서 설명하려 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굴절 현상이 있다. 공기 중에서 물로 진행하는 빛의 경우 그 경로가 휘어지는데 로렌츠 이전에는 공기 중에서의 빛의 속도와 물에서의 빛의 속도가 다르기 때문에 경로가 휘어지는 것으로 설명했다.
로렌츠는 물질 내부에서 빛의 속도가 느려지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전자'라는 작은 전하를 띤 입자의 존재를 가정했다. 전자기파가 매질로 진행할 경우 빛을 구성하고 있는 전기장에 의해 전자가 진동하게 되며 이는 빛의 에너지가 전자들의 진동 운동 에너지로 전환되었다는 의미다. 그리고 빛의 전기장에 의해 진동하게 된 전자는 맥스웰의 전자기 이론에 따라 다시 빛을 방출한다.
전자가 빛을 흡수해 진동 운동을 하고 진동 운동에 의해 빛을 다시 방출되는 과정은 필연적으로 시간 지연을 유발하게 된다. 빛의 에너지가 전자에 흡수될 경우 전자의 질량에 의한 관성 때문에 곧바로 흡수한 빛과 똑같은 빛을 방출하는 진동 운동을 하지 못한다. 그렇게 발생한 시간 지연은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면 빛이 똑같은 거리를 가는데 소모하는 시간을 크게 만든다. 즉, 빛의 속도가 느려졌다고 해석할 수 있게 된다.
실제로 이를 기반으로 물질의 굴절률을 계산할 수 있으며 가장 좋은 사례로 물과 수증기의 예시를 들어보자. 두 물질은 똑같은 H2O로 이루어져 있지만 H2O 분자의 밀도는 큰 차이가 있다. 로렌츠는 이러한 밀도 차이가 곧 전자의 밀도 차이라 가정하고 물과 수증기의 굴절률을 계산했다. 그리고 로렌츠의 계산은 실제 측정 결과와 잘 일치했다. 이때의 계산 결과를 로렌츠-로렌즈 공식이라고 부른다. (이름이 유사한 다른 사람이 같은 업적을 낸 것이다!)
하지만 로렌츠가 개발하던 전자를 이용해 빛과 물질의 상호작용을 이해하는 이론 체계는 기존의 전기장과 자기장을 이용한 맥스웰의 이론 체계로 표현하기에 어려움이 있었다. 더욱이 당시에는 '에테르'의 존재를 가정했기 때문에 더더욱 맥스웰의 전자기장 이론은 로렌츠의 이론과 잘 맞지 않았다.
그래서 로렌츠는 하전 입자를 기반으로 전자기 상호작용을 기술하는 이론 체계를 만들었는데 이는 오늘날에 로렌츠 힘 공식이라고 부르는 방식으로 알려져 있다. 이 로렌츠 힘 공식에 의하면 자기장 하에서 운동하는 전자는 운동 방향과 자기장에 모두 수직인 방향으로 자기력을 받는다.
로렌츠는 로렌츠 힘 공식을 이용해서 제이만 효과를 설명했다. 물체가 불꽃반응을 일으키면 물체 내부의 전자가 진동 운동을 하는데 로렌츠는 이러한 전자의 진동 운동을 훅의 법칙을 이용해서 기술했다. 다시 말해 불꽃 반응하는 물체의 전자의 진동 운동을 용수철에 매달린 전자의 운동 형태로 나타낸다.
이렇게 훅의 법칙을 따라 진동하는 전자에 자기장을 가할 경우 로렌츠 힘이 작용해 전자의 진동 운동을 변화시킨다. 로렌츠는 훅의 법칙과 로렌츠 힘 공식을 조합한 운동 방정식을 풀어서 전자의 진동 주파수가 자기장에 의해 본래 주파수보다 커지거나 작아짐을 보였다.
이때 주파수 변화량은 자기장에 비례하며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일정한 값이 변한다.
이는 전자의 진동 운동이 자기장의 영향을 받아 다른 두 가지 형태의 진동을 추가로 만들어냈으며 곧 전자의 진동 에너지가 총 3가지 경우의 수를 가짐을 의미한다. 세 가지 진동은 세 가지 서로 다른 에너지의 빛을 방출하며 이는 세 가지 색상의 빛을 의미한다. 바로 제이만의 실험에서 나타난 빛 스펙트럼의 세 갈래 쪼개짐을 의미한다.
방출된 빛의 에너지 차이는 스펙트럼이 얼마나 갈라지는 가를 통해서 직접 측정할 수 있다. 따라서 원래 스펙트럼에서 얼마나 멀리 갈라졌는가를 측정하면 자기장에 의해 변화된 진동의 에너지를 구할 수 있다.
위의 주파수 차이 공식에서 전하량, 광속 그리고 투자율은 정해진 값이고 자기장은 실험 세팅에 따라 조절하는 값이다. 따라서 에너지 차이를 측정한 다음 에너지와 주파수 사이의 관계식을 이용하면 전자의 질량을 유추할 수 있다. 놀랍게도 이때 예견된 전자의 질량은 음극선 실험에서 예견되었던 전자의 질량과 일치했다.
그러나 로렌츠의 이론에는 한계가 존재했다. 대표적으로 제이만의 실험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발견된 비정상 제이만 효과가 있다.
로렌츠의 이론에 따르면 빛의 스펙트럼은 3개, 더 엄밀하게는 홀수개로 쪼개져야 하는데 짝수개로 쪼개지는 현상이 발견됐다. 그래서 로렌츠의 이론으로 잘 설명되는 제이만 효과는 정상 제이만 효과, 설명되지 못하는 제이만 효과를 비정상 제이만 효과라고 부른다.
로렌츠의 한계는 양자역학이 개발되면서 해소됐다. 현대에는 양자역학을 사용해 제이만 효과를 설명하는데 먼저 정상 제이만 효과가 어떻게 로렌츠의 고전적 이론에서 양자역학 이론으로 대체되었는지 알아보자.
먼저 양자역학에 의하면 원자핵 주위를 공전하는 전자 궤도 상태를 주양자수(n), 부양자수(l) 그리고 자기 양자수(m)로 분류할 수 있다. 주양자수의 경우 원자핵에서 몇 번째 궤도인가를 나타내는 양자수이며 부양자수는 해당 궤도에 존재하는 오비탈의 종류를 표현하고 자기 양자수는 오비탈의 방향을 결정한다.
가령 n=2인 궤도의 경우 l=0인 오비탈과 l=1인 오비탈이 존재하며 이때 l=0인 오비탈은 s-오비탈, l=1는 p-오비탈을 의미한다. 이외에도 더 높은 주양자수 상태에선 l=2일 때 d-orbital, l=3일 때 f-오비탈 등이 존재한다. 또한 n=2 궤도에는 s-오비탈과 p-오비탈만 존재하며 n=3의 경우 s, p, d-오비탈까지 존재한다. 오비탈의 종류는 주양자수가 커질수록 다양하게 존재한다.
각각의 오비탈들은 다시 자기 양자수로 구분이 되는데 어떤 부양자수가 l인 상태에는 (2l+1) 개의 오비탈이 존재하며 이들은 각각 자기 양자수로 구분된다. s-오비탈의 경우 m=0인 단 한 개의 오비탈만 존재하며 p-오비탈의 경우 m=-1, 0, 1인 세 개의 오비탈이 존재한다. 이를 확장하면 d-오비탈은 5개, f-오비탈은 7개의 오비탈이 존재한다.
일반적인 상황에서 같은 주양자수와 부양자수를 가지는 오비탈들은 같은 에너지를 가지는 상태가 된다. 하지만 자기장을 가할 경우 전자의 궤도 운동과 자기장의 상호 작용 에너지가 발생하면서 자기 양자수 상태들이 서로 다른 에너지를 가지게 된다. 즉, 전자의 공전 궤도가 자기장과 공전 궤도의 방향에 따라 미세하게 쪼개진다.
p-오비탈의 경우 세 가지 서로 다른 방향이 있기 때문에 세 갈래로 쪼개지고 d-오비탈의 경우 다섯 갈래로 쪼개지는 일이 일어난다. 이렇게 쪼개진 전자의 궤도들은 자기장에 의해 공전 에너지가 바뀌어 각각 다른 에너지의 빛을 방출하게 되므로 이는 홀수개로 쪼개지는 정상 제이만 효과와 일치한다. 또한 이때 발생하는 궤도 간의 에너지 차이는 로렌츠의 계산과도 일치한다.
비정상 제이만 효과의 경우 전자가 자체적으로 가지고 있는 양자수인 스핀 양자수(s)에 의한 현상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정상 제이만 효과가 전자의 공전 운동이 자기장의 영향을 받아 생기는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면 스핀에 의한 효과는 전자의 자전 운동에 대응된다.
전자는 두 가지 스핀 상태가 가능한데 이를 자전 운동에 대입해서 이해할 수 있다. 자전 방향을 오른손 법칙을 이용해서 표현하면 반시계 방향 회전은 엄지 손가락이 윗 방향을 가리켜 이를 업 스핀에 대응된다고 할 수 있다. 반대로 시계 방향의 회전은 엄지 손가락이 아랫 방향을 가리키며 이는 다운 스핀에 대응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양자역학에 의하면 스핀의 방향에 따라서 자기장과 상호작용 에너지가 서로 다른데 이를 현대에는 제이만 에너지라고 부른다. 같은 자기 양자수 상태에 있는 전자들은 반드시 스핀 양자수가 서로 달라야 하고 이로 인해 같은 자기 양자수를 가지는 궤도가 스핀에 의해 다시 한번 갈라지게 된다. 이때는 짝수개로 쪼개질 수밖에 없다.
이후에는 강한 자기장 아래에서 빛의 스펙트럼이 너무나 크게 벌어져 서로 다른 부양자수를 가지는 오비탈 상태끼리 겹쳐버리는 현상도 발견됐다. 이 현상을 파셴-바크 효과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