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언일맥(一言一脈) 두번째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

by 이민행

1.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 사유의 위대함


"인간은 자연 앞에서 가장 연약한 갈대에 불과하다.하지만 그는 생각하는 갈대이다.

L'homme n'est qu'un roseau le plus faible de la nature:mais c'est un roseau pensant"

- 파스칼, 『팡세』 중에서


오늘 소개해 드릴 명언은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과학자이며, 수학자 그리고 신학자였던 블레즈 파스칼(Blaise Pascal)의 남긴 말입니다. 팡세(Pancees)는 프랑스어로 생각이라는 뜻입니다.

파스칼이 세상을 떠나고 유족과 친척들이 그가 남긴 글들을 묶어 펴낸 것이 팡세인데요, 이 유고집에서 그는 신을 믿는다는 것이 논리적으로도 합리적임을 증명하려 했었고, 그와 동시에 인간의 한계와 위대함을 통찰하고자 하였습니다. 자연 앞에서 한없이 연약한 존재이지만, 그럼에도 인간의 진정한 위대함이란 '이성'과 '자아'에 있음을 강조했습니다.


2. 동양철학에서 말하는 생각하는 인간


춘추전국시대, 장자 또한 우주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인간이란 얼마나 작고 미약한 존재인가를 깊이 사유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연약함 속에 깃든 의식과 사유, 그리고 그로부터 비롯되는 자유의 가능성을 탐구하고자 했습니다.

장자의 대표 저작 『장자(莊子)』 중 첫 편인 『소요유(逍遙遊)』의 서문에는 북쪽 바다에 사는 수천 리 크기의 물고기 ‘곤(鯤)’이 하늘로 솟아올라 ‘붕(鵬)’이라는 거대한 새가 되어 9만 리를 한 번 날갯짓으로 난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황당하고 비현실적인 이야기 속에는 장자의 세계관이 담겨 있습니다.

자연의 이치와 도(道)에 순응하면서도, 사유와 상상의 힘을 통해 현실의 경계를 넘는 자유로운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철학입니다. 장자에게 ‘생각하는 인간’이란 비록 현실 세계에서는 연약한 존재일지라도,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생각하고, 초월하려는 태도를 가진 존재입니다. 곤과 붕처럼 말이죠.


3. 과학이 말하는 메타인지


17세기의 파스칼은 인간을 "자연 앞에서는 가장 연약한 존재지만, 생각할 수 있기에 고귀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21세기, 현대 과학은 이 명제를 보다 정밀한 언어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 중심에는 바로 뇌과학이 있습니다.

인간의 뇌는 체중의 2%에 불과하지만, 심장이 내보내는 혈류의 15%, 산소 소비량의 25%를 사용합니다.
이 작은 기관이 감각, 운동, 언어뿐 아니라 기억, 감정, 공감, 의식까지 모두 관장합니다. 우리가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능력’—곧 사유의 힘은 뇌의 복잡한 회로와 활동에서 비롯됩니다.


뇌과학은 단순한 생물학을 넘어 인문학이 던졌던 철학적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학문이 되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의식이란 무엇인가?'를 실험과 데이터, 장치와 수학으로 설명하게 될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4. 문학 속 인간의 사유


알베르 카뮈 – 『시지프 신화』

“우리는 시지프를 행복한 사람으로 상상해야 한다.”


프랑스의 문학가인 알베르 카뮈는 그의 저서인 시지프 신화에서 인간 삶의 부조리를 설명했습니다.

신들의 형벌로 인해 시지프는 거대한 돌을 산위로 밀어올리고 굴러 떨어지는 무한한 반복에 갇힌 연약한 존재이죠. 그러나 카뮈는 그를 부조리한 현실을 알고도 그 안에서 의미를 만들어내려는 존재, 즉 자기 운명을 인식하고 받아들이며, 생각하고 행동하는 인간이라고 역설합니다. 단순히 돌을 밀어 올리는 기계적인 존재가 아니라, 의식적으로 그 삶을 견디고, 받아들이고, 스스로의 의미를 창조해내는 존재라는 것이죠.


육체는 갈대처럼 연약하고, 상황은 절망적일 수 있으나, 그 모든 것을 이해하고 견디며, 그 너머를 사유할 수 있는 인간이기에 그는(우리는) 고귀하고 위대한 존재입니다.


5. 예술 속 생각하는 인간


때로는 수많은 수식의 언어로는 다 담을 수 없는 깨달음이, 단 하나의 그림이나 음악으로 표현되어 지기도 합니다. 오귀스트 로댕(Auguste Rodin)은 그의 대표작 『생각하는 사람』을 통해 '생각하는 인간'의 이미지를 강렬하게 표현하였습니다. 돌 위에 앉아 고개를 숙인 채 한 손으로 턱을 괴고 앉아 있는 근육질의 남성은 마치 곧바로 살아 움직일 것 같은 긴장감을 줍니다. 그러나 그 실체는 영원히 계속 생각하는 인간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죠. 말없이 앉아 있지만, 그 침묵 속에는 끊임없이 묻고, 의심하고, 찾고자 하는 존재인 우리 인간 전체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갈대처럼 흔들리더라도, 생각은 놓아서는 안됩니다.


짧지 않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수많은 변화를 겪습니다. 잔잔하던 하늘에 금세 폭풍이 몰아치고, 그 위에 다시 햇살이 비추는 것처럼, 삶은 예측할 수 없는 흐름으로 우리를 시험하죠. 그럼에도 우리가 위대한 이유는,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생각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강조되는 이 시대에 정작 우리의 삶은 깊은 사유와는 멀어져 가고 있습니다. 짧고 자극적인 정보, 거름 없이 받아들이는 무분별한 콘텐츠, 누군가의 말이 곧 나의 생각이 되어버리는 현실 속에서 생각은 점점 얕고, 가벼워지고 있죠.

그러나 생각은 남이 대신해줄 수 없는, 오직 ‘나만의 것’입니다. 지식을 습득하고, 지혜를 구하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가는 그 시간만이 우리를 진짜 ‘나’로 세워줄 수 있습니다.


『밀도있는 삶을 위해, 생각의 밀도를 짙게 해야 합니다.』




하나의 명언이 하나로 흐르다.

– 일언일맥(一言一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