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언일맥(一言一脈) 여섯번째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by 이민행

1.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 문화의 힘


“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하지 가장 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우리의 부(富)력이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强)력이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이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떄문이다. "


— 백범 김구, '백범일지'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편 중에서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앞장섰던 백범 김구선생님께서는 이제 막 일제치하에 벗어난 가난하고 약한 우리나라를 향해 문화의 힘을 길러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도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선생의 외침은 그저 메아리와 같았습니다.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전쟁까지 치른 후에는 세계 최약소국이었죠. 그러나 100년이 안된 현재, 대한민국은 세계에 한류(韓流)라는 문화를 퍼트리고 있습니다.


백범 김구(1876–1949)는 조선 말기부터 대한민국 임시정부 시기를 거쳐 해방 직후까지, 한국 근현대사에서 가장 상징적이며 위대한 독립운동가이자 민족 지도자입니다. ‘백범(白凡) - 평범한 백성’이라 칭하며 지도자가 아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항상 겸손한 자세를 유지했습니다. 항일 무장 투쟁을 주도하며 독립군을 조직하고, 임시정부의 주석으로 활약하면서도, 단순히 군사적 독립이나 정치적 해방만을 목표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궁극적 이상은, 정신적으로 독립된 국민, 도덕과 예술, 철학과 전통을 품은 문화국가였습니다.


김구 선생은 해방직후 남북의 대립이 점점 격화되는 상황 속에서, 총칼이나 이념이 아닌 ‘문화의 품격’이 민족을 이끈다고 믿었습니다. 선생이 생각한 문화란,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는 근간이고, 국민을 행복하게 만드는 정신적 자산이며, 세계를 설득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무기였습니다. 그렇기에 부국강병보다 먼저, 인간다운 삶, 사람을 존중하는 나라, 그리고 감동을 주는 문화를 가진 나라를 꿈꾸었던 것이죠.


2. 동양철학에서 말하는 문화의 이상, 시경(詩經)


공자가 말하는 배움에는 단지 유학적 경전만이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일찍이 시(詩), 서(書), 예(禮), 악(樂) 등을 배우는 것을 통해 인격을 닦고 세상을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으며, 그중에서도『시경(詩經)』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 유가의 주요 경전이었습니다.

『시경』은 중국 주나라와 그 이전 시대의 노래와 민요를 모은 문학 작품집으로, 당시 왕실 의례에 쓰인 송(頌), 제례 때 부르던 아(雅), 백성들의 민요인 풍(風)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왕과 귀족의 문화뿐 아니라 백성의 삶과 감정, 계절과 노동, 사랑과 한숨까지도 절절히 담긴 귀중한 고전이죠.

공자는 『시경』의 3,000여 편을 직접 읽고 가려 뽑아 305편만을 정리하였고, 이를 교육의 기본으로 삼았습니다. 그가 시경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했는지는『논어』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긴 것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시를 배우지 않으면 말할 수 없다 (불학시 不學詩, 무이언 無以言).”

— 『논어』, 계씨편


시를 통해 사람의 마음을 알고, 공감과 예절을 배우며, 감정을 절제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는 공자의 문화철학이 담겨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3. 서양철학에서 말하는 인간을 완성하는 문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단순히 생물학적 존재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인간을 이성적 사고를 통해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는 존재라고 생각했죠. 문화에 대한 그의 생각은 예술, 교육, 정치, 덕(arete), 카타르시스 등의 개념을 통해 드러나 있습니다.

『시학(詩學)』에서 그는 비극적인 소재의 예술은 "공포와 연민을 일으켜 카타르시스(catharsis, 정화)에 도달하게 하는 것"이라 말했습니다. 여기서 예술은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정서를 순화시키고 감정과 이성을 조율하여 인간을 더 고양된 존재로 이끌어주는 문화적 장치였습니다.

또한 그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에토스(ethos)', 즉 성품이나 도덕적 습관이야말로 진정한 덕목이라고 보았고, 이를 위해 어릴 때부터 좋은 문화적 환경과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서 문화는 이성적 습관과 덕의 형성을 가능하게 하는 토양이었고, 그 결과 인간은 ‘탁월성(areté)’을 실현하며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는 존재가 됩니다.


정리하자면, 예술은 감정의 정화를 통해 인간을 더 깊은 존재로 성숙시키는 수단이고, 교육은 덕을 기르고 공동체적 삶을 이끄는 원동력입니다. 이를 통해 만들어진 문화의 누적된 힘은 인간이 그저 살아가는 생명체가 아닌, 이성적이고 도덕적인 존재로 완성되어가는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4. 과학에서 말하는 문화의 깊이


20세기 최고의 물리학자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리처드 파인만(Richard Feynman)은 양자역학의 핵심 이론인 파인만 도표(Feynman Diagram)를 고안하고,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위대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과학이라는 분야에 그치지 않고 끊임없는 질문과 사유를 통해, 과학이 단지 숫자나 공식의 집합이 아니라 삶과 연결된 문화적 행위임을 강조했습니다.


"물리학자가 꽃을 보는 방식은 시인의 방식보다 덜 아름답지 않다. 오히려 우리는 그 안에서 더 많은 경이로움을 본다."

— 리처드 파인만


많은 사람들은 과학이 예술이나 문학과는 거리가 먼, 건조한 영역이라 생각하지만, 파인만은 오히려 과학은 세상을 더 깊이 감상하게 만드는 문화의 도구라고 말했습니다. 시인이 한 송이 꽃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듯이, 물리학자는 그 꽃 안의 광합성 과정, 분자 배열, 빛의 파장을 떠올리며 더 넓고도 깊은 감동을 느낄 수 있다고 했죠. 그에게 있어 과학은 지식의 산물이자 동시에 또다른 인간 정신, 즉 문화의 표현이었습니다.


5. 문학에서 말하는 문화의 정의


20세기 영문학을 대표하는 시인이자 문학 비평가였던 T.S. 엘리엇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황폐해진 유럽 문명을 되돌아보며 ‘문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으로『문화의 정의(1948)』라는 수필을 발표합니다.

그는 문화란 단순히 미술이나 음악, 문학처럼 고급 예술의 총합이 아니며, 한 사회를 살아가는 방식 전체라고 보았습니다. 농부의 일상, 시장의 언어, 아이들의 놀이문화, 그리고 시와 철학까지...이 모든 것이 ‘문화’라는 하나의 유기체를 이룬다는 것이죠.


“문화는 전체 사회의 삶의 방식이며, 오직 전통과 종교가 뿌리 깊이 살아 있는 곳에서만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다.”
— T.S. 엘리엇, 『문화의 정의』 중


엘리엇은 정신적·윤리적 기반이 없는 문화는 허망한 껍데기일 뿐이라고 경고했습니다. 단지 고급 예술을 소비하는 ‘취향의 표현’이 아닌, 공동체의 전통과 가치를 계승하고 깊이 있게 성찰하는 정신이야말로 진정한 문화의 힘이라고 본 것입니다.

또한 그는 문화의 발전은 지속적인 교육과 문학적 전통의 축적에서 비롯된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빠르게 기술이 발전하고 생활이 편리해져도, 인간다운 감성과 도덕적 상상력은 문학을 통한 내면의 성숙에서 비롯된다고 보았습니다.


사람답게 살아가는 힘, 그것은 문화입니다.


강대한 힘과 막강한 부를 가진 다는 건 사람이든 사회든 국가든 분명 대단한 강점입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결국 눈에 보이는 것들, 즉 언제든지 사라질 수 있는 존재들입니다. 진정 소중한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사랑, 우정, 배려, 공감, 희생, 용기, 희망...

문화는 눈에 보이는 듯하지만, 사실은 우리 안에 깃든 생각의 품격, 마음의 태도입니다.

김구 선생님이 말한 “문화의 힘”은 단지 예술이나 지식의 영역만은 아닐 겁니다. 바로 나와 너, 우리 대한민국이 바르고, 올곧게 세상을 살아가는 자세, 살아가는 방식을 말하신게 아닐까요? 그리고 그러한 우리의 모습이 쌓이다 보면, 이를 바라보는 세계인들에게 귀감이 되는 것... 그것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들에 가치를 두고 소중히 하는 마음.

그것이 위대한 스승의 바램이었을 겁니다.』


하나의 명언이 하나로 흐르다.

– 일언일맥(一言一脈) -

이전 05화일언일맥(一言一脈) 다섯번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