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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미 May 03. 2024

한 해에 두 번이나 유산했어야만 했던 이유

곧 있으면 결혼 2주년이 되는 우리 부부는 아이 없이 둘이 살고 있지만, 난 두 번이나 임신을 했었다. 처음 계류유산을 하고 난 뒤로는 상심이 너무 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빠른 시일 내에 몸조리를 끝내고 다시 임신을 하는 것이 내 목표였다. 그때는 그게 나를 위한 거라고 생각했다. 다시 아기를 품어 낳아야만 유산으로 겪은 상처가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니던 직장을 바로 그만뒀고, 곧바로 재임신을 위해 준비했다.


당시에 내가 끌고 다니던 차가 있었는데 내가 5년 정도 몰고 다녔던 중고차였다. 연식이 오래되었기 때문에 잔고장이 잦았고 때마다 고쳐가면서 여기저기 끌고 다녔다. 유산 후 마음과 몸을 살피는 동안에는 엔진 고장이 나고 수리비가 300만 원이 나왔다. 그 값이면 똑같은 차를 중고로 새로 살 수도 있는 가격이었기 때문에 결국엔 폐차를 했다. 수도 없이 공업사에 들락거리면서 지긋지긋했던 애증의 차였지만, 남편이랑 연애시절 추억이 담긴 차여서 예상외로 슬펐다. 이후에는 아기를 다시 가져서 낳게 되면 큰 차가 필요할 것 같아서 suv를 계약해 뒀었다. 그리고 나는 다행히도 다시 임신을 했지만 또 유산을 했다. 덕분에 4,000만 원에 가까운 차를 지금 당장 무리해서 사지 않아도 되어서 남편과 상의 끝에 출고 2주 앞두고 계약을 취소하고 경차를 재계약했다. 결국에 나는 계획에는 없었던 '직장도 없고, 아이도 없고, 차도 없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게다가 아빠는 아프고.


그 사이에 나는 집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했고, 벌써 시간이 꽤 흘러서 얼마 뒤면 재계약해두었던 경차가 출고될 예정이다. 계약 당시에는 5개월 정도 기다려야 수도 있다고 들었지만, 감사하게도 조만간으로 출고일이 잡히고 있으니 달 만에 차를 받게 된다. 지난달 갑작스레 아빠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는 매일같이 직장 대신 친정으로 출근한다. 나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던 계류유산을 계기로 프리랜서로 집에서 일을 하게 되었고, 남은 시간은 항암 중인 아빠와 함께 걷고 많은 시간을 보낸다. 비록 차가 없지만 주로 택시를 이용하거나 남편 찬스를 쓸 수 있고, 조만간이면 출고될 차를 아주 유용하게 쓸 계획이 생겼다. 엄마 아빠와 함께 흙길을 찾아 나서고, 차에서 쉬고 밥도 먹으면서 더 오랜 시간 자연에 머무를 예정이다.


요즘 밖에서 만나는 어른들이 나에게 묻는다. 몇 살인지, 결혼은 했는지, 결혼한 지 얼마나 되었는지, 아기는 있는지 말이다. 그리고는 양가 부모님에게도 듣지 않는 잔소리를 듣고 있다. 몸을 따뜻하게 해야 한다. 찜질을 해야 한다. 남편과 함께 운동을 해야 한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난임이 심하다며 따뜻한 마음으로 해주시는 걱정 어린 조언은 감사하게 받는다. 하지만 초면에 내게 아기를 낳냐며, 낳을 거냐 말 거냐며 열을 내시는 분까지 있었다. 심지어 그분은 의료기기 업체에서 해당 의료기기 판매를 위해 그런 말을 했다. 그 말을 듣는 상대가 해에 계류유산을 겪었고, 그 누구보다도 아기를 기다리고 있는 건 본인이라는 걸 안다면 그렇게 이야기할 있었을까? 요즘 아기 없이 살고 있는 신혼부부가 많다지만 가정에 따라 아픔과 상실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고 아픈 사람들의 병과 슬픔이 누군가에게 마침 잘 만난 돈벌이 상대가 되진 않았으면 좋겠다.


난 한 해에 두 번의 유산을 겪으면서 생명의 귀함을 뼈저리게 배웠다. 치열하게 아프고 힘들었고, 모든 것을 다 잃은 것 같았지만 오히려 많은 것을 얻은 것이 분명하다. 애초에 유산을 겪지 않았더라면 우리 부부에게 찾아 올 생명을 그토록 위대하게 여길 수 없을 것이고, 여전히 직장을 다니고 있더라면 프리랜서 전향은 물론이고 암 투병 중인 아빠와 지금처럼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했을 것이고, 그때 무리해서 차를 샀더라면 절실히 차가 필요한 이때에 때마침 출고되는 경차에도 이렇게나 감사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을까. 게다가 내가 지금 육아 중이라면 내 온 신경은 아픈 아빠보다 어린 내 새끼에게 가고, 아빠의 항암 과정을 지금처럼 함께 할 수 없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아빠에게는 절실히 내가 필요하고 나에게는 아기를 가질 적합한 때가 있으므로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하고, 난 그저 일어난 모든 일에 감사해야겠다는 마음이다. 그리고 아빠의 항암이 무사히 끝나고, 우리 부부에게 건강한 아기가 찾아오는 날 더없이 기쁠 것임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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