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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리 각자의 영화관 Jul 17. 2024

칸 영화제에서 톰 크루즈를 만날 확률은

일반인의 칸 영화제 입성기 2


Day 1 칸 해변에서 보는 트루먼 쇼


마침내 칸에 도착했다. 전 세계 시네필들이 한 곳에 모여 신작에 대한 설렘을 뿜어내는 영화제의 공기가 느껴진다. 내가 정말 칸에 오다니! 엄마 아빠, 나 이번 인생 제법 성공한 것 같아.


개막식에 맞춰 칸에 왔지만 개막식 티켓은 구하기 너무 힘들기도 하고 당시 개막작인 ‘Final Cut’(2022)에 큰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쿨하게 패스했다. 이 작품은 일본 컬트영화로 큰 성공을 거둔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2017)의 프랑스 리메이크 작이다.


제75회 칸 영화제 공식 포스터


대신 나는 그해 영화제 포스터로 쓰인 ‘트루먼 쇼’(1998)의 야외상영을 선택했다. Cinéma de la Plage, 해변의 영화관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야외상영은 배지 없이도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칸 영화제의 무료 프로그램이다. 개인적으로 제주에서 우각영을 진행하며 가장 해보고 싶었던 것 중 하나가 해변 야외상영이라 부러움에 눈물만 줄줄 흘렸다. 장비나 장소 등의 문제로 고민만 하다가 시도하진 못했는데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여전히 꼭 해보고 싶은 포맷이다.


티켓이 없어도 입장이 가능한 만큼 꽤나 많은 사람들이 일찌감치 도착해 자리를 잡고 있었고, 영화제 이곳저곳을 구경하다 조금 늦게 도착한 나는 서서 영화를 감상했다. 역시 클래식은 영원하지. 짐 캐리의 연기에는 어딘가 항상 짠한 구석이 있다.


Day 2 티켓팅 전쟁 그리고 라스트 미닛 티켓 구하기


본격적인 상영은 영화제 둘째 날부터 시작된다. 2022년의 칸 영화제는 예매 사이트에서 개인에게 부여된 개별 번호와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상영일 기준 며칠 전부터 풀리는 티켓을 예매하는 시스템이었다. 그러나 당시 사이트가 어찌나 불안정하던지 툭하면 서버가 다운되기 일쑤였고, 페이스북 커뮤니티와 기자들 사이에서도 티켓을 구하지 못한 사람들의 한탄이 이어졌다. 나의 경우도 마찬가지라 새벽에 틈틈이 취소 티켓을 새로고침하며 하나둘씩 주워 담기 시작했다. 이쯤 되면 취향이 아니라 티켓 잡히는 거 보는 거지.


칸 영화제에 가게 된다면 미리 페이스북 커뮤니티 가입을 해두는 걸 추천한다. 칸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숙소 공유를 구하는 게시글과 영화 티켓 교환글도 많이 올라온다. (물론 나는 그들이 관심 가지고 교환해 줄 만한 티켓이 1도 없었다.)


당시 칸 페이스북 커뮤니티에 돌던 밈(meme)들


티켓팅을 망한 나는 겁도 없이 첫 시간대 영화 예매를 해버렸는데, 이에 오전 8시부터 영화관을 찾아 나서야 했고 덕분에 영화관 가는 길에 그날 갓 발행된 데일리를 받아볼 수 있었다. 칸에서는 여러 매체가 데일리를 꽤나 두꺼운 분량으로 배포하는데 칸 영화제에서 상영된 영화의 평점이나 인터뷰, 광고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The Hollywood Reporter, Variety, Screen 등 영화 일을 하면서 리뷰를 참고하던 유력 매체들의 데일리를 받아보니 새삼 칸의 규모가 실감이 난다. 데일리 표지로 그 해 상영하는 영화 홍보를 하기도 하는데, 광고비용이 꽤 커서 수상을 노리는 작품이나 블록버스터 작품이 주로 광고를 싣는다고 들었다.


2022년 칸 영화제 지도. 생각보다 상영관 별 거리가 꽤 있는 편이다.


오늘의 첫 영화는 배우로 잘 알려진 제시 아이젠버그의 장편 감독 데뷔작인 'When You Finish Saving the World'(2022). 비공식 섹션인 국제비평가주간으로 상영되었으며 주 상영관에서 꽤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어서 20분 정도 더 걸어야 했다. 줄리안 무어, 핀 울프하드 등이 출연했음에도 한국에는 개봉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나는 제법 재밌게 봤지만 다소 애매한 부분이 있어 이해가 간다. 간단하게 크로와상과 커피로 점심을 해결하고 두 번째 영화로는 'Alma Viva'(2022)를 관람했다. 이 작품도 국제비평가주간 상영작이었는데, 그나마 남아있는 작품 중 고르다 보니 아무래도 비공식 섹션의 작품이 대부분이었다. 끝나자마자 바로 뛰어가서 본 세 번째 영화는 특별전으로 상영했던 'Meek’s Cutoff'(2010), 한국 제목은 ‘믹의 지름길’. 알고 보니 내가 봤던 영화였는데 대체 어디서 본 건지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다. 영화를 다 보고 나왔음에도 이제 겨우 오후 세시 반. 이 모든 것은 쓰레기 같았던 칸 영화제 예매 시스템 덕분에 되는대로 표를 줍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본래 Cinephile 배지로는 입장이 불가능한 필름 마켓과 국가별 부스도 어쩐 일인지 입장이 가능하다고 해서 둘러보고, 이미 영화는 세 편이나 봤으니 남은 시간에는 라스트 미닛 티켓을 시도해 보기로 했다. 각 영화별로 막판 취소표나 대기표를 상영 시작 직전에 풀어주는데, 인기가 많은 작품의 경우 2~3시간을 대기해도 못 들어갈 수도 있다고 한다. 그래도 칸 영화제를 다녀온 지인들로부터 뤼미에르 극장에는 꼭 가보라고 추천받아서 준비해 온 구두로 갈아 신고 대기를 시작했다. 중간중간 구두를 벗어던지고 싶은 생각이 들긴 했지만... 어쩌겠어, 영화 보려면 내가 참아야지.


참고로 뤼미에르 극장에서 저녁에 진행되는 메인 갈라는 남녀 모두 무조건 드레스업을 해야만 입장이 가능하다. 남성의 경우 정장에 구두와 보타이를 요구하고 여성의 경우 이브닝 드레스와 구두(elegant shoes)가 규칙이다. 그래서 종종 이 규칙에 반하는 레드카펫 시위가 있기도 한데, 관객의 경우 정말 깐깐하게 체크를 하기 때문에 바로 눈앞에서 보타이가 없어 쫓겨나는 남성 관객을 보기도 했다. 여성은 그래도 남성보다는 자유로운 편. 레드카펫 위에서 촬영을 하는 사진 기자들에게도 엄격하게 적용되는 규칙이라 정장을 차려입은 취재진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2018년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영화제 드레스코드에 맞서 레드카펫에서 하이힐을 벗는 모습 (출처: Evening Standard)


약 두 시간 정도의 기다림 끝에 겨우 티켓을 받았고, 나는 너무 신이 난 나머지 춤을 추며 레드카펫을 입장했다. 부디 아무 곳에도 기록이 남지 않았길 바란다. 재미있는 건 레드카펫 내에서는 셀카를 금지한다는 것. 


그래서 내가 본 영화는? 바로 ‘탑건: 매버릭’(2022).


'탑건: 매버릭' 칸 영화제 최초 상영 후 톰 크루즈와 감독, 출연 배우들의 모습 (출처: Deadline)


그렇다. 전 세계에 곧 개봉할 굉장히 할리우드적인 영화를 봤다. 그래도 월드 프리미어였고, 칸 영화제 측에서 준비한 에어쇼도 보고, 서프라이즈로 명예 황금종려상을 받고 감동받은 톰 크루즈도 만날 수 있었다고 말해본다. 영화 자체도 정말 재밌었는데 사실 이 영화보다 더 재밌었던 건 칸에서 준비한 톰 크루즈 헌정 영상이었다. 젊은 시절부터 현재까지의 톰 크루즈 필모그래피를 편집해서 보여줬는데 정말 놀라운 건 내가 대부분의 영화를 봤을뿐더러 그 ‘역할’을 모두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톰 크루즈 시대의 키즈도 아닌데 말이다. 액션과 얼굴, 그리고 사이비에 가려진 그의 눈부신 연기력이여…


당시 너무나도 공감했던 씨네21 임수연 기자의 트위터 후기


영화 끝나고 나오니 불꽃놀이까지 팡팡 터트려주더라. 내가 낸 환경부담금은 여기에 쓰였을까. 뤼미에르 극장에서 진행되는 메인 갈라에 참석했겠다, 영화도 재밌었겠다, 한껏 칸 뽕에 가득 차서 숙소 근처 맥도날드에서 산 프렌치프라이를 먹으며 칸 영화제 둘째 날을 마무리했다.


Day 3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마지막 영화로 아침 뤼미에르 극장에서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의 ‘차이콥스키의 아내’(2022) 한 편을 봤다. 키릴 세레브렌니코프는 한국에서 배우 유태오가 출연한 ‘레토’(2019)의 감독으로 유명하다. 오전의 뤼미에르 극장은 딱히 드레스 코드를 확인하지 않고 굉장히 캐주얼한 분위기로 관람이 가능했는데, 영화는 내 취향이 아니었으나 독특한 연출 몇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우각영으로 인연을 맺게 된 이은선 기자님도 마침 칸에 계시다고 해서 짧은 점심을 같이하고 아쉽지만 3일간의 칸 영화제 일정을 마무리했다. ‘헤어질 결심’(2022)과 ‘다음 소희’(2022) 등 개인적인 한국 영화 기대작들이 칸 후반부에 분포되어 있어 돌아오는 길이 더욱 아쉬웠다. 해외에서 한국 영화를 보면 현지 사람들의 감상 포인트가 한국인들과는 꽤나 달라서 영화관에서 보는 재미가 크기 때문이다. ‘헤어질 결심’은 결국 그 해 10월이 되어서야 BFI London Film Festival에서 관람했는데 이 후기는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작성해 보겠다.


개인적인 일정 탓에 짧게나마 다녀온 칸 영화제는 정말 좋았다. 출품 작품이 특별히 더 좋았다기보다는 칸에 진출했다는 자부심 넘치는 영화인들의 얼굴들이 좋았고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같은 영화를 본다는 게 좋았다. 코로나 이후 오랜만에 느끼는 ‘시네마적 경험’은 내가 사람들과 함께 영화를 보는 영화관을 얼마나 그리워했었는지 새삼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다. 혹시나 궁금했을 사람을 위해 추가로 덧붙이자면 다행히도 전공 시험은 패스했다. 정말 패스만 했다. 이래저래 행복했던 나의 고난의 기록을 부디 즐겁게 읽어주셨길 바란다.



글쓴이 : 런던의 D

런던에서 영화 주변을 기웃거리며 살고 있다. 한국에서 영화 홍보마케팅 일을 했으며 영국에서 미디어와 관련한 짧은 공부를 마쳤다. 현재는 영화제, 영화관 등 영화 관련된 일을 하며 근근이 살아가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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