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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리 각자의 영화관 Jul 24. 2024

가난한 이의 미술 소장품

힙노시스: LP 커버의 전설(2022)


스마트폰 없는 먼 과거를 살고 있다면 좋아하는 음악을 어떤 방식으로 발견하게 될까? 우연히 들른 레코드점에서 아무 정보도 없이 음반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아마도 벽면에 커버가 정면으로 보이도록 진열된 레코드들을 훑어보는 일이 첫 번째 순서일 것이다. 그다음엔 평소 좋아하던 장르나 뮤지션의 코너로 가서 겹겹이 놓인 레코드를 한 장 한 장 뒤적인다. 다채로운 커버 아트를 유심히 들여다보며 오로지 시각 정보에 의존하여 음악의 분위기를 가늠해 보고는, 신중하게 고른 몇 장을 플레이어에 끼워 조심스레 바늘을 올린다. 아, 빙글빙글 돌아가는 판 위에서 상상했던 멋진 음악이 마법처럼 흘러나오는 순간은 언제나 감동적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앨범 커버가 마음에 들면 음악도 마음에 들 확률이 꽤 높다는 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음악이 취향에 맞지 않더라도 오직 커버의 아트웍을 소유하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바이닐을 구입하기도 한다. 얼마 전 보았던 영화 ’힙노시스: LP 커버의 전설’(2022) 에 등장한 노엘 갤러거의 인터뷰 중 한 마디가 떠오른다.

“'바이닐은 가난한 이의 미술 소장품이다.' 멋진 말이죠? 내가 한 말이면 좋겠는데.”

그런 이유로 구입한, 시각적 즐거움을 위한 소장 욕구를 자극했던 음반들을 몇 장 소개해 볼까 한다.



Donato Dozzy - Plays Bee Mask (2013)

Tokyo, Beams Records

작년 초 도쿄의 Beams Records에서 이 앨범을 발견했다. 텍스트 없이, 무엇인지 한눈에 알아보기 어려울 만큼 아주 가까이서 찍은 사진으로 채워져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접시 위의 먹다 남은 음식이라는 걸 알 수 있다. 크게 확대되어 한 면의 4분의 1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라임 조각과 접시의 무늬가 묘하게 조화를 이루어 꼭 추상적인 그림처럼 보인다. 개인적으로 앰비언트 음악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지만, 커버의 사진이 인상에 남아 구입했던 음반이다.



Talking Heads - Remain in Light (1980)

Stüssy의 티셔츠와 Remain in Light 바이닐

Talking Heads의 음악을 종종 듣기는 하지만 음반을 소장하고 있지는 않았는데, 구입하게 된 계기에 커버 아트가 한몫했던 경우다. 작년 가을 미국 여행 중 LA에서 Talking Heads의 Remain in Light 아트웍을 그래픽으로 활용한 티셔츠를 구입한 후 며칠 뒤, 브루클린의 레코드샵에서 이 앨범을 발견하고는 운명이야! 라고 생각했다. (워낙에 유명한 음반이라 여러 레코드샵에서 찾아볼 수 있기는 하지만, 그때의 기분은 그랬다) 티셔츠를 꺼내 입거나 Remain in Light 앨범을 들을 때면 자연스레 여행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Brooklyn, Red Hook, 360 Record Shop



Various Artists - First Class Tape (2019)


Masanao Hirayama의 팬이기 때문에 그가 디자인한 온갖 아이템을 종류별로 가지고 있다. 이 역시 그의 아트웍을 소장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구입했던 음반이다. 언제나 그렇듯 새하얀 바탕에 검은 선으로 삐뚤삐뚤 낙서 같은 그림이 그려져 있다. 왼쪽 구석에 놓인 저금통과 꽤 닮아 보인다(이것 또한 Himaa의 디자인이다). 2019년 서울 레코드 페어에서 구입했다.




터치 몇 번으로 온 세상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시대에, 굳이 바이닐을 사 모으는 행위에는 단순히 듣는 것 이상의 목적이 있다. 아마도 음악이라는 추상적이고 감각적인 요소를 눈에 보이고 손에 만져지는 구체적인 형태로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이 아닐까? 지름 12인치의 플라스틱 동그라미,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음악을 상상할 수 있도록 만드는 정사각형의 이미지는 그 자체로 의미 있고 매력적인 작품이 된다. ‘Squaring the Circle: The Story of Hipgnosis’ 라는 영화의 원래 제목이 이를 명쾌하게 표현하고 있다.


커버에 비추어진 햇살이 예뻐서 찍어둔 Helado Negro - Far in(2021)


방 한켠, 레코드 플레이어 뒤에 비스듬히 세워둔 커버를 바꿀 때마다 공간의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진다. 이번 주말에는 초여름을 닮은 푸른 빛깔의 앨범을 골라 들어야지.




글쓴이 : 서울의 S

틈만 나면 어디론가 훌쩍 떠날 계획을 세우는 브랜드 디자이너. 매일의 안락함을 포기할 수 없는 현실주의자이지만, 동시에 먼 곳의 낯선 아름다움을 사랑한다. 영화와 여행의 공통점은 비일상의 낭만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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