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 속 제주도 다양성 영화관
온갖 식물이 너르게 펼쳐진 곶자왈을 걷는다. 귤나무가 가득한 밭이라던가 한라산이 눈앞 큼직하게 펼쳐지는 중산간 둘레길, 작은 포구와 모래알이 가득한 바닷가, 올망졸망 나지막한 오름들. 심지어 마을 골목 어귀 버려진 빈집마저 아름다운 이곳은 천혜의 섬 제주도다. 원래 자연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영화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눈길을 사로잡는 공간을 볼 때면 항상 그런 생각을 했다. '여기 영화관 차리면 좋겠다.'
문득 상상 속 영화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졌다. 제주도의 영화관이라 하면 해변이나 오름, 숲에서의 야외 상영을 생각하기 쉽지만 나는 육지에서 개봉하는 초신작 영화가 정기 상영되고 관객 수가 실제 집계되는 그런 영화관을 원한다. 예를 들면 서울의 에무시네마나 부산의 영화의 전당처럼 실내와 야외를 동시에 활용할 수 있는, 영화적 낭만이 가득한 그런 공간 말이다.
깜깜하고 넓고 조용하고 기왕이면 제주스러운 그런 장소, '감귤창고'가 영화관이 된다면 어떨까? 창고 옆 귤밭은 행사 때마다 야외 상영장으로 변신한다. 실제 영화관이나 공간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보면 전혀 현실감이 없겠지만, 상상은 자유니까. 또 모르지 않나 이런 허황된 작은 상상들이 모여 나중에 생길 제주도 영화관에 조금이나마 영감을 줄지도!
감귤창고 뒤편에 영사기와 스피커를 구비하고 앞쪽에는 최대한 큰 스크린을 걸어둔다. 푹신한 앉은뱅이 소파를 시야가 불편하지 않도록 드문드문 놓는다. 관객들은 캠핑 의자나 돗자리 등 본인이 원하는 좌석을 언제든 사용할 수 있다. 이 구역의 먹거리 전도사인 나는 스낵코너도 빵빵하게 준비할 것이다. 일단 좋아하는 보리개역과 도내 유명한 카페의 원두로 만든 커피를 음료로 팔고 제주시 마트 안 빵집에서만 파는 맛 좋은 깨찰빵도 입고한다. 배고픈 관람객을 위해 서귀포 시내의 오는정 김밥 등을 구비해 놓고, 성산의 목화 휴게소에서 준치를 사다가 연탄불에 솔솔 구워 술과 함께 판매한다. 제주의 술이라고 하면 제주막걸리가 빠질 수 없다. 또 맥파이 양조장의 맥주들과 제주맥주의 무알콜 맥주를 가져다 놓아야지. 나는 왜 이런 상상을 하면 행복해질까. 일 년에 두 번 정도 작은 영화 축제를 열어 야외에서 계절별 도내 유명한 먹거리와 함께 영화를 즐긴다. 이 정도면 영화 보러 가는 게 아니라 먹으러 가는 것 아니냐 싶을 수도 있지만 영화관 차린 사람이 먹는 걸 좋아하는 걸 뭐 어쩌나.
영화 따위의 필름에 있는 상을 스크린에 비추어 나타낸다는 뜻의 영사(映寫). 상상 속 제주도 다양성 영화관의 이름은 '영사의 순간'으로 지어뒀다. 언젠가 제주섬 자연 가운데 감귤창고 영화관에서 펼쳐질 우리의 '영사의 순간'이 일상 속 작은 행복으로 실현되기를 꿈꿔본다.
그린이 : 이강인(@leeganginn)
제주에서 활동하는 일러스트레이터. 따뜻한 그림체로 『제주어 달력』 등을 제작하며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다독인다. ‘우리 각자의 영화관’이 진행한 6회의 상영회 중 3회 이상 유료 관객으로 참여했다.
글쓴이 : 제주의 Y
제주에서 영화와 전혀 관련 없는 일을 하며 산다. 예술학교의 광고학도로 기획이나 마케팅 등을 접하고, 육지에서 짧게 독립영화사 인턴과 영화제 스태프로 일했다. 언젠가 본인이 사랑하는 제주섬에도 좋아하는 영화관이 생길 것이라 굳게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