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각자의 영화관 랜선 수다 1
각자의 공간에서 페이스 타임으로 랜선 수다를 떤다. 한국과 영국의 시차는 8시간. 밤과 낮에 만나 술 혹은 음식을 곁들이며 나누는 우리 각자의 영화관 이야기.
곁들인 음식
런던의 D : 모닝커피와 감자칩
제주의 Y : 파스타 냄비에 끓인 보리차
서울의 S : 닭발과 트레비 라임 + 새로
2024 상반기 영화관에서 본 작품을 기준으로 합니다.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S : 다들 올해 상반기 영화관에서 어떤 영화 봤는지 알려줘요.
D : 나는 영화관에서 일하면서 많이 봤지. 상반기에는 아카데미 영화들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신작 보느라 정신이 없었어.
Y : 그러게, 진짜 많이 봤겠다.
D : 최근에 ‘키메라’랑 어제 ‘인사이드 아웃 2’ 봤고, ‘챌린저스’, ‘듄: 파트2’ 도 재미있게 봤고, 넷플릭스 ‘히트맨’, ‘퓨리오사’, ‘몽키맨’, 올 초에 ‘가여운 것들’, ‘파묘’도 영국에 개봉해서 봤어.
Y : 저는 10편을 봤어요. ‘웡카’랑 ‘듄: 파트2’, ‘파묘’, ‘가여운 것들’, ‘패스트 라이브즈’, ‘메이 디셈버’ 봤고요, 그리고 ‘챌린저스’, ‘퓨리오사’, ‘존 오브 인터레스트’, ‘인사이드 아웃 2’까지. 제주에서 개봉한 영화는 귀하기 때문에 바로 달려가죠.
S : 저도 Y 언니랑 개수가 비슷한 것 같아요. 개봉작은 ‘웡카’, ‘패스트 라이브즈’, ‘듄: 파트2’, ‘힙노시스: LP 커버의 전설’, ‘챌린저스’, ‘키메라’, ‘존 오브 인터레스트’ 봤어요. 그 외에 씨네큐브에서 했던 크리스티안 페촐트 특별전에서 ‘유령’을, 무비랜드에서 상영했던 ‘화양연화’를 봤습니다.
Y : 그러면 봤던 영화 중에서 각자 1, 2, 3위를 꼽아볼까? 나는 1위가 ‘인사이드 아웃 2’, 그다음이 ‘가여운 것들’, ‘존 오브 인터레스트’야.
D : 나는 1위가 ‘존 오브 인터레스트’, 2위는 ‘챌린저스’, 3위는 ‘로봇 드림’.
S : 저는 1, 2위는 딱 있는데 3위는 조금 애매해요. 보고 조금 지나면 금방 까먹어서…. 일단 1위는 ‘챌린저스’, 2위는 ‘존 오브 인터레스트’고, 3위는 ‘듄: 파트2’로 하겠습니다.
Y :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다 순위권이네. 그러면 이 영화 이야기 먼저 해볼까요?
S : ‘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보고 오지 않으면 오늘 얘기를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지난주에 보고 왔어요.
D : 바쁘신 와중에.
Y : 고생하셨네. 좋지 않았어?
S : 좋았죠.
D : 정말 집에서 보면 안 되는 영화야. 음향도 그렇고 화면도 그렇고, 이건 영화관용 영화다.
Y : 그래,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았어. 확실히 사운드가 중요한 영화야.
D : 그리고 미장센도 너무 멋지잖아.
Y : 너무 충격적일 정도로 예뻤어.
S : 그 예쁨이 역설적이긴 하지만.
D : 그렇지. 내용을 모르고 화면만 보면 이보다 아름다운 전원 풍경일 수가 없거든.
S : 맞아요. 회사 동료분들한테 ‘존 오브 인터레스트’ 보러 갈 거라고 했더니, 바로 검색해서 뜨는 이미지를 보고는 “너무 예쁜 영화네요! S님이 좋아하실 것 같아요.” 이렇게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마냥 예쁜 영화는 아니라고 들었는데…. 일단 제가 한 번 보고 오겠습니다.” 했죠.
D: 이 영화가 빛을 사용하는 방식도 흥미롭더라. 감독 인터뷰를 봤는데 모든 장면에서 조명 없이 자연광만 썼대. 특히 인상 깊었던 게 밤에 소녀가 사과를 놓아두는 장면이었어. 조명 없이 깜깜한 밤의 모습을 보여줄 방법이 없어서 열화상 카메라를 가지고 찍었는데, 그러니까 소녀가 빛으로 표현되잖아. 섬찟하면서도 새로운 연출이었던 것 같아.
S : 소녀가 열기와 빛으로 보여지는 게 기발하고 멋있는 표현이었던 것 같아요.
D : 완전히 세상에 없던 촬영 방식은 아니지만, 음향을 비롯한 영화의 모든 요소가 합쳐졌을 때 ‘아직도 세상에 새로운 게 나올 수 있고, 아직도 영화를 보면서 이렇게 짜릿할 수 있구나’ 싶어서 정말 좋았어.
Y : 공감해. 나는 ‘헤어질 결심’(2022)이 생각났어. 그 영화 봤을 때 비슷한 짜릿함을 느꼈었거든. 영화가 또 이렇게 만들어질 수 있구나.
D : ‘헤어질 결심’도 좋았지. 나는 홀로코스트 영화를 이렇게 스타일리시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게 좀 충격이기도 했어.
S : 저도 그게 놀라웠어요. 저는 홀로코스트 영화를 거의 안 봤거든요. 대부분 피해자 시점의 영화니까 너무 보기가 힘들 것 같아서. 그런데 D 언니가 이 영화는 저도 볼 수 있을 거라고 해서 본 거죠. 진짜 볼 수는 있었어요. 직접적인 장면이 나오지는 않으니까.
D : 맞아. 피해자가 있는 사건을 다루는 작품에서 피해를 당하는 모습을 선정적으로 보여주는 경우가 너무 많잖아. 정말로 피해자를 생각한다면 이렇게 연출할 수 없을 것 같은데, 오히려 이용하는 느낌이라고 할까? 요즘 그런 자극적인 연출에 질려있었단 말이야. 그런데 이 영화에는 직접적인 장면이 하나도 없는데도 그게 와닿는 게 너무 신기했어. 더 소름이 끼치잖아요.
S : 저도 보면서 그 생각을 많이 했어요. 왜냐하면 저는 폭력적인 장면을 아예 못 보는 사람이거든요. 물론 이 영화에서는 그 상황들이 사운드로 표현이 되지만, 그렇게 되면 최소한 배우가 그 모습을 직접 연기하지 않아도 되는 거잖아요. 가학적인 장면을 굳이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더라도 충분히 표현할 방법이 이렇게 있는데, 지금까지 왜 다들 그렇게만 해왔던 건가 하는 생각이 들고. 좀 안일한 거 아닌가?
D : 사실 보여주는 게 제일 쉬운 방법이기는 하지. 보여주지 않고도 상상하게끔 만드는 게 연출의 힘인 거고.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이 감독이 상을 많이 받았겠지.
S : 적당히 필요에 의해서 보여주는 것까지는 이해해요. 근데 그냥 자극을 위해서 그렇게 연출한 느낌이 드는 영화도 있잖아요. 그런 건 좀 그래요.
Y : 그런 장면을 이용하는 게 제일 쉬우니까.
S : 그치. 이 영화는 눈으로는 아름다운 풍경을 계속 보여주고, 대신에 귀로는 끔찍한 소리를 들려주잖아요. 그렇지만 등장인물들은 그걸 무시한 채 평화로운 일상을 살고. 그런데 저도 영화를 보는 내내 그런 소리를 계속 듣다 보니까 점점 익숙해지는 거예요. 어떻게 보면 지금 현실에서도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지만 다들 외면하고 있는 상황을 보여주려고 그렇게 연출을 한 거 아닌가 싶고.
D : 맞아. 감독이 최근에 오스카에서 수상소감으로 가자지구 공습을 비판했거든. 감독도 유대인인데 같은 유대인을 비판한 거지. 손을 덜덜 떨면서 준비해 온 내용을 읽는데, 당장 바로 뒤에 서 있는 총괄 프로듀서는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사람이고…. 영화 쪽은 워낙 이스라엘 자본이 많이 장악하고 있어서 이 감독은 앞으로 일자리가 없어질 수도 있는데 그렇게 용기 있게 발언을 한 거란 말이야.
S : 저도 영화 보면서는 눈물이 나지 않았었는데, 그 수상소감 보니까 좀 눈물 나더라고요. 가자지구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어렴풋이는 알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려고 하지 않았단 말이에요. 나랑은 먼일 같고, 보면 스트레스받을 것 같으니까 외면을 한 거지.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 또 감독의 연설을 보고 나서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좀 더 자세히 찾아보게 됐어요. 이런 식으로 경험하지 않았더라면 계속 와닿지 않았을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영화로 인해서 정말 좋은 영향을 받게 된 거죠.
Y : 나는 잘 몰랐던 것 같아. 영화만 재미있게 보고 나왔네. 이제 찾아봐야겠어.
D : 현재 상황이 복잡하기도 하고, 이 영화가 가자지구 얘기를 한 건 아니니까. 그렇지만 비슷한 일이 가자지구에서도 일어나고 있다는 게 아이러니하지. 어쨌든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고도 사람들의 공감을 끌어낸다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일 텐데, 연출적으로도 내용상으로도 정말 좋았어. 감독 연설도 인상 깊었고. 그런데 내가 이 영화를 또 보지는 못할 것 같아.
S : 맞아, 다시 보기는 힘들어요. 엔딩 크레딧 음악 기억나요? 비명처럼 들리잖아요. 그것도 정말 힘들었어.
D : 그것도 실제 현장의 소리를 합친 거라고 그러더라고. 2022년 파리 폭동을 비롯한 실제 사운드들을 오랫동안 모아서 만들었대.
Y : ‘존 오브 인터레스트’ 좋은 영화네. 다양한 얘기를 들어서 재밌어. 너무 관심이 없었던 건 좀 창피하기도 하고.
S : 나도 영화랑 감독 연설 보고 안 거지, 그전까지는 잘 몰랐어요. 이런 게 영화의 순기능 아니겠습니까?
Y : 저의 상반기 영화 1위는 최근에 본 ‘인사이드 아웃 2’입니다. 개인적으로 1편을 정말 좋아했었는데 이번 편도 좋더라고.
S : 저는 아직 안 봤는데, 1편 보고 큰 감흥이 없었어요. 그리고 그런 말을 들었어. 2편은 공감성 수치 잘 느끼는 사람들이 보면 괴롭다던데, 제가 꽤 심하게 느끼는 편이거든요.
D : 아무래도 주인공이 사춘기니까.
Y : 이번 편 보고 오니까 ‘나는 아직 사춘기를 겪고 있구나.’ 싶어서 좀 감성에 젖었어. 근데 S가 아직 안 봤으니, 말을 좀 아끼고 싶네요. 스포 싫어하시잖아요.
S : 그래도 언니 얘기를 좀 듣고 싶기도 하고, 또 제가 이 영화를 안 볼 수도 있기 때문에 그냥 편하게 얘기해주시죠.
Y : 주인공 ‘라일리’가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겪고 있는데, 1편에 나왔던 다섯 가지 감정 외에 ‘불안이’, ‘따분이’, ‘당황이’, ‘부럽이’ 네 가지 감정이 추가로 나와요. 본부의 감정 키는 ‘불안이’가 잡고요.
S : 불안감 때문에 일을 망치다가 나중에는 그 덕분에 갈등이 해결되는 내용인가요?
Y : 비슷해. 불안으로 인해 일이 망쳐지려고 하는데, 다른 감정들의 힘이 더해져서 결국 해결되지. 나는 그냥 ‘불안이’의 행동이 너무 짠했어요. ‘라일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조금 더 나은 상황을 만들려고 했던 일들이라서.
D : 나는 청소년기의 주인공을 다루는 콘텐츠를 개인적으로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예를 들면 해리포터 시리즈를 정말 좋아했었는데, 5권쯤부터는 사춘기를 겪는 ‘해리’가 짜증 나서 못 읽겠는 거야. 그 책을 읽을 때쯤에 나도 같이 사춘기를 겪고 있었다 보니 더 그랬던 것 같아. 그런데 ‘인사이드 아웃 2’의 ‘라일리’는 그렇게까지 꼴 보기 싫지 않았다. 생각보다 밉지 않았다.
Y : 맞아. ‘라일리’도 밉지 않았고, 빌런인 줄 알았던 ‘불안이’도 밉지 않았어.
D : 울었나요? 나랑 같이 본 친구들은 울었는데. 나는 눈물이 고이긴 했지만 흐를 정도는 아니었거든요.
Y : 뭔가 성장 스토리는 항상 뭉클해요. 오열했습니다. 저는. 감정들이 쫓겨나서 다양한 상황을 만나는 게 조금 산만하기는 해도 지루할 틈은 없었던 것 같아요.
D : 여러분은 본인을 지배하는 중심 감정이 뭐일 것 같나요?
Y : 요새는 ‘당황이’와 ‘슬픔이’요.
S : 나는 ‘소심이’ 아니면 ‘불안이’일까.
D : 나는 ‘까칠이’ 아니면 ‘따분이’일 것 같아. ‘따분이’ 누워있는 게 너무 나 같더라. 그러고 보니 우리 중에 ‘기쁨이’는 없네요.
S : 인생에 기쁨이 이제 너무 적어요.
Y : 어른이 되면 기쁨이 적어진다는 대사도 영화에 중점적으로 나와요. 그리고 이번 편에서 눈에 띄는 키워드가 신념이란 말이에요. 세포 트로피처럼 예쁘게 생겼어요.
S : 신념.
Y : 응. ‘라일리’가 어릴 적에는 기쁜 감정을 중심으로 해서 그 신념이 형성돼 있었는데, 불안으로 인해 상황이 바뀌니까 이미지랑 멘트가 변하는 게 재밌었어. 내가 어떤 감정과 의지를 갖냐에 따라 신념이 형성된다는 걸 표현하는 거니까. 전 그냥 이 영화의 모든 요소가 좋았어요.
Y : ‘챌린저스’를 두 분이 굉장히 좋아하신다고.
S : 제 상반기 1위를 당당히 차지한 영화입니다. 저는 ‘챌린저스’가 개봉 시기를 잘못 탔다고 생각해요. 상영관이 정말 말도 안 되게 적더라고요.
D : 한국에서 잘 안 됐지? 지금 검색해 보니까 10만 명도 안 됐어요. 사실 대중적으로 되게 잘 만든 영화인데.
S : 그러니까, 제 말이 그 말이에요. 이렇게 묻힐 영화가 아닌데! 너무 머리 아프고 어려운 영화도 아니고, 오타쿠 대거 생성할 만한 영화인데 말이죠. 시기가 더 좋았다면 어땠을까.
Y : 너무 테니스 영화처럼 홍보해서 그런 건 아니에요?
S : 공식 포스터도 조금 매력 없었고, 일단 서울에서조차 상영관이 워낙 없어서 보기가 쉽지 않았어요.
Y : 저도 서귀포까지 가서 보긴 했습니다. 그러나 좋았다, ‘챌린저스’.
S : 저는 ‘존 오브 인터레스트’에서도 꽤 감명을 받았지만, 그 영화는 보고 나면 아무래도 좀 힘들잖아요. 그런데 ‘챌린저스’는 보는 동안 심장이 뛰고 흥분되고 재미있고, 이런 익사이팅한 느낌을 너무 오랜만에 느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D : 나는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이 음악을 정말 잘 쓴다고 생각하거든. 박자에 맞춰 전환되는 화면도 좋았고. 한 달 동안은 ‘챌린저스’ 사운드트랙만 계속 들었어.
S : 저도 평소에는 테크노를 머리 아파서 잘 안 듣는데, 이 영화 사운드 트랙에 꽂혀서 한동안 길을 걸을 때마다 ‘나한테 말 걸면 다 죽여버리겠다’라는 표정으로 파워 워킹 하면서 들었어요. 이 영화에서 음악의 역할도 꽤 컸던 것 같아요.
D : 그렇지. 그리고 보면서 감독이 미묘한 관계를 너무 잘 표현했다고 생각했어. 영화 자체가 되게 관능적이고, 실제로 섹스신은 한 번 정도밖에 안 나오는데 영화 전체가 섹스신이 이어지는 것처럼 느껴지는 거야. 그게 난 되게 재미있었어.
S : 맞아요! 보통 이런 삼각관계가 나오면 균형을 유지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기 마련인데, 세 명의 캐릭터가 다 너무 입체적인 거야. 그래서 누구 하나 밀리지 않는 팽팽한 삼각형의 느낌인 거예요. 그게 정말 인상 깊었어요. 또 젠데이아의 매력을 전에는 잘 몰랐었는데, 10대 때의 ‘타시’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에서 너무 예쁘고 멋져서 깜짝 놀랐어요.
D : 나도 젠데이아라는 배우의 캐릭터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연기에서 매력을 느껴본 적은 없었거든. 그런데 ‘챌린저스’에서는 괜찮았어요. ‘타시’라는 캐릭터랑 잘 어울렸던 것 같아.
Y : 근데 ‘타시’의 행동들이 다 도덕적인 행동은 아니잖아. 나중에 ‘패트릭’을 불러내서 제안하는 것들도 그렇고, 나는 타락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더라고.
S : 나는 그게 타락으로 느껴지지는 않았어.
D : ‘타시’가 도덕적으로 옳은 행동을 한 건 아니지만, 나는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여자 캐릭터를 보는 게 되게 통쾌했거든. 보통 영화에서 남자 캐릭터들이 주로 하는 역할을 여기서는 ‘타시’가 하는 거란 말이야.
S : 맞아, 그래서 더 재미있었어요. 좀 속 시원한 느낌이 있었어.
Y : 그래서 마지막 장면에 ‘타시’가 그렇게 환호 지르는 걸 보여줬나?
D : 너무 오랜만에 경험한, 진짜로 자기가 원하는 게 이루어졌을 때 나오는 쾌감의 소리 같았어.
S : 10대 시절 본인의 경기에서도 그렇게 포효했었잖아요. 부상으로 테니스를 못 하게 되면서 그런 감정을 잊고 살다가 오랜만에 제대로 된 경기를 보고는 다시 카타르시스를 느낀 거지.
Y : 나는 그 후에 셋이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했어.
S : 셋이 잘 살았을 것 같아.
D : 얼마 전에 영화 업계 사람이랑 이야기하다가, 트위터에서 “세 캐릭터 중 누가 빌런인가?”라는 투표를 했는데 사람들이 ‘타시’를 가장 많이 뽑았다는 거야. 그래서 되게 놀랐어.
S : 이 영화에 빌런이 있나?
D : 나는 일단 빌런이 없는 것 같고, 굳이 꼽자면 ‘아트’라고 생각하거든. 제대로 하고 싶은 말을 한 것도 없고, 액션을 취한 것도 없고. 그냥 찌질해 보였어. 관계에 있어서 자기가 직접 선택한 건 하나도 없이 끌려다니는 느낌.
S : 그것 또한 자신의 선택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나는 이 영화는 누가 빌런인지를 따질 수 없는 게 매력이라고 생각하는데! 세 캐릭터 모두 정말 좋았어요. 누가 잘했고 못했고가 어느 쪽으로 치우쳐질 수도 있는 건데, 셋의 미묘한 균형이 완벽하게 잘 맞아떨어진다고나 할까.
Y : 너무 재미있었겠는데.
S : 나 너무 재미있었어.
D : 그 팽팽함이 끝까지 가는 게 진짜 재미있었지. 나는 마지막 매치 포인트 장면 때문에 이 영화를 영화관에서 두 번 봤어.
S : 저도 두 번 보고 싶었는데 상영관이 없었답니다.
Y : ‘로봇 드림’(Robot Dreams, 2023) 얘기 좀 해주세요.
D : 누가 애니메이션계에 ‘패스트 라이브즈’라고 그랬거든? 엔딩이 그런 느낌이어서 정말 동감해. 주인공 캐릭터인 강아지랑 로봇도 어쩜 그렇게 귀여운지, 약간 카툰 네트워크 같은.
Y : ‘개 혼자 산다’라고도 누가 그러던데.
D : 맞아. 개 혼자 살다가 너무 심심하고 외로워서 로봇을 입양한 거야. 근데 이게 캐릭터는 개인데 완전 딱 그냥 도시에 살고 있는 현대인 그 자체, 현대견(犬)인 거지. 뉴욕이 배경인데 실제로 유명한 곳들이 많이 나오더라. 그리고 또 애니메이션이라서 가능한 연출 같은 게 있고, ‘오즈의 마법사’(The Wizard of Oz, 1939)라든지 할리우드 고전 영화를 오마주한 장면들도 좀 나와. 영화가 너무 좋아서 저는 꼭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S : 너무 슬프지는 않아요? 저 또 너무 슬픈 영화도 못 보거든요.
D : 막 꺼이꺼이 우는 영화는 아니고 약간 잔잔하게 행복하고 씁쓸한 눈물을 머금을 정도의 영화다.
Y : ‘듄: 파트2’(Dune: Part Two, 2024)는 어땠어? 다들 1편보다 더 재미있다고 난리던데, 나는 1편을 아이맥스로 보고 2편을 일반관에서 봐서 그런지 상대적으로 2편이 재미없게 느껴졌어.
D : 내가 자주 하는 이야기인데, ‘듄’ 1편은 길고 아름다운 인트로다. 인트로인데 2시간 반이나 상영하니까 내용이 없는 느낌인 거야. 감독이 원작 팬이다 보니 원작을 그대로 묘사하고 싶었던 건 알겠지만, 나는 영화는 시리즈라도 한 편만으로도 완성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1편은 너무 빌드업만 하는 느낌이었어.
S : 저는 1편을 처음에 일반관에서 보고, 그다음에 용아맥에서 또 봤어요. D 언니 말대로 기승전결에서 ‘기’까지만 간 것 같은 느낌인데, 듄 세계관을 처음 만나는 입장으로서 그 풍경, 비주얼에 압도되는 게 있잖아요. 그런 부분들이 놀라웠고 좋았어서, 다시 한번 제대로 된 비율로 크게 보고 싶어서 두 번 봤던 것 같아. 이번 편은 확실히 내용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다 보니까 더 흥미진진하고 재미있게 봤어요.
D : 나도 재미있게 보기는 했는데, 티모시 샬라메가 미스 캐스팅 같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어. 구원자가 되어서 딱 등장했는데 다리가 너무 연약해 보이는 거야. 영웅의 모습이 다 비슷할 필요는 없지만, 티모시 샬라메나 젠데이아나 지금 가장 잘 나가고 핫한 스타들인 건 알겠는데 이 영화 속의 캐릭터들을 잘 소화했나? 그런 생각은 들긴 했어.
S : 저는 1편에서의 티모시 샬라메가 너무 고와서 좋았는데, 2편에서 1편에 비해 조금은 덜 아름다워진 모습이 아쉬웠습니다.
D : 아무래도 나이가 들다 보니….
S : 그래서 ‘페이드 로타’가 잘생겼다. 이렇게 정리하겠습니다.
Y : 난 ‘가여운 것들’(Poor Things, 2024)이 개인적으로 좀 울림이 있었어.
S : 못 봤는데, 무슨 내용인가요?
Y : 간단히 얘기하면 실험으로 아기의 뇌를 가진 성인 여성 ‘벨라’가 여행을 하면서 자신의 욕망을 깨닫고 성장하는 스토리거든. 근데 창녀가 되는 내용을 담고 있어서 엄청 선정적이기도 해.
D : 이 영화는 굉장한 페미니즘 영화란 말이야. 주인공이 자기의 욕망을 찾아가는, 어떻게 보면 ‘챌린저스’의 ‘타시’도 떠올라. 근데 이제 아무것도 모르는 벌거숭이 같은 상태부터 시작하는 거지. 나도 이 영화 재밌게 보긴 했는데 여자의 몸이 너무 적나라하게 나와서 좀 불편했어. 분명 내용상 그런 장면이 필요하긴 하지만 그렇게까지 직접적으로 많이 나왔어야 했나, 더 은은하게 표현할 수 없었나 싶은?
S : 나 그런 거 진짜 싫어해. 그래서 안 보고 싶어요.
D : 영화가 의도한 바와는 다르게 결과적으로 남자들 눈요깃거리가 된 듯한 느낌의 후기들을 보면서 나는 뭐랄까, 감독이 남자인 건 어쩔 수가 없나? 하는 생각도 들었어.
Y : 나 젠더 감수성이 좀 낮은가 봐. 불편한 것보단 좋은 게 많았던 걸 보니까. 주인공이 여행하는 도시가 다른 색깔들로 표현되는데 그 환상적인 이미지가 좋았어. 그리고 의상도, 주인공 맨얼굴도 그냥 너무너무 아름답더라고. 그러니까 미적인 장면을 원하는 관객들이 만족할 만한 영화였다 뭐 그렇게 생각해요.
Q. 상반기 영화 속 씬 스틸러?
D: 한국에는 아직 개봉 안 했지만 ‘Civil War’(2024)의 제시 플레먼스(Jesse Plemons). A24 제작 영화 중에 최고 오프닝 기록 세운 전쟁 영화인데, 개인적으로 영화는 별로였고 이 배우만 기억에 남았거든? 근데 이 배우가 실제로는 영화에 7분 정도밖에 안 나왔대. 진짜 살벌하게 연기를 해서 영화 보고 이 사람밖에 기억에 안 남더라고요.
Q. 가장 기억에 남는 명대사/명장면?
Y: ‘패스트 라이브즈’(Past Lives, 2023)에서 남주인공을 만나고 온 여주인공이 뭔가 뚱해 보이는 남편한테 “내가 당신 사랑하는 걸 모르진 않지?”라고 물었어. 그러자 남편이 “알지. 가끔 믿기지 않아서 그렇지.”라고 하더라. 그 대사가 너무 로맨틱했어.
D: ‘파묘’(2024)에서 ‘화림’이 컨버스를 신고 굿하는 장면. ‘MZ 무당’이라는 설정값에서 오는 묘한 이질감이 너무 매력적이었어.
Q. 눈길을 끄는 뉴페이스?
D: ‘챌린저스’와 ‘키메라’(La Chimera, 2023)의 조쉬 오코너(Josh O’Connor).
S: 저도요. ‘챌린저스’를 보고 나서 ‘키메라’도 봤는데, 전혀 다른 두 캐릭터 연기를 너무 매력적으로 잘 소화했더라고요.
D: 그래서 다음에 어떤 역할을 할지 너무 궁금하고요. 근데 이 배우가 디즈니 ‘라따뚜이’(Ratatouille, 2007)의 엄청난 팬인데 ‘라따뚜이’ 실사화 얘기가 나오고 있거든. 그래서 요즘 계속 어필을 하고 있어.
S: 본인이 하고 싶다고?
D: 응, 캐릭터랑 싱크로율이 좋아서 잘 어울릴 것 같아. 지금 꾸준히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Q. 하반기 기대하고 있는 영화?
D: ‘트위스터스’(Twisters, 2024). 재난 영화인데 ‘미나리’(Minari, 2020) 감독이 찍은 거 있거든. 그래서 뭔가 이 감독이 어떻게 만들었을지 궁금한 거야, 이전 작품과 너무 다르니까.
Y: 그래, 근데 ‘미나리’에서도 화재 상황이 나오잖아요.
D: ‘미나리’에서는 화재가 사건의 진행을 위해 나온다면, 이 영화는 장르가 ‘액션/스릴러’라고 되어 있네요. 여기는 7월 개봉 예정이라 이 영화 조금 기다리고 있어요. 그리고 ‘미키 17’(Mickey 17)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건 내년으로 밀려서 아쉬워.
S : 근데 소제목 ‘우리 각자의 영화관 랜선 수다’ 뒤에 '1'을 붙이는 게 낫나? 다음 편이 있겠죠?
Y : 그럼요. 우리 또 언제 보죠? 2주 후에 볼까요?
D : 우리 엄마 아빠랑도 그렇게 자주 통화 안 하는데, 2주는 너무 빠른 거 아닙니까?
Y : 왜 엄마 아빠랑 통화를 안 하시나요?
D : 한 번 하면 1시간 넘게 하는데 엄마랑요. 근데 요즘 바빠서 잘 못 해요.
S : 저에 비하면 굉장히 양반이시네. 저는 뭐 한 두 달에 한 번씩 엄마한테 생존 확인차 전화가 오는데 30초 정도면 끝납니다. 할 말이 없어요.
D : 잘 살아 있으면 됐지 뭐.
Y : 대화 나눠줘서 고맙네 갑자기. 그럼 좋은 영화가 생기면 또 수다 떱시다. 좋은 밤 좋은 낮 보내요.
이번 '영화관 일기'는 세 명의 멤버가 따로 또 같이 쓴 대화록입니다. 다음 주부터는 각자의 일상을 담은 멤버별 작성 글이 다시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