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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리 각자의 영화관 Jun 19. 2024

칸 영화제, 그냥 시네필도 참석이 되나요?

일반인의 칸 영화제 입성기 1


‘칸 영화제(Festival de Cannes)’. 베니스, 베를린과 함께 흔히 세계 3대 국제 영화제라고 불리며, 그중에서도 가장 권위가 높다고 평가받는다. 영화 관계자들만 참석이 가능하고 콧대 높기로 유명한 프랑스의 칸 영화제는 보통 영화사의 해외 배급팀이나 수입팀, 프레스가 아니라면 방문할 일이 없다. 한국에서 영화 일을 했어도 먼 나라의 이야기 같았던 칸 영화제 참석은 항상 내 버킷리스트에 있었다.


당시 영국에서 석사 중이던 나는 문득 ‘옆나라에 온 김에 한 번쯤 가 볼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어 갑작스럽게 입장 패스를 받을 방법을 구글링 하기 시작했고…


3 Days in Cannes 그리고 Cinéphiles


최근 칸 영화제는 규정이 많이 완화되어 폐쇄적이던 영화제 환경을 바꾸려고 노력 중이라고 한다. 내가 방문했던 2022년의 경우, 업계 종사자가 아니어도 패스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이 두 가지가 있었는데 하나는 3 Days in Cannes이라는 18세에서 28세 이하의 전 세계 영화팬에게 발행하는 3일권 입장 배지. 배지가 있으면 모든 영화 티켓팅에 참전할 수 있으며(이후에 말하겠지만 이 말이 티켓을 구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대신 입장 날짜가 정해져 있다. 2022년은 개막식 3일과 중후반 3일, 폐막식 3일 중에 선택이 가능했다. 개막식을 선택한다면 좀 더 화려한 영화제를 경험할 수 있고, 폐막식을 선택한다면 후기를 보고 영화를 선택할 수도 있고 재상영하는 영화도 많기 때문에 더 다양한 영화를 볼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


늙은이는 안 되는 3 Days in Cannes


이쯤 되면 매번 소환되는 짤


그러나 슬프게도 나이 제한에 걸려버린 나는 Cinéphiles(이하 Cinephiles) 배지를 알아봐야만 했는데, Cinephiles의 경우 나이 제한이 없고 날짜의 제한도 없다. 대신 본인이 ‘시네필’이라는 것을 증명할 만한 무언가를 필요로 한다. 현재는 학교에서 그룹으로 신청하거나 영화학도, 문화 또는 영화클럽 기관에서 활동 혹은 영화관 멤버십을 구독하고 있는 경우에만 신청이 가능하다.  


https://www.festival-cannes.com/en/take-part/accreditations/
*해마다 자격요건이 변경될 수 있으니 자세한 사항은 홈페이지를 참고하세요.


신청 그룹에 따라 진행 방법이 조금씩 다른데, 나의 경우는 Film Student로 지원을 했다. 이 경우에는 Motivation Letter라는 일종의 자기소개서 같은 서류와 연도가 들어간 공식 학생 증명서, 여권 사본을 제출해야 한다.


사실 나는 정확히 Film은 아니고 Media 관련 전공을 공부하고 있었지만 레터에서 적당히 얼버무릴 수 있겠다 싶어서 안 되면 어쩔 수 없다며 큰 기대는 없이, 그러나 최선을 다해서 레터를 작성했다(굉장히 구구절절하게 우각영 프로젝트까지 넣어가며 칸 영화제가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설명했다).


당시 제출했던 나의 Motivation Letter 중 일부분


나의 경우로 짐작건대 항목에 꼭 명확하게 맞지 않더라도 레터로 잘 설명하면 어느 정도는 참작해 주는 듯. 참고로 레터는 영어 또는 불어로만 작성이 가능하다.


프레스를 제외하고 영화업계 관계자가 구입해야 하는 배지는 굉장히 비싼 편인데, 3 Days in Cannes이나 Cinephiles의 경우에는 환경부담금(당시 기준 24유로)만 지불하면 된다. 배지만 있다면 영화 티켓 값은 별도로 들지 않으니 영화제를 굉장히 저렴하게 즐길 수 있는 것. 물론 칸 영화제 시기의 호텔과 비행기는 천정부지로 가격이 치솟지만 영화 값이라도 아끼는 게 어딘가.


2022년 2월 초: 신청 오픈

2022년 3월 13일: 신청 완료 및 환경부담금 결제

2022년 3월 17일: 승인 완료


드디어 받게 된 Cinephiles 배지 허가 메일!


보통 2월 초부터 배지 신청을 오픈하고, 칸 영화제 사이트 내에서 신청이 가능하다. 영화 업계 관계자/프레스 패스의 경우 처음 신청하면 서류를 까다롭게 보는 터라 허가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들었는데 나는 5일 안에 결과를 받아볼 수 있었다. 다른 후기를 찾아봤을 때도 3 Days in Cannes이나 Cinephiles 배지는 결과를 비교적 빠르게 받아볼 수 있는 듯했다. 메일을 받자마자 빠르게 영화제 근처 호텔부터 예약하고 여유롭게 준비를 해나간다고 생각했으나? 역시 세상 일은 마음처럼 되지 않지.


당시 영국의 대학교들은 정부 정책에 맞서 대대적인 파업을 하고 있었는데, 나의 학교는 파업에 열정적으로 참여하는 학교였고 그러한 파업의 여파로 필수전공 시험이 미뤄진 것. 시험을 마치고 후련하게 칸 영화제에 가려던 나의 계획은 무참히 망했고 어떻게 맞춰봐도 칸 영화제 기간이 전공 시험기간과 겹치는 일정이 되어버렸다. 교수님께 칸 영화제 참석이 논문 작성에 도움이 될 것 같다는 말 같지도 않은 감언이설을 시도했으나 장렬하게 실패하고, 이 시험을 패스하지 못하면 학교를 1년 더 다녀야 한다는 무시무시한 답변만 받았다.


그렇지만 난 올해 아니면 영국에 계속 살 지 않을지도 모르는데? 칸 영화제 패스를 다시 받을 자격을 갖출 수 없을지도 몰라!


아아 이 무모한 과거의 나여… 결국 나는 시험은 낙제만 받지 않는 것을 목표로 성적을 버리고 칸 영화제를 선택하고 만다. 그래도 졸업이 걱정되었던 나는 현실에 타협하여 개막 3일만 참석해 낮에는 하루종일 영화를 보고 새벽에는 공부를 하는 미친 스케줄을 계획한다.


이 배지는 현재 본가에 고이 모셔두고 있다.


그리고 받게 된 이 영롱한 배지를 보라! 배지 분류에 따라 컬러가 다른데, 2022년의 Cinephiles 배지는 보라색이었다. 배지 컬러에 따라 입장 권한도 다르고 없던 티켓이 생기기도 하기 때문에 우스갯소리로 이 컬러가 칸 영화제 내 계급을 좌우한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2022년에는 최근 변경된 쓰레기 같은 온라인 예매 시스템을 이용했기 때문에 영화제 기간 내내 프레스와 업계 관계자들, 영화팬 모두에게 공평하게 욕을 먹었다. 한국의 영화제들이 그리워졌던 칸의 티켓 예매 시스템과 드레스업까지 해야 했던 까다로운 칸 영화제 후기는 다음 편에서 계속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다.


이렇듯 칸 영화제에 갈 수 있는 방법은 생각보다 다양하다. 재미있게 읽어주셨기를 바라며 혹시라도 칸 영화제 참석에 관심이 있다면 이 글이 도움이 되길 바란다.



글쓴이 : 런던의 D

런던에서 영화 주변을 기웃거리며 살고 있다. 한국에서 영화 홍보마케팅 일을 했으며 영국에서 미디어와 관련한 짧은 공부를 마쳤다. 현재는 영화제, 영화관 등 영화 관련된 일을 하며 근근이 살아가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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