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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리 각자의 영화관 Jun 12. 2024

제주섬 '우리 각자의 영화관'

2016.11.~2024.현재.


2016년 초여름, 육지에서 영화 '우리들'(2016)을 보았다. 너무 좋은 영화라 돌아오자마자 주변 친구들에게 대추천을 했으나 당시 제주도에서는 이 영화를 상영하는 곳이 없었다. 평소 육지 여행에서도 제주에서 상영되지 않는 영화와 공연 등을 관람하긴 했지만 미개봉이 이렇게 아쉬웠던 작품은 처음이었다. 당시 제주문화예술인력 양성과정에 참여하던 나는 좋은 영화를 꼭 제주 친구들과 함께 봐야겠다는 마음으로 '우리들' 공동체 상영 준비를 시작했다.  


프로젝트 이름은 칸 국제 영화제가 60주년을 기념해 만든 옴니버스 영화 '그들 각자의 영화관'(2008)에서 착안했다. 명칭을 정하지 못해 막막한 마음이 들었을 때 제주에서 만난 S선생님 부부가 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러자 ‘우리 각자의 영화관’이란 이름이 번뜩 떠오르더니 뭔가 내가 생각한 대로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고, 다양성 영화 상영회를 필두로 한 우리 각자의 영화관(이하 우각영) 프로젝트는 그렇게 시작됐다.



20대 초 음악 페스티벌 자원활동을 함께한 디자이너 S에게 행사 취지를 설명하고 브랜딩을 부탁했다. 그 결과로 탄생한 우각영 로고는 비스듬한 각도에서 본 영화 스크린에서 착안하여 기울어진 형태의 글자로 표현됐다. 전반적인 디자인에 적용된 모노톤은 영화의 원래 색감을 배제함으로써 각자의 시각으로 영화를 자유롭게 감상하길 바라는 프로젝트의 의도를 반영했다.


'우리들'(2016) 윤가은 감독님 GV 풍경


동녘도서관과 서귀포 관광극장에서 진행된 영화 '우리들' 상영회. 감사하게도 윤가은 감독님이 찾아주셨다. GV에서 감독님은 영화 뒷 이야기와 출연진의 근황, 영화추천 등을 해주셨는데 참 모두에게 다정하고 따뜻한 시간이었다. 멋진 감독님은 이후에도 차기작 '우리집'(2019)과 산문집 <호호호>를 발간하며 다채로운 행보를 펼치신 바 있다. 상영회가 끝나고 아직 재회하진 못했지만 좋은 날 감독님을 또 만날 기회가 있기를 꿈꿔본다.


'에곤 쉴레 : 욕망이 그린 그림'(2016) 상영회 전경


두 번째 영화 '에곤 쉴레: 욕망이 그린 그림'(2016)은 서귀포 세컨드뮤지오에서 상영됐다. 세컨드뮤지오 대표님은 우리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주셨고 생각한 것 이상의 결과물을 만들어주셨다. 대표님 덕에 우각영의 컨셉이나 진행방향이 잡혀 이후에도 상영회를 수월하게 치를 수 있었다. 이때부터 S와 마찬가지로 음악 페스티벌 자원활동에서 인연을 맺은 D와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토니 에드만'(2017) 상영회 전경


아주르 3025와 함께한 '토니 에드만'(2017) 상영회. 배급사 그린나래미디어의 도움이 더해져 영화 상영에 필요한 물품들을 대여했다.


김종관 감독님(왼)과 이은선 기자님(오)


영화 '최악의 하루'(2016)와 '더 테이블'(2017)의 김종관 감독님은 우각영과 인연이 깊다. 우리가 감독님과 인연을 맺게 된 데는 이은선 영화 기자님의 공이 컸다.


우각영이 시작된 2016년 11월, 이은선 기자님은 제주도 구좌읍 어드매서 한 달 살기를 하고 계셨고 우연히 동녘도서관 '우리들' 상영회에 관객으로 참여하셨다. 이후 파스타도 같이 먹고 재밌는 상영회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었는데, 그 결과물이 플레이스 캠프 제주에서 열린 '최악의 하루' 상영회였다. 기자님 덕분에 김종관 감독님과의 GV도 열게 되고 한예리 배우와의 통화 연결도 진행할 수 있었다.

 


감독님의 차기작 '더 테이블'에 대한 정보를 미리 알고 있었던 D는 뒤풀이 자리에서 야무지게 '더 테이블' 상영에 관한 계약서를 받아내는 데 성공하고! 우리는 결국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어오던 2017년 서귀포 관광극장 야외에서 '더 테이블'을 상영했다.


서귀포 관광극장에서 열린 '더 테이블' 상영회 전경


2017년 마지막 날에는 제주 신라호텔에서 영화 굿즈를 판매했다. 한 권에 한 영화를 주제로 한 격월간 영화 잡지 프리즘오브, 프리미엄 블루레이 브랜드 플레인 아카이브의 특별 에디션, '토니 에드만', '우리들'의 배급사 그린나래 미디어, 엣나인 필름의 다양한 영화 굿즈가 모였다.


영화 굿즈 판매 모습


영화 '패터슨'(2017) 상영회는 종달리 오브젝트늘에서 진행됐다. 제주의 특별한 브랜드를 소개한 임태수 작가님의 책 <바다의 마음 브랜드의 처음>에 실려 자축하는 의미로 열린 행사다. '패터슨' 상영회는 오브젝트늘 대표님의 도움을 받아 아름답게 마무리 됐다. 2018년 4월 14일 해당 상영회를 마지막으로 우각영 프로젝트는 더 이상 진행되지 않았다.


자체 제작된 '패터슨'(2017) 상영회 포스터

 



마지막 상영회 후에도 나는 제주에 머물렀다. 멤버 D는 ’더 테이블‘(2017) 상영회가 끝날 즈음 서울의 영화 홍보 마케팅사에 취업했고, S도 본업이 있어 우각영 활동을 계속하기 어려웠다. 스스로 영화를 선택하는 것도 고려했지만 나는 D만큼 영화를 좋아하지 않았고 수익도 없는 상황에서 상영회를 굳이 계속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새로운 것을 해보겠다 우겨 혼자 진행한 영화 굿즈 판매는 한 번의 추억으로 막을 내리게 됐다.


상영회를 지속하진 못했어도 나는 확실히 우각영 덕에 영화를 더 좋아하게 됐다. 지역 영화제를 여행하고, 다양한 감독의 작품을 보고, 많은 영화계 사람을 만났다. 그렇게 나 스스로 조금은 시네필이 되어가고 있다고 느낄 무렵 제주를 떠나 부산국제영화제 스태프로 일할 기회도 얻었다.



관객으로 참여했던 제주의 지인들은 넌지시 또 행사를 진행해 보는 게 어떠냐 푸시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섬의 삶이 또 녹록지만은 않아서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하며 혼자 활동을 이어나가기엔 자신이 없었다. 현재도 여전히 경제적 여유는 없고 업무 경력도 쌓아야 하는 상태지만 최근 심심한 일상 덕에 다시 재밌는 일을 벌이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중이다.


6년 전 종달리 프렌치터틀에서 우리들


6년 전 우각영 프로젝트를 함께한 D와 S는 런던과 서울에 사는 힙스터들이다. 이 친구들의 일상을 모아두는 것만으로도 매력적일 수 있다는 생각에 ‘영화관 일기’를 제안했다. 그녀들은 매주 수요일 3주 텀으로 돌아올 업로드 일정에 벌써부터 걱정이 많지만 일단 해보기로 마음을 모았다. 부디 제주와 서울, 런던에서 써 내려갈 우리의 특별한 영화관 이야기에 많은 공감과 관심이 더해지길 바란다.



글쓴이 : 제주의 Y

제주에서 영화와 전혀 관련 없는 일을 하며 산다. 예술학교의 광고학도로 기획이나 마케팅 등을 접하고, 육지에서 짧게 독립영화사 인턴과 영화제 스태프로 일했다. 언젠가 본인이 사랑하는 제주섬에도 좋아하는 영화관이 생길 것이라 굳게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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