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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운대 줌마 Jun 27. 2024

오랜 김치난민 생활을 끝내려
합니다.

아무튼 김치

어느새 내 나이도 육십 줄에 들어섰다. 

가족 먹일 김치 하나 내 손으로 담궐 줄 모르는 게 부끄러워진다.

친정 엄마 김치 십오 년, 시어머니 김치 십오 년을 공수해다 먹였다.

맞벌이 핑계로 때마다 챙겨주시는 김치를 용돈 몇 푼과 퉁치며 살았다.


삼 년 전 명퇴를 하고 나니 김치통 바닥이 훤하게 보여도 김치 떨어졌다는 말이 안 나왔다.

친정 엄마가 김치 있냐고 물으면 시댁에서 가져왔다고 하고

시어머님이 물으시면 친정에서 갖고 왔다고 하고.

대충 얼버무렸다.


여든 넘긴 노인들의 김치를 공수받는 건 좀 아니다 싶어서다

그야말로 김치난민이 돼버렸다.  



   

김치 없인 못살아정말 못살아!’

 그 정도 김치 애호가는 아니지만 식탁에 김치가 빠지면 왠지 허전했다.


남편도 대놓고 말은 안 해도 더 이상 김치를 공수해다 먹는 게 불편한 눈치다.

김치 없으면 사다 먹자고 마음 먹었지만

막상 마트 가서 김치를 사려면 선뜻 손이 나가지 않는다

비싸기도 하거니와 

가족들 입에 맨날 들어가는 김치를 생판 모르는 김치 공장의 입맛에 맞춘다는 게 

찜찜하고 미안해서다.      





궁하면 통한다고

김치 한 번 담구어 볼까?’ 

남편 몰래 생각의 씨앗을 조금씩 키우고는 있었다.

요즘 젊은이들은 유튜브만 보고도 온갖 요리들도 척척 해내던데.’

스스로 용기를 부축이면서 말이다.       


   

“ 여보, 학교 실습지에 얼갈이 배추가 한 창인데 좀 뽑아올까?

 당신 김치 한 번 담궈 볼래?”

시골학교에 근무 중인 남편이 불쑥 배추를 가져오겠단다.

나는 못 이기는 척 

그래요. 갖고 와요. 한 번 담궈보지 뭐


‘ 나도 모질이는 아닌데유튜브 선생들 믿고 한 번 해보자.

아무것도 안 하면 아무 일도 안 생겨실패하면 버리기 밖에 더하겠어.’

마음을 단단히 먹어본다.

그렇다고 걱정이 안되는 건 아니었다.


답답할 땐 유튜브다.

'얼갈이 물김치 담그는 법' 

두 세가지를 검색하여 보고 또 보았다. 

    




어머나세상에.’

주말에 남편이 얼갈이 배추를 한 자루나 들고 왔다     

갑자기 자신감이 급 바닥을 친다


이렇게나 많이맛없으면 어떡해양념값도 만만찮은데?”     

남편은 처음이니 가사 실습한다 생각하고 담궈 보자며

자신감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드는 나를 다독인다.  




남편과 마주 앉아서 얼갈이 물김치 담그기에 돌입했다

유튜브에서 이래야 한다더라 저래야 한다더라

남편에게 설명까지 해가며 입과 손이 분주하다

레시피를 꼼꼼히 살피며 김치 담그기에 고군분투 했다.


반나절이나 걸려 김치가 완성되었다.

김치통 하나를 가득 채워 놓으니 

전장터에서 식량을 비축해 둔 장군처럼 마음이 든든해진다.


지금 나의 첫 김치는 숙성 중이다.

김치통에 손을 얹고 염원 같은 주문을 외운다.

 “김치야, 맛있어져라! 맛있어져라!"



친정엄마도 시어머니도 이런 마음이었을려나?

자식들 먹일 김치 담그면서 입맛에 딱 맛기를 바라는 마음과  

기다림의 숙성 시간을 가지셨겠지. 

    


김치를 공수해다 먹은 긴 세월에 김치만 먹은 게 아니었구나

엄마의 사랑을 함께 먹고 지금까지 잘 살아왔구나 싶다.

이제 그 김치빚을 조금이나마 갚고 싶다.



온몸이 고장 난 자동차처럼 움직이기 힘들어 하시면서도 

자식들 위해 김장만은 포기 못하고 있는 친정 엄마.


김치와 엄마

엄마와 김장


수학의 등식처럼

엄마 음식의 대명사처럼


엄마의 숙명같은 

김치 담그기를 내가 이어받고 

김장 은퇴를 시켜드려야지.


좀 성급하지만 

야심 찬 다짐을 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뿐해진다.


내 자식들에게도

엄마 1호 김치를 먹어줄 수 있다고 생각하니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이제 기나긴 김치난민 생활의 끝이 보인다. 히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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