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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근 남도 밥상에 정들다

그 섬에는 맛과 정이 있었다

by 루미상지


동그란 밥상에 둘러앉은 사람들이 감탄을 한다.

“우와, 사장님, 새콤달콤 정말 맛있네요. 이게 뭔가요?”

숟가락, 젓가락질 소리 사이로 웃음소리가 잔잔하다.


영광 향화도 선착장에서 1시간 10분 배를 타고 상낙월도에 도착했다. 상낙월도와 하낙월도 두 섬은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언덕 위의 주황색 지붕 ‘큰몰 민박집’ 마당으로 들어갔다. 이렇게 작은 집에 우리 일행들이 모두 앉아 밥을 먹을 수 있을까? 걱정하며 신발을 벗었다. 방안을 본 순간 입이 떡 벌어졌다. 일곱 개의 동그란 밥상이 거실과 안방, 옆방, 작은 집에 가득 차려져 있었다.

배 안에서 우리 대장은 식당 사장님과 미리 통화했다.

“사장님, 저희 10시 30분 배 탔어요. 12시에 도착합니다. 준비해 주세요.”


동근 상 앞에 앉는 순간 남도의 멋에 빠져 버렸다. 음식 맛을 보기 전 이미 어린 시절 밥상을 다시 받은 것처럼 행복했다. 어머니 사장님과 도와주는 큰따님이 부족한 건 없는지 상과 상 사이를 분주히 오가며 살폈다. 이미 접시 가득 푸짐하게 담겨 있던 반찬을 다 먹어갈 때쯤이면 사장님은 어느새 고봉으로 꽉꽉 눌러 더 담아 오셨다. 우리 상에도 고구마 순 나물과 꽃게무침을 더 가져오셨다. 그때 옆 상에서 사장님을 불렀다.

“사장님, 오이무침 좀 더 주세요”

바로 달려온 사장님이 미안해 어쩔 줄 몰라하며 말했다.

“오메 어찌 까잉, 하필 고것만 딱 떨어져 불었는 디.....”

원조 남도 사투리에 오이무침은 더 못 먹어도 다들 웃음바다가 되었다.


억새, 감국, 괭이밥, 남오미자


어렸을 때 할머니와 부모님, 우리 6남매 등 아홉 명의 대가족은 옹기종기 동근상에 앉아 밥을 먹었다. 오늘처럼 대부분 나물 반찬이었다. 할머니 앞에는 항상 작은 술잔이 하나 놓여있었고 반주 잔이라 했다. 할머니는 끼니때마다 반주를 한 잔씩 드셨다. 먼저 아버지가 할머니 술잔에 술을 따르고, 할머니가 수저를 드시면 우리도 일제히 숟가락을 들고 먹기 시작했다. 어쩌다 고기나 생선 같은 반찬이 나오면 거의 할머니 앞쪽에 있었다. 할머니는 그 반찬을 아버지 앞으로 옮기셨고 아버지는 다시 우리들 앞으로 옮겨주시곤 했다. 연년생인 남동생과 나는 엄마의 눈치를 한 번 힐끗 보고 먹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생선 가시를 발라 할머니 밥에 올려 드렸고, 고기를 잘게 잘라 드렸다. 엄마 옆에는 항상 어린 동생이 있었고 엄마는 동생에게 먼저 밥을 먹이셨다.


우리들이 밥상에서 빨리 밥을 먹지 않고 깨작거리고 있으면 아버지는 벌떡 일어나 양복 주머니에서 지폐 한 장을 꺼내며 말씀하셨다.

“밥 먹기 시합이다. 밥 빨리 먹는 사람에게 아빠가 용돈을 주겠다.”

아버지의 말씀이 떨어지자마자 우리는 숟가락이 미어터지게 밥을 떠서 입에 밀어 넣었다. 물론 반찬은 하나도 먹지 않고서. 그러면 아버지가 또 말씀하셨다.

“반찬을 안 먹으면 반칙패다.”

모두 아버지를 바라보며 김치 한 조각을 터질듯한 입에 또 넣었다. 입이 가득 차 씹을 수도 없었다. 어린 동생에게 밥을 먹이던 엄마는 아주 못마땅한 표정으로 아버지를 째려보셨다.

“반찬 골고루 먹어야 될 아이들에게 쓸데없는 걸 시키시네요.”

그래도 우리는 모두 아버지의 손만 바라보며 누가 일등인지를 기다렸다. 거의 대부분은 남동생이 일등을 하고 용돈을 받아 갔다. 나머지 어린 동생들은 울기 시작했고 할머니와 아버지는 웃기 시작하셨다.


아빠가 좋아하는 나물 반찬이 올라올 때면 말씀하셨다.

“밥 비벼 먹을 사람은 모두 여기에 부어라.”

커다란 양푼에는 날달걀 한 개와 참기름이 넣어져 있었다. 우리는 모두 자기 밥을 커다란 양푼에 부었다. 엄마와 어린 동생만 빼고. 그러면 아버지가 비볐고 우리는 각자 밥그릇에 덜어 맛있게 먹곤 했다. 달걀찜을 해서 상 가운데 놓으면 남동생이 순식간에 다 먹어버렸다. 달걀 프라이가 반찬으로 나오면 빨리 자기 밥그릇에 먼저 옮겨 놓아야 안심하고 다른 반찬을 먹을 수 있었다. 구운 김이 밥상 가운데 놓이면 욕심 많은 남동생이 순식간에 다 먹어버렸다. 엄마는 김을 구워 자르지 않고 한 장씩 나눠줄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또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최고로 맛있는 김밥을 만들건 데 누구 아빠 따라 할 사람?”

아버지는 밥그릇과 국그릇을 방바닥에 내려놓고 밥상에 김을 펼쳤다. 모두 아버지를 따라 했다. 김에 밥 한 공기를 다 부어 김치와 반찬을 넣어 돌돌 말아 손으로 잡고 먹었다. 동생들은 반찬을 넣지 않고 간장만 넣어 말았다. 반찬을 넣으면 김밥이 뚱뚱해지고 터져서 먹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때도 아버지는 엄마의 따가운 눈총과 쓴소리를 들어야 했다.


할머니와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나는 결혼해 세 아이를 낳았다. 요리를 잘 하진 못하지만 아이들을 키울 때는 우리 집 밥상도 푸짐했다. 따뜻한 밥과 정성이 담긴 반찬, 정겨운 대화는 최고의 식탁이었다. 이제 아이들은 모두 자라 떠났고 남편과 둘이 앉아 조용히 밥을 먹는다. 아침 식탁에서는 그날의 일정을 서로 공유하고, 저녁 식탁에서는 하루 있었던 일들을 얘기하며 밥을 먹는다. 그럴 때면 문득 내 어린 시절과 우리 아이들의 이야기 소리, 웃음소리로 소란스럽던 그때 그 식탁이 생각난다. 김치찌개를 한 냄비 끓여 냄비째 식탁에 올려놓고 다 먹어 버렸던 날처럼 정겹고 푸짐했던 식탁을.



옛 기억과 함께 맛있는 점심을 먹고 상낙월도 바닷가 둘레길을 3시간 정도 걸었다. 큰 갈마골 해변으로 가는 10km의 해안 트레킹 코스는 무척 아름다웠다. 하지만 섬에는 사람이 없었고 길은 전혀 관리가 되어있지 않아 아쉬움이 컸다.

달이 진다는 섬 낙월도, 나에게 낙월도는 푸짐한 음식과 넘치는 정, 맛있는 섬으로 기억될 것이다.

고요한 낙월도 칠산 앞바다에 윤슬이 반짝인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185162&PAGE_CD=00000&CMPT_CD=S0024




*큰몰민박 : 010 3064 3430, 061 352 3430입니다.

민박집이어서 식사만은 안됩니다. 식사는 단체 손님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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