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먹자고? 그럼 자네가 하시게
드라마를 보다 보면 간단하게 잔치국수나 해 먹지라는 대사가 나올 때가 있다. 그런 장면이 나올 때마다 나는 혀를 끌끌 차며 그럼 자네가 하시게라고 혼잣말을 하게 된다. 잔치국수가 과연 간단할까? 여기서 간단하다는 건 먹는 사람의 시점일 거다. 이것저것 차린 것 없이 한 그릇에 담겨 나온 국수와 곁들여 먹는 김치정도가 식탁에 놓여있을 테니까.
요리를 잘하는 사람은 어떤지 몰라도 멸치나 채소 등으로 육수를 우려내고 면을 삶는 것에서부터 나는 요리의 의지를 잃어버린다. 면을 삶을 때는 흰 거품이 푸르륵 올라와 넘쳐버리고 육수를 내는 과정이 그냥 어렵다(요즘엔 간단한 시판제품들도 많지만).
비가 추적추적 오는 오늘, 언젠가 친구네 어머니께서 해주신 부산식 잔치국수가 생각났다(정식으로 부산식인지는 모르겠지만 고향이 부산이시라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진한 멸치육수에 흰 소면, 여기까지는
평범한 잔치국순데 고명으로 채 썬 단무지와 썬 부추 어묵이 올라가 있다. 잘게 썬 고추와 파를 간장에 절여둔 양념을 먹기 전 살짝 올린다. 먼저 숟가락으로 국물을 떠서 후후 불어 맛을 본다. 그리고 젓가락을 들어 가늘고 하얀 면을 돌돌 감고 단무지와 부추를 잘 집어 입속으로 넣는다. 어묵과 부추와 단무지가 이렇게 잘 어울리다니. 나는 감탄을 하며 한 그릇을 다 비웠다.
예전에는 잔치국수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입맛이라는 건 변하는 모양이다. 나는 잔치국수냐, 비빔국수냐라는 문제에 있어서는 언제나 비빔을 선택하던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요새는 90퍼센트 정도로 잔치국수를 선택하는 사람이 되었다. 비가 오는 점심, 일과 일을 처리하는 와중에 간단하게 요기를 하기 위해 국숫집에 들어갔다. 감자와 수제비를 넣어 끓인 감자 수제비, 칼국수와 수제비를 섞은 칼제비, 김치 수제비, 비빔국수 등 면요리가 있었지만 오늘따라 잔치국수라는 글씨가 눈에 임팩트 있게 들어왔다.
점심시간이라 사람이 많아서 음식이 나오는데 약간 시간이 걸렸다. 빨갛고 시큼해 보이는 김치가 한 접시 먼저 나오고 부산식 잔치국수를 아련한 눈빛으로 떠올리고 있자니 한 그릇 그득 담긴 잔치국수가 나왔다. 커다란 플라스틱 면기에 소면이 가득 담겨있고 유부와 계란을 풀어 끓였다. 와, 이건 양이 어마어마한데? 3분의 2 정도만 먹어도 정말 배가 터지겠구나. 나는 후추를 좋아하기에 테이블에 놓인 후추를 톡톡톡 뿌렸다. 먹을 시간이 별로 없어서 앞접시에 국수를 덜어 식히며 빠르게 먹었다. 간간한 국물도 시원하고 신김치를 곁들여 먹다 보니 후루룩후루룩 잘도 넘어간다.
비도 오는데 오늘 간단하게(사실은 안 간단하게) 뜨끈한 잔치국수 한 사발 하시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