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는 일이 많았고 사람도 많이 만났다. 어떻게 봐도 상당히 규격화된 삶과 죽음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위로하며 의례를 치러낸다. 우리를 위로해 주는 건 밥 먹었냐라는 말과 뜨끈한 국물 그리고 매콤하게 무친 무언가.
나는 이주일에 한 번꼴로 매콤한 쫄면이 생각난다. 쿨타임이 차면 쫄면을 먹으러 가거나 배달을 시킨다. 다소 굵은 면발에 빨갛고 새콤달콤한 양념. 삶은 콩나물과 양배추나 당근, 오이 같은 채소들을 채 썰어 올린다.
먹어야 하는 시점이 돌아온 것은 오늘이었나 보다.
점심으로 뭘 먹을까 생각하다가 김밥이 생각났는데 김밥 한 줄만 시키기에는 최소 금액도 안 나오고 양도 차지 않을 것 같아서 쫄면을 하나 추가했다. 추가해 놓고 보니까 메인이 김밥이 아니라 쫄면이 돼버렸지만.
내가 배달시킨 집은 옛날 쫄면과 옛날 김밥이 시그니처인 분식집이다. 김밥은 마른 잔멸치볶음과 볶음김치와 계란을 넣고 돌돌 말았다. 밥에 계란, 마른 멸치와 볶음 김치등이 있는 밥을 옛날 도시락이라 부르며 파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재료를 김밥에 넣었기 때문에 옛날 김밥인 모양이다. 쫄면에는 삶은 콩나물과 오이나 당근, 양배추 같은 채소가 채 썰어서 듬뿍 얹어져있으므로 뭔가 건강식을 먹었다는 착각도 든다. 다소 두껍다 싶은 탱탱한 면발에 참기름과 식초도 아낌없이 넣어준다.
젓가락을 들고 빨간 양념이 오통통한 면에 잘 배이고 채 썰은 야채가 사이사이 잘 섞이도록 열심히 비벼준다. 요새는 그래도 2주간격인데 예전에는 쫄면을 더 좋아했던 것 같다. 여행을 떠날 때 또 여행에서 돌아올 때 첫끼는 거의 쫄면을 선택했다. 생각해 보니 쫄면은 그 시절 여행자의 영혼을 달래줬는지도 모른다.
아쉬운 게 있다면 오늘 먹은 쫄면은 양념이 조금 짜고 맵긴 했다. 그리고 갈수록 맵찔이가 돼서 신라면 맵기 정도가 내 한계다. 내 안의 맵찔이가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요새는 자꾸 간장베이스의 무언가를 선호하게 된다. 그래서 시간이 날 때 해 먹어보고 싶은 레시피가 있다면 좀 순하고 양념맛이 적게 느껴지는 쫄면이다.
간장을 한 티스푼, 연두 같은 양념을 두세 방울 정도 넣고 들기름을 살짝 두른다. 설탕도 살짝 뿌려주면 콩나물을 데쳐서 얹고 생부추를 썰어서 얹는다. 여기에 얇게 썰어서 갖은양념으로 볶아 둔 새송이버섯이나 표고버섯을 얹어주면 완성. 물론 머릿속으로 생각만 하고 아마 해 먹지는 않을 것 같지만. 매콤한 것을 맛있기 위해서는 간이 세지 않은 플레인 한 맛을 평소에 먹어두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오늘 저녁 무엇을 드실예정이신가요? 물론 저녁으로 쫄면을 선택하실 작가님, 구독자님은 없을 것 같긴 하지만요.
저는 선생님들의 밥 메뉴가 늘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