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뮤하뮤 Aug 30. 2024

어제 못다 한 꿈을 이루는 하루

프로 야식러의 셀프칭찬일기

   길쭉한 호밀빵에 슈레드치즈를 넣고 오븐에 살짝 굽는다. 알맞게 녹은 치즈 위에 피망, 올리브, 양파, 양상추, 오이, 피클 등 불호 없이 모든 채소를 넣는다.(아, 검은 올리브를 더 넣는다면 짭짤하니 맛이 더 좋아지겠다) 호사스러운 여유를 부리고 싶은 생각이 들면 아보카도 으깬 것을 추가할 수도 있다. 고소한 랜치소스도 좋겠지만 나는 대개 올리브유와 소금과 후추를 뿌려달라고 부탁한다. 자리에 앉아서 샌드위치를 크게 한입 베어 물면 빵의 반대편 꽁지에서 우수수 내용물이 떨어지는 것은 기본이다. 그렇기에 야무지게 빵의 아랫부분을 종이 포장지로 잘 감싸 쥐며 먹어야 한다.


  아직 더운데도 사람들은 귀가하는 길에 사 먹는 어묵을 포기하지 않는 것 같다. 하루종일 뭉근하게 달여진 어묵 국물에 퉁퉁 불은 어묵이 꽂혀있다. 그 옆에는 길쭉한 철판에 물엿을 많이 넣어 반지르르한 떡볶이가 빨간 양념을 뒤집어쓰고 있다. 바쁘게 집으로 가던 사람이 무언가를 결심한 듯 빠른 걸음으로 길거리떡볶이 집 앞으로 다가온다. 그때의 결연한 표정이란. 표정도 그렇지만 그 경제적인 움직임에 감탄하고 만다. 두어 걸음을 옮기는 것 만으로 길이 식당으로 변하는 것도 그렇고 식당의 영역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어묵꼬치를 집어드는 간결한 동작. 매우 효율적이고 말고.


  제단처럼 찜기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몇 층 씩 쌓아 올려져 있다. 증기배출구멍에서 힘차게 증기가 뿜어져 나온다. 수증기는 공기로 퍼지는데 입자에는 새우와 밀가루의 냄새가 섞여있다. 스티로폼접시에 막 나온 새우만두를 가지런하게 담고 부채질로 한 김 식혀서 고무줄로 포장해 주는 만두집 주인, 낱개로 포장한 간장과 단무지를 함께 싸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손님은 새우만두를 담은 봉지를 흔들며(아니, 크게 흔들면 안 되죠, 만두가 흐트러진단 말입니다.) 횡단보도를 건너간다. 저 집의 새우만두는 살짝 매콤하고 짭짤함이 지나치긴 하지만 충분히 유혹적이다.


  이 세 가지 유혹을 지나쳐 어제는 야식을 먹지 않고 새벽 1시 반쯤 잠이 들었다. 물론 자기 전에 떠올린 것은 샌드위치, 길거리떢복이, 새우만두.

거짓말처럼 자고 일어나니 어젯밤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아침으로 뭘 먹을까 하다가 냉동 잡곡빵 하나를 토스트기에 구웠다. 견과류 봉지도 하나 뜯어서 접시에 쏟았다. 잡곡빵에 땅콩이 씹히는 청키 한 땅콩잼을 두껍게 바르고 딸기잼은 얇게 펴 발랐다. 땅콩빵을 야금야금 깨물어 먹다가 음료가 뭐가 있나 냉장고를 뒤져봤더니 단백질이 이십 얼마가 함유되어 있다는 초코맛음료수가 있었다. 홀랑 마시고 나니 살짝 배가 차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절제하는 것은 좋다. 밤새 비어있는 위장은 숙면을 도와주기도 한다. 아침에 허기를 느끼며 일어나는 것은 새로운 하루에 대한 기대감을 심어준다.

이상 잦은 야식으로 위장과 식도에 염증이 있는 프로야식러의 셀프칭찬일기였다. 모두들 스스로에게 틈나는 대로 칭찬 열개는 해주시길 바라며 어제 못다 한 꿈을 이루는 하루가 되시길 바란다. (저는 어제 못 먹은 샌드위치를 먹도록 하겠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