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최근 가보게 된 동네 선술집을 떠올려봤다. 금요일 저녁 공연을 보고 지인과 맥주 한잔을 할까 장소를 찾다가 마침 지인의 지인이 한다는 근처 가게로 갔다. 위스키와 와인을 주력으로 파는 작은 캐주얼바인데 편안한 차림에 슬리퍼를 신은 손님들이 눈에 띄었다.
우리는 생맥주를 한잔씩 시키고 가지튀김과 탄탄면을 주문했다. 맥주를 홀짝홀짝 마시며 기타리스트가 피아노를 쳤을 때 피아노 건반이 어떻게 이용되는지 이야기했다(기타리스트가 공연 마지막에 기타를 피아노로 바꿔 연주했기 때문이다. 피아노 연주는 정말 멋있었지만 여전히 그 소리는 기타처럼 들렸다.)
맥주를 반쯤 마셨을 때 가지튀김과 딴딴면이 나왔다. 가지는 어슷하게 썰어서 튀김옷을 입혀 바삭하게 튀겨냈다. 간장, 식초, 고춧가루(그리고 한 가지 소스 재료가 더 들어간 것 같다. 설마 스리라차소스인가?)로 만든 소스가 같이 나왔다. 튀김은 바삭할 때 먹어줘야 한다. 뜨거운 가지튀김을 젓가락으로 집어 개인접시에 잠시 안착시킨 후 소스를 두 방울 뿌렸다. 살짝 식힌 후 가지 튀김을 베어 물고 바삭한 식감을 느낀다.
이 집의 딴딴면은 메밀국수 같은 식감의 면에 꾸덕꾸덕한 땅콩소스가 얹어져 나왔다. 고춧가루와 마늘은 최소한으로만 들어가 있고 쪽파가 살짝 고명으로 얹어져 있다. 딴딴면의 땅콩소스를 비벼서 한 젓가락 음미한다. 고소하고 느끼한 풍미가 혀를 감싼다. 생맥주를 한 모금 더 마신다. 맛있는 것을 먹으며 다른 사람이 어떻게 사는지 이야기를 듣는 것은 언제나 즐겁다. 바에 앉은 사람들이 작은 선술집의 스태프들과 자연스럽게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보인다.
어제는 합주를 마치고 보컬님의 제안에 따라 베이스님과 근처의 작은 선술집으로 갔다. 오며 가며 보기만 했을 뿐이지 한 번도 들러본 적이 없는 선술집이다. 생각보다 분위기가 편안하고 독특한 메뉴가 많았다. 요새 인스턴트만 먹어서인지 배탈이 난 게 바로 전날이라 차가운 맥주 마실 용기는 없고 그렇다고 탄산음료만 먹기에는 아쉽다. 메뉴판을 정독하다가 두유하이볼을 발견했다. 주인장에게 하이볼의 알코올은 아주 소량만 넣어달라고 부탁하고 곁들여 먹을 메뉴로는 꿀토마토, 치즈, 크래커와 후추아이스크림을 시켰다. 시키고 나니 너무 간식거리만 시킨 것 같았지만 나는 저녁으로 호박죽을 배달시켜서 배부르게 먹었기 때문에 충분했다(생각해 보니 호박죽도 달달했는데 또 달달한 아이스크림을?)
올록볼록하게 긴 잔에 얼음과 두유하이볼이 나왔다. 요청대로 도수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 달콤한 두유맛이다. 술집에 흐르는 음악은 스윙이 나왔다가 애시드재즈가 나왔다가 킬빌 ost가 나오는 등 일관성이 없었지만 제법 이 공간과 잘 어울렸다. 우리는 클럽과 연주자 페이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하고 고령화시대에 대한 토론도 하면서 작은 숟가락으로 아이스크림을 퍼먹었다. 바닐라아이스크림에 통후추가 박혀있는데 통후추와 아이스크림은 잘 어울리는 소재지만 날이 더워서인지 두유하이볼을 몇 모금 마시는 사이에 녹아버린 눈사람처럼 질척거렸다.
질척거리는 아이스크림은 질색이므로 옆에 있는 꿀토마토와 치즈, 크래커에 눈을 돌렸다. 그런데 치즈가 커다란 산처럼 쌓여있는 것과는 달리 크래커는 달랑 몇 장밖에 없는 게 아닌가. 아니 크래커와 치즈의 비율을 어느 정도는 맞춰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부지런히 크래커에 치즈 한 귀퉁이를 떼어 올리고 토마토를 얹어 우물거렸다. 와인 같은 것에 곁들여 먹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오늘 내 컨디션에 두유하이볼은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 바에 앉은 사람들은 선술집의 주인 그리고 옆에 앉은 단골들과 즐겁게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집으로 돌아오며 동네의 조그만 선술집이 갖는 의미를 생각했다. 선술집은 배고픈 자에게 먹을거리를, 목마른 자에게 술을, 이야기할 장소를 준다. 단골들은 그 가게에 자신의 공간과 비슷한 애착을 갖기도 한다.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물건을 흘리고 가기도 하고 자신이 만든 무언가를 선물하거나 유리창에 그림을 그리는 식으로 자신의 체취를 듬뿍 묻힌다. 동네 선술집이여 ,단골들이여 술잔을 들고 안주를 먹으면서 이야기를 마음껏 나누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