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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ware of Awareness May 28. 2024

당신은 의지박약이 아니다.

의지력도 체력처럼 강하게 할 수 있다는 희망


  퇴근 후 나만의 시간은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운동, 영화 보기, 독서, 그림 그리기, 모임 등 정서와 관계를 충만히 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다. 그래서 퇴근 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정해서 하려고 하지만 막상 일이 끝난 후에는 집에서 소파에 누워 넷플릭스나 뒤적거리다 잠든다. 그다음 날 아까운 자유시간을 그렇게 허비했다는 생각에 자책을 한다. 왜 늘 계획만 세우고 하지 못하는지 자신을 ‘의지박약’이라며 자책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건 당신 잘못이 아니다. 누구나 다 그렇다. 우리는 의지력이 약하다며 자신을 비하하는데 익숙해져 있다. 풀코스 마라톤을 뛰고 온 당신에게 1km만 더 뛰라고 한다면, 그런데 당신이 더 이상 못 뛰겠다고 주저앉으면 누구를 비난하겠는가. 당연히 그 고생을 하고 온 사람한테 더 하라고 하는 사람이 문제다. 그 누구도 당신이 의지박약이라 더 못 뛴 하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하루 종일 풀코스를 뛰고 온 자신에게 1km 더 못 뛴다고 스스로 비난한다. 이건 옳은 생각이 아니다. 


  생각해 보면 어떤 날은 퇴근 후 기분 좋게 운동을 하러 나서는 경우도 있었지만 어떤 날은 그저 소파에 누워 티브이만 보다 잠들 때도 있었다. 어떤 날은 건강에 좋은 음식을 찾아 직접 해먹기도 했지만 어떤 날은 편의점에서 레토르트 식품을 잔뜩 사다 레인지에 돌려먹기도 한다. 어떤 날은 의지력이 충만한 듯하다가 어떤 날은 의지박약으로 느껴진다. 1990년대 중반에 웨스턴 리저브 대학교의 마크 무레이븐이라는 대학원생이 의지력 시험으로 유명한 ‘마시멜로 시험’의 결과에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왜 의지력은 일정하지 않은가’


  무레이븐은 67명의 학부생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다. 갓 구운 쿠키와 무를 놓고 절반의 학생에게는 쿠키만 먹고 무를 무시하라고 지시했고 나머지 학생에겐 무만 먹고 쿠키를 무시하라고 했다. 실험 전에 한 끼를 먹지 말아 달라는 요청도 했다. 무레이븐은 쿠키를 무시할 경우 의지력이 필요하겠지만 무를 무시하는 데는 의지력이 크게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쿠키를 받은 학생들은 행복해 보였다. 따끈따끈하게 갓 구운 쿠키는 상상만 해도 행복해진다. 더구나 한 끼를 굶었다면 그 쿠키는 더없는 만족감을 주었을 터다. 반대로 그 배고픔을 느끼며 갓 구운 쿠키를 눈앞에 두고 무를 먹어야 했던 학생들이 상상해 보라. 상상대로 엄청난 불만을 토로했다. 


  진짜 의지력 시험은 이후에 진행되었다. 쿠키나 무를 먹은 직후 수수께끼를 풀라는 미션을 주었다. 

예상처럼 쿠키를 먹은 학생들은 실험자가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30분 넘게 문제에 집중하고 끈질기게 달려들었다. 반면 무를 먹은 학생들은 불만에 가득 차있었다. 이런 실험은 시간 낭비라고 하는 학생, 아예 탁자에 엎드려 버리는 학생, 연구자에게 격렬하게 항의하는 학생 등, 평균적으로 8분을 버티지 못했다. 


  무를 먹은 학생들은 쿠키를 먹고 싶은 욕구를 견디는데 의지력을 사용했기 때문에 이후 실험을 더 빨리 포기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 이후로도 비슷한 연구가 200건 넘게 진행되었지만 결론은 똑같았다. 의지력은 무한정 뽑아 쓸 수 있는 자원이 아니다. 그래서 피곤한 일정 끝에 내리는 결정은 대부분 안 좋은 것이 많다. 연구자들이 이 이론을 근거로 설명한 예로는 혼외정사(의지력을 소진한 후인 늦은 밤에 행해지는 경우가 많다.), 의료사고(피로가 누적된 상황에서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수술에서 실수를 한다.) 등이 있다. 퇴근 후에 나를 위한 활동을 하거나 중대한 개인 결정을 내려야 한다면 낮에 의지력을 아껴둬야 한다. 일과 시간에 일찌감치 의지력을 소진해 버리면 퇴근 즈음에는 의지력은 사라지고 만다. 


  연구자들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의지력이 체력 같은 거라면 체력도 훈련을 통해 늘릴 수 있듯이 의지력도 그럴 수 있지 않을까라는 궁금증으로 이어졌다. 연구 결과 의지력도 체력처럼 훈련하면 성장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체력과 의지력은 놀랍도록 닮아있다. 체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약간의 과부하가 필요하다. 실패지점에 부딪혔을 때 한 번만 더하면 그게 체력이 된다. 실패지점에서 한 번만 더 시도해 보는 것이다. 


  의지력에서 실패지점은 자제력을 잃을 때다. 진상 고객을 만났을 때, 회사에서 실적 압박을 느낄 때 등 의지력을 갉아먹는 상황이 있다. 이 지점을 명확히 알고 대처할 수 있으면 의지력은 높아질 수 있다. 여러 실험과 사례를 통해 검증된 방법은 이렇다. '~했을 때 ~하겠다.'라고 스스로 작성해 보는 것이다. 평소 일과를 돌이켜 보고 감정을 소모시키는 상황을 찾는다. 감정 소모가 큰 순간에 대처하는 방법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가 닥치면 어떻게 하겠다는 행동양식을 적어본다. 그리고 실제로 그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 그대로 한다. 가족이나 친구에게 부탁하여 롤플레잉을 하면 효과를 더욱 높일 수 있다. 작성할 때 최대한 상세히 적을수록 효과와 적용도는 높아진다. 


  1992년 스코틀랜드에서 의지력에 관련된 실험을 진행했다. 고관절이나 무릎 관절 교체 수술을 한 사람이 대상이었다. 고관절이나 무릎 관절 교체 수술 후 회복 과정은 더디고 고통스럽다. 조금만 몸을 뒤척이거나 관절을 구부려도 극심한 통증을 느낀다. 하지만 환자는 수술 후 깨어나자마자 운동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관절이 굳기 때문이다. 고통이 극심해서 노인 환자의 경우 의사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 경우가 빈번히 발생한다. 


  이 실험에 모집한 관절 교체 수술 환자의 기준은 평균 연령 68세, 연소득 1100만 원 이하로 실패할 가능성이 높은 사람이었다. 이런 환자들이 의지력을 키울 수 있는지 확인하려는 목적이었다. 이들에게 재활 과정이 담긴 책자를 나눠주었다. 책자의 뒤쪽에는 13페이지의 백지가 있었다. 백지 위쪽에는 ‘이번 주 목표는 ~이다. 무엇을 할 예정인지 정확히 쓰십시오.’라고 쓰인 지시가 있었다. 실험자는 계획을 최대한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써달라고 부탁했다. 목표를 쓴 환자와 안 쓴 환자의 회복 정도를 비교할 생각이었다. 


  백지에 계획을 착실하게 기록한 환자는 그렇지 않은 환자에 비해 2배나 빨리 걷기 시작했고, 3배나 빨리 혼자의 힘으로 휠체어를 타고 내렸다. 게다가 세탁이나 요리 같은 일상생활에 복귀하는 속도도 훨씬 빨랐다. 이 환자들의 기록을 면밀히 검토한 바, 대다수 계획에서 공통점을 찾았다. 통증이 예상되는 시점에 대처하는 방법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욕실로 가는 길에 운동을 하겠다고 기록한 남자는 소파에서 일어날 때마다 통증이 극심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그 통증에 대처하는 법을 써 놓았다. 한편 버스 정류장까지 아내를 마중 나간 남자는 그 산책이 하루 중 가장 길고 고통스러운 시간이었기 때문에 오후가 가장 두려웠다. 그래서 그는 버스 정류장까지 가는 길에 만나는 온갖 난관을 상세히 열거하였고 그 난관을 이겨낼 방법을 미리 짜 두었다. 


  재활에 빨리 성공한 환자들은 통증이 가장 극심할 때, 

  포기하고 싶은 유혹이 가장 강할 때를 중심으로 계획을 세웠다. 

  가장 힘든 순간을 이겨 낼 방법을 스스로 생각해 낸 것이다.


  일상에서 실패지점을 이겨 내기 위한 자신만의 계획을 적어 두고 몸에 밸 때까지 반복하는 연습은 의지력을 강화해 준다는 실례를 보여준다. 이는 자신을 스스로 통제한다는 느낌을 갖기 때문이다. 같은 일과 상황이라도 누군가의 지시에 의해서 수동적으로 하기보다 자신의 판단과 생각으로 스스로 하면 일을 대하는 태도와 성과가 달라진다. 외부 환경을 예측하고 거기에 맞는 행동양식을 만드는 것은 외부영향에 끌려가지 않고 내가 능동적으로 상황과 상대방에 대응하겠다는 자기 주도적인 의지다. 


  상황은 같아도 대하는 마음가짐과 행동을 변화함으로써 주도권을 내가 가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그 상황을 참기 위해 썼던 의지력을 높은 수준으로 아낄 수 있고 내가 원하는 일에 마음껏 쓸 수 있다. 통제권이 나에게 있다는 의식만으로 의지력은 크게 높아진다는 뜻이다. 이런 훈련을 반복하다 보면 나중에는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서도 여유 있게 대처할 수 있다. 의지력과 자제력이 높아져 상황과 감정에 휘말리지 않기 때문이다. 


  의지력도 에너지다. 하루에 쓸 수 있는 체력이 있듯 의지력도 하루에 쓸 수 있는 양이 정해져 있다. 정말 다행인 점은 체력도 훈련을 통해 키울 수 있듯 의지력도 훈련으로 키울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내가 퇴근 후 무기력과 권태에 시달린다면 의지력이 약해빠진 탓이라며 자책하지 말고 오늘 하루를 치열하고 고되게 살아냈음을 칭찬하고 보듬어주기 바란다. 당신은 압박과 힐난이 난무하는 전쟁터에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돌아온 영웅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친 몸을 소파에 누이고 넷플릭스를 볼 자격을 맘껏 누려라. 


  그리고 충분한 휴식을 취한 후에 맑은 정신으로 노트와 펜을 꺼내 들어라. 

  이제 퇴근 후 남는 의지력을 원하는 곳에 맘껏 쓰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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