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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ware of Awareness Jun 11. 2024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남들이 이상한 만큼 나도 이상하다.

흰옷을 선호하지 않는다. 음식을 먹거나 커피를 마실 때 흘릴까 봐 신경 쓰인다. 먹고 마시는 건 즐거운 행위인데 옷 때문에 제한되는 기분이 싫다. 튀지 않게 흘리지 않게 조심해서 먹느라 신경 쓰여서 식사 자리가 불편해진다. 앞치마를 하긴 하지만 꼭 앞치마가 안 가리는데만 튄다. 그런 날 타 부서나 외부 미팅이라도 있으면 집에 있는 흰옷을 몽땅 검은색 청바지랑 같이 빨아버릴까 고민한다.


그런데 어떤 것을 좋은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주의를 기울이는 게 나쁜 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하고 싶은 대로만 하고 사는 게 좋은 걸까. 자유는 무엇이고 구속은 무엇인가. 같은 일이라도 하고 싶어서 하면 자유고, 의미를 느끼지 못하거나 귀찮은 일이면 구속인가. 자유와 구속의 경계는 어디일까. 나도 기타를 새것 같은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집착한다. 깨끗한 기타는 보기만 해도 기분 좋고 칠 때도 기분이 좋다. 기타를 깔끔하게 유지하는 행위는 자유고 옷에 음식 흘릴까 봐 신경 쓰는 건 구속인가. 


행위는 본질보다 선호가 우선한다. 무의식적으로 반응해놓고서는 마치 대단한 철학이 있어 그런 것처럼 윤색한다. 그래서 행동이나 말에 일관성이 없다. 문제는 그 사실을 그대로 인정하면 되는데 안 한다는 점이다. 언행일치가 안되는데 된다고 착각한다. 


나는 스스로 이성적이고 일관적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물건을 보존하는 일은 즐겁고 그 반대는 고통이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면 모든 물건을 그대로 보존하는 일이 즐겁거나 더러워져도 신경 쓰지 않는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이 모순을 들키지 않기 위해 명분으로 행위를 합리화한다. 돌이켜보니 나는 내 생각보다 합리적이지 않다. 합리화는 생존하기 위한 방어기제이기에 어쩔 수 없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합리화로 세상을 살아간다. 합리화가 없으면 불안과 공포에 질려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내 눈에 남이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만큼 나도 남의 눈엔 그렇다. 그러니 다른 사람이 그럴 때 비난하거나 무시하지 말자고 마음을 먹는다. 물론 쉽지는 않다. 아무리 노력해도 이해가 안 되는 사람이 더 많긴 하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은 모순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성인이나 성현 말고 누가 있을까. 보통의 삶을 사는 대다수는 그렇지 않다. 되는대로 막살자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 남도 모순적이고 비이성적이지만 나도 그렇다는 점을 인정하자는 말이다. 완벽하지 않은 사람들끼리 살아가는 세상이니 좀 더 여유를 갖고 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그저 저 사람은 저렇구나 하고 넘어가면 인생이 좀 더 편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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