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 울릉도
딱히 할 게 없었던 나는 그 일행과 몇 마디 주고받으며, 숙소에서 키우는 고양이들과 함께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그런 모습이 너무 심심해 보였는지 일행 중 한 명에 나에게 말을 걸었다.
"오늘 일정 없으면 같이 산 가실래요? 나리분지에서 출발하니까 괜찮을 거예요."
나는 여기서 큰 실수를 해버렸다.
"그럴까요?"
나리분지에서 출발하면 등산 높이는 반으로 줄어들었다. 거기에 출발 전 나리분지에서 산채비빔밥, 내려오는 길에 물회까지 먹는다고 하니 꽤 괜찮은 선택지처럼 보였다. 그러나 산행은 순탄치 못했다. 나리분지에서 밥을 먹고 본격적으로 산을 오르기 시작하자 폭우가 내리기 시작했다.
2편의 조프리 레이크에서 맞이한 비는 어느 정도 즐길 수 있을 정도의 비였는데, 여기는 진짜 폭우였다. 이러다가 조난당하는 거 아닐까?라고 생각하게 될 정도였다. 안개로 인해 시야도 안 좋아서 10미터 밖으로는 보이지도 않았다.
그렇게 폭우로 인해 성인봉은 어디선가 귀신이 튀어나올 것 같은 음산함과 자연의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장소가 됐다. 그런 오묘한 분위기와 다르게 등산은 매우 힘들었다. 고도 984미터까지의 등산을 폭우와 함께 했으니 당연하다(시작을 고도 500미터에서 하긴 했지만).
이번 여행은 쉽게 가려고 했는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그 말 한마디가 문제였을까.
그래도 고생 끝에 무사히 숙소로 돌아오긴 했다. 다행인 점은 등산이 강제로 한량의 덕목을 이루어줬다. 그 이후로 정말 푹 잤다.
그날 이후 나는 늦게까지 잘 수 있게 됐다. 12시쯤 일어나 점심을 먹고 바다 산책을 하다가 간단하게 관광지를 둘러보고 오는 일정이 반복됐다.
아니면 가끔은 그런 날도 있었다. 카페가 그리워질 때, 바다를 바라보며 1~2시간에 한 대씩 오는 버스를 기다렸다. 빨리 저동항으로 넘어가 시원한 커피와 달달한 디저트를 먹고 싶었지만, 버스가 오지 않으면 그곳에 갈 수 없었다. 결국 마음을 내려놓고 울릉도의 파란 바다를 바라보며 여유롭게 기다림의 시간을 받아들였다.
바다의 시원함과 여름의 열기가 합쳐져 미적지근해진 바닷바람을 맞으며.
그렇게 바다를 바라보며 조금의 시간이 지나면 저 멀리서 버스가 다가왔다. 버스를 타고 저동항으로 넘어가 바다와 울릉도의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는 카페 창가에 앉았다. 지나가는 차들과 바다를 보며, 때로는 비 오는 울릉도의 시내를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휴식이 필요했던 나에게 너무 온전하게 여유로운 시간이었다.
비록 지금은 사라져 버린, 당시에는 창문 너머 바깥 풍경이 너무 좋았던, 자주 방문해서 주인분이 여기 사는 분이냐고 물어보기까지 했던 그 카페에서 추억을 남겼다.
그렇게 여유로운 일상이 반복되고, 그 사이에 풍경이 조금씩 녹아들었다.
물론 그런 비슷한 시간이 8일 동안 반복되면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익숙함이란, 가끔 모든 것들을 평범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하지만 버스 정류장에서, 카페에서, 또는 그 외의 다양한 장소에서 바라본 울릉도의 풍경은 며칠이 지나도 나를 익숙함에 빠지지 않게 만들었다.
그중 가장 아름다웠던 풍경은 단연코 노을이었다. 망망대해에서 홀로 서있는 작은 섬은 동쪽과 서쪽이 모두 뚫려있어 일출과 일몰 때 모두 노을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노을은 항상 바다와 함께였다.
관광을 끝내고 숙소에 들어오면 조금씩 해가 지며 서쪽으로 노을이 생겨났다. 독도를 가기 위해 일찍 일어나거나 술을 마시며 밤을 지새우면 반대로 동쪽에서 해가 떠오르며 노을이 생겨났다. 하루에 두 번, 하루에 한 번 보기도 힘든 아름다운 노을을 하루에 두 번이나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노을과 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울릉도의 모습까지 모두 보이는 풍경은 다른 그 어느 곳의 노을보다도 아름다웠다.
독도를 가기 위해 아침 버스를 기다리며, 관광 후 모든 일정을 마치고 바다가 보이는 의자에 앉아... 카페가 있는 저동항에 갈 때와 같이 급하지 않게, 차분해질 수 있는 시간들. 그렇게 하루의 시작과 끝을 함께했다.
그렇게 여유로운 8일간의 울릉도 한량 생활이 끝이 났다.
마지막으로 간단하게...
그런 여유로움을 제외하더라도 울릉도의 풍경은 여행을 올 정도로 충분히 아름다웠다. 특히 내게는 대풍감이 그러했다. 마치 거대한 대륙을 따라 길게 이어진 해안선을 바라보는 듯한 풍경.
대풍감을 본 날은 오늘처럼 너무나도 더웠지만, 그 풍경은 더위를 모두 날릴 정도로 웅장했다. 여기뿐만이 아니었다. 최고의 장소, 대풍감을 제외하고도 아름다운 풍경이 많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