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 그랜드 캐니언(4)
하루가 조금 넘는 시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을 지나 그랜드 캐니언에 도착했다.
아름다웠다. 끝없이 펼쳐진 협곡과 푸른 하늘. 여행에 대해 대화를 나눌 때 그랜드 캐니언 이야기가 나오면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사진은 눈을 보는 것을 전부 담지 못한다."라는 문장을 가장 잘 느끼게 해 준 장소. 그랜드 캐니언은 그 정도로 경이로운 곳이었다.
하지만 그랜드 캐니언에 대해서는 이미 수없이 많이 표현되었기 때문에 오늘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여기서는 그랜드 캐니언 그 안에서 시간을 보냈던, 일상과도 같은 하루를 적어보기로 했다.
해먹
언제나 그렇듯 도시를 벗어난 우리의 숙소는 캠핑장이었다. 시설만 보면 도시의 숙소에 비해 열악했지만, 캠핑은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자연, 여유 그리고 한적함 등 그것만의 매력이 있었다. 여기에 이번 캠핑에는 해먹이라는 매력을 더해보기로 했다.
해먹. 다양한 이유로 설치하지 못해 언급조차 못했던 비운의 해먹. 우리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리만 차지하던 해먹을 설치했다. 자리를 구매하고, 텐트를 설치하고, 짐을 정리하고... 익숙하게 캠핑 준비를 마친 우리는 해먹을 꺼냈다.
설치는 금방이었다. 10분은 걸렸을까? 나무에 줄을 연결하고, 바닥에 닿지 않도록 길이를 조절하니 금세 그럴싸한 해먹이 완성됐다.
설치가 끝나고, 평소라면 누님이 먼저겠지만 이번에는 안전성 검증을 핑계로 먼저 해먹에 누웠다.
하늘이 보였다. 그저 단순한 하늘. 햇빛을 가려주는 나무 사이로 보이는 파란 하늘과 그곳을 떠돌아다니는 구름이 전부였다. 그러나 달랐다, 사방이 모두 막혀있는 텐트 안에서 보는 풍경과는.
온전히 자연이 느껴지는 개방감, 아무런 소음 없이 조용한 캠핑장, 천천히 흘러가는 구름, 잔잔하게 흔들리는 해먹 그리고 그랜드 캐니언이라는 자연이 주는 편안함이 모두 더해져 그 순간을 여유롭게 만들었다.
거기에 캠핑장은 인터넷도 잘 안 터졌다. 해먹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지나가는 구름을 감상하거나, 잡다한 생각을 하는 것이 전부였지만, 무언가 특별한 것을 할 필요는 없었다. 해먹의 편안함과 그랜드 캐니언의 하늘은 지금을 지금 그대로를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캠핑장의 시간은 그렇게 지나갔다.
정차
시간이 지나고, 우리는 장을 보기 위해 캠핑장을 나섰다. 목적지는 마트가 있는 방문자 센터, 왕복으로 1~2시간이면 충분한 거리였다. 하지만 우리는 6시간이 넘게 지나서 캠핑장에 돌아올 수 있었다. 센터에서 장도 보고, 근처에서 마주친 거대한 순록도 구경하느라 어느 정도 시간이 소요됐지만, 그것보다 우리를 더 지체하게 만든 것은 그랜드 캐니언의 뷰포인트였다.
자유여행의 좋은 점은 어디서든 멈출 수 있다는 것이다. 길을 가다가 마음에 드는 장소가 나오면 자리에 멈춰서 원하는 만큼 그곳을 즐기면 된다. 여기도 똑같았다. 마트로 가는 길에 뷰포인트가 보이면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차를 주차하고, 전망대의 바위에 앉았다. 그리고 풍경을 구경했다. 시간은 충분했으니까.
한눈에 안담길 정도로 거대한 협곡, 협곡을 따라 흐르는 구름의 그림자, 풍경을 보며 오가는 적당한 대화들. 대화라는 일상 속에 그랜드 캐니언이라는 풍경이 얹혀졌다.
가끔은 평범하게 각자의 일상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다.
가끔은 색다르게 풍경과 지금의 상황이 얼마나 좋은지 이야기하기도 했다.
눈으로는 풍경을 담으며...
그렇게 충분한 시간을 보내면 다시 센터를 향해 출발했다. 뷰포인트마다 이런 순간들이 이어졌고, 결국 저녁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캠핑장으로 돌아왔다.
저녁
화로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아담한 크기의 화로에 불을 붙였다. 잘게 쪼갠 가지들은 화로 안에서 조금씩 타오르기 시작했고, 가지가 만들어낸 불은 화로를 너머 미약하게나마 주변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그 위에 마트에서 사 온 소시지를 올렸다. 기다림의 시간. 그러나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생각보다 센 화로의 화력에 소시지는 금세 익어갔다. 그와 동시에 테이블 주변으로 고기향이 퍼져갔다.
지금일까? 우리는 소시지가 익을 타이밍에 맞춰 맥주를 꺼냈다. 한 모금, 그리고 한입, 한적한 캠핑장의 풍경을 보며 하루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