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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리텔러 엉겅퀴 May 29. 2024

'남의 돈'으로 시작한 장사

5화 초보 장사꾼 시절 ①



본격적으로 업종을 밝히고 초보 장사꾼 시절을 연재하기 전에 우리 부부가 어떻게 만났는지 최대한 짧게 얘기하고 장사꾼 내용을 이어 갈 게.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는 지금으로부터 17년 전이야. 나는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교 경영학과에 재학 중이었고 남편은 우리가 현재 운영하는 업종의 다른 매장에 직원으로 있었는데, 그 매장에서 인연이 시작됐어. 경영학과 대학생이었던 나는 매장관리 및 마케팅 업무를 도울 겸 여름, 겨울 방학에만 잠깐 일하던 아르바이트생이었고 남편은 엔지니어팀 기술담당 직원이었어. 일터는 어떤 곳이었냐 하면 차량용 내비게이션이나 블랙박스를 판매하고 설치·관리해 주면서 카오디오나 앰프, 우퍼 등을 개조하여 차량에 설치하는 등 차량용 전자제품에 대한 모든 것을 다루는 곳이었지.



요즘과 비교하면 비슷하게 남아 있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정말 생경(生硬)한 얘기를 살짝 해 볼 게. 내비게이션 업그레이드, 요즘은 PC로도 하고 무선인터넷으로도 하지? 하지만 그 당시에는 무조건 PC에서 지도 업데이트를 해야만 했어. 또 순정 카오디오의 퀄리티가 좋지 않은 시절이었기에 사제 카오디오를 별도로 설치하거나 음향 시스템을 개조해서 차 전체가 쿵쿵거리는 작업을 했어. 파나소닉, 파이오니아, 소니 등의 일제 카오디오가 꽤 잘 팔리던 때였고, 불법 음원을 다운로드하여 CD로 굽거나 SD카드에 MP3파일을 넣어 손님들에게 무료 서비스로 제공하는 등, 지금은 다 잊어버린 그런 문화가 존재하던 때였지. (‘소리바다’라는 웹에서 불법 음원 다운로드를 전 국민이 하던 때야.) 그 밖에 차에서 TV시청이 가능하도록 DMB를 달아주고 지상파 안테나를 설치하기도 했어. 지금은 너무나 필수로 있는 차량용 CCTV나 블랙박스는 아예 없던 시절이 그때야.  또, 후진 시에 주차 라인이 나오는 주차용 후방카메라가 획기적으로 다가오던 때였지. 



남편은 서른이 채 되지 않은 나이였지만 이 업종에 관련한 것을 모두 섭렵한 기술자였어. 특히 오디오 작업을 뛰어나게 잘했지. 카오디오 작업이란 게 간단한 설치는 1-2시간 만에 되지만 자체 제작이 들어가면 2-3일이 걸릴 정도로 몰입도 높은 고난도의 일이거든. 스물한두 살 무렵부터 이 일을 배운 남편은 이미 오디오 쪽으로 자신만의 노하우가 있었어. 뿐만 아니라 차량용 전자제품에 대한 AS처리도 잘하고 매장에 방문하는 손님들에게 영업 또한 잘하는 사람이었지. 한마디로 남편은 기술력과 영업력을 동시에 지닌 인재였던 거야. 실제로 남편은 어떠한 업체에서 일하든 몇 개월 만에 자신의 급여를 회사 내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곤 했어.  

나는 한 눈 팔지 않고 묵묵히 본인 일을 하는 남편에게 엄청난 추파를 던졌어. 소위 여우 짓을 한 거야. 성별을 가리지 않고 맡은 바 소임을 묵묵히 잘 해내는 사람을 동경하던 나로서는 남편이 충분히 매력적으로 다가왔어. 우리는 그렇게 ‘남의 가게’에서 1년 좀 넘게 비밀 아닌 비밀 연애를 하다가 결혼 약속을 한 사이도 아니었지만, 함께 장사할 가게부터 차렸어. 그때는 몰랐지. 이 매장에서 15년의 세월을 보낼 줄은. 






일을 쉬고 있던 남편은 당시 거주지였던 부천 관내에 매물로 나온 내비게이션 서비스센터를 눈 여겨봤었고, 본인이 직접 운영을 할 꿈을 키웠어. 쭉 장사를 했던 곳이라 단골손님은 있었지만 매출이 잘 나오는 가게는 아니었는데, 그래서 남편은 더 욕심을 냈던 것 같아. 상권과 위치가 좋은 곳이라 적극적으로 마케팅하고 영업도 하면 분명 잘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본 거지. 





가게 키를 넘겨받으며 남편이 내게 한 말이 아직도 기억나. “자기야, 다 죽어가는 가게를 우리가 살려보자.”그 말을 하던 남편이 왜 그리 박력 있고 멋있어 보이던지 … 아직도 당시 분위기를 생각하면 마음이 설레고 좋아. 근데 정말 딱! 분위기만 좋았고 경험도 지식도 통찰력도 없던 시절이라 돌이키면 이제는 좀 슬퍼. 



장사를 하려면 일단은 돈이 필요했어. 당시 나는 영어 과외를 하며 월 100만 원을 버는 대학생이었고, 남편은 ‘남의 가게’에서 일하는 직장인 엔지니어 신분이었다가 휴직하던 때였어. 서로 모아둔 돈은 없었고. 다 죽어가는 가게였어도 매장을 인수받기 위해서는 권리금을 포함하여 월세 보증금이 필요했는데 그것이 당시 2천만 원이었어. 2천만 원이 얼마나 큰돈인지 몰랐던 나는 단지 ‘그 돈만 있으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할 수 있게 되는구나’라는 생각으로 신용대출을 알아보기 시작해. 대학생이 무슨 신용? 아니 그리고, 연애만 2년 좀 안되게 했지 결혼을 약속한 사이도 아니었는데 당시 남편의 뭘 믿고? 지금 생각하면 정말 내가 철이 없어도 너무 없었지 싶어. 남편이 나쁜 마음을 먹으면 난 한 순간에 신용불량자가 될 수도 있던 상황인데 … 또한 은행 거래가 전혀 없는 대학생 신분으로 어떻게 그 큰돈이 대출 승인이 났는지는 아직도 미스터리 해. 가게를 인수하려면 돈이 필요하다는 당시 남자친구였던 남편에게 너무나 도움이 되고 싶었던 나는, 그 비싼 대학 강의실에 뒷자리에 앉아 열심히 대학생 대출을 알아보지. 며칠에 걸쳐 대출을 알아보던 나는 결국 어느 날, 강의실에서 몰래 빠져나와 직접 저축 은행에 전화를 하고 방문하여 서류를 제출해. 가게 오픈 준비를 하던 2009년 가을, 그렇게 나는 저축은행에서 1200만 원, 대부업에서 800만 원 대출을 받지. 



장사하는 사람들이 얘기하는 것 중 하나, 부부는 절대 같이 일하지 말라고들 하는 거, 그걸 시작한 거야. 현실보다 이상이 앞서는 철부지였던 나는 그저 매일매일 남편 옆에 착 붙어있는 생활이 좋기만 했어. 잘생긴 남편 얼굴 보며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돈도 벌고 손님 없을 때에는 같이 음악도 듣고 영화도 보고 퇴근길에 선술집에서 소주 한잔 하는 그런 생활에 젖어 있었어. 장사는 1도 몰랐어. 하지만 남편의 마음가짐은 달랐지. 왜냐하면 종잣돈으로 시작한 사업이 아닌 것에 대한 현실의 부담을 혼자 느끼기 시작했으니까. 



장사를 시작하고 3개월 정도 됐을 때, 지금도 존재하는 제도인 국가지원 청년사업대출 승인을 받아 진행했어. 총 3,000만 원이었는데, 돈 무서운 줄 모르던 내가 넙죽 대출받은 2,000만 원 중 70%만 상환했어. 청년대출은 이자만 갚으면 되는 데다가 워낙 저리(低利)여서 부담이 없었지. 우리는 ‘남은 은행 대출을 열심히 갚으며 알콩달콩 먹고살자’라는 마음으로 지내게 돼.





하지만 현실은 어땠을까? 장사를 시작하며 꿈꿨던, 희망으로 가득 찼던 장밋빛이었을까? 종잣돈으로 시작해도 될까 말까 하는 것이 사업이야. 여유자금으로 시작해야 비수기에도 흔들림 없이 버틸 수 있는 내공이 길러지는 거야. 하지만 우리는 전혀 그런 걸 몰랐어. 남의 돈으로 시작하는 사업이 얼마나 사람을 처절하게 하는지. 방법은 모르지만 열심히 노력하며 장사하다 보면 언젠가는 성공하리라, 근거 없는 자신감이 대부분이었고 입으로만 열심히, 열심히, 정작 행동은 그렇게 하지 않았어. 일 끝나면 스트레스를 푼다며 술이나 마시고 친구들을 만나 놀기 바빴어. 그러다 보니 다음날 가게 문을 제때 열지 않을 때가 많았고 겨우 열었다가 일찍 들어가기 일쑤였지.



특히, 남편은 나보다 7살이나 많은 데다 자기 이름을 걸고 하는 사업장이기 때문에 ‘대출을 끌어하는 사업’에 대해 더 빨리 위험성을 알았을 거야. 사회생활을 한 내공도 있고 당시에는 나보다 훨씬 현실감이 있었기에 머리로는 분명 ‘이렇게 장사하면 안 된다’라는 것이 있었을 거야. 하지만 불행히도 체득(體得)의 단계는 아니었던 거지. 왜? 남편도 젊었으니까. 치기 어린 젊은 시절이라 통찰력이란 전혀 없었고, ‘인생 한 방, 내게도 언젠가 기회는 온다, 일단 오늘은 고생했고 술이나 마시며 하루 마감하자’ 등의 하루살이 마인드로 살았어. 슬프게도 이 얘기들은 그 당시 내가 남편과 대화하며 가장 많이 들은 것이야. 서른 전후의 젊은 시절 남편은 인생에 절대 쉬운 것이 없다며 진리를 다 아는 것처럼 친구와 이런저런 넋두리를 주고받다 가도 정작 현실에서 노력할 때의 자세는 고생은 회피하고 적당한 노력과 즐거움을 요하는 쪽을 택 했어.



누구에게나 기회는 와. 하지만 그 기회가 어느 날 갑자기 오는 것일까? 아니야. 성공을 위한 방향 설정이 바르게 된 노력을 매일 꾸준히 조금씩 했을 때, 위기가 기회가 되고 귀인(貴人)이 나타나기도 해. 운(運) 좋게 되는 것은 없어. 따지고 보면 운은 당사자가 스스로 만들어 나간 결과물인 거야. 운을 걷어차는 행동을 매일 하는데, 어떻게 그 사람에게 운이 따를 수 있을까? 기회나 운은 매일 조금씩 꾸준히 그것을 갈망하며 올바른 방향성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찾아오는 것이야.



매출이 나오지 않을 때마다 고뇌하고 힘들어하는 남편을 보며 나는 ‘어떻게든 이 사람을 돕겠다’라는 생각이 가득했어. 특히나 경영대학을 졸업한 지 얼마 안 된 나로서는 가방 끈 짧은 남편을 잘 내조하고 싶은 열망이 불타올랐지. 남편에게서 자기 계발을 유도하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으로 CEO들이 다니는 야간대학 편입을 계획하기도 했어. 평강공주가 강림했다고나 할까? ‘시작은 미미했지만 그 끝은 창대 하리라!’ (이런 분위기를 꿈꾸며 ^^;) 하지만 시도조차 하지 않은 남편으로 인해 계획에서 끝나고 말았지.



성실하게 장사해 결국은 성공해내고 마는, 인간극장에나 나올법한 그런 장사꾼 남편을 둔 여자, 장사꾼의 아내로 살면서 나는 그것을 꿈꾸었나 봐. 부부는 평등하고 무엇이든 함께 만들어 나간다는 전제를 앞세워 나는 틈만 나면 이런저런 미래에 대한 계획을 얘기하고 장사에 대한 방향성을 얘기했어.



하지만 우리는 번번이 다투기만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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