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초보 장사꾼 시절 ②
나는 늘 현실감 없는 얘기만 한다는 것이 남편의 의견이었어. 그게 되겠냐, 너는 뭘 알고 하는 소리냐, 장사가 쉬운 줄 아냐, 우리 업종에는 그런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 등 부정적인 말들이 이어져 분위기는 안 좋았지. 이 업종에 대해 별다른 지식이 없던 나는 남편의 부정적인 반응에 기가 죽곤 했어. 돌이켜보면 아마 당시 남편은 혼자 현실적인 것들을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에 내가 제시하는 의견과 방향들이 너무 좋았어도 선뜻 맞장구 쳐주지 못했던 것 같아.
사업이나 장사를 하면서 선순환 이익이 날 수 있는 구조는 단기간에 만들어지는 것들이 아니잖아. 인내심과 정도(正道)의 작은 누적이 오랜 시간 모여 단단한 선순환루트가 만들어지기까지 시간과 돈이 조금씩 투자되어야 하고 그에 따른 시련도 겪어내야 하는데 우리는 이미 그럴 여유가 없었던 거지. 왜? 이미 대출 이자 납부날이 존재했거든. 나는 장사꾼남편의 시각에서 전체의 큰 그림을 보는 안목이 없었어. 남편과 사업을 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 좋아서 뭐든지 잘 풀릴 것이라는 근거 없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어. 대출 이자 납부일이 다가오면 예민해지는 남편과 달리 나는 몇 달 허리띠를 졸라 메면 금방 갚을 수 있는 돈이라고 생각했어.
돈을 관리하는 방식도 우리는 매우 달랐어. 나는 일단 돈이 없으면 안 쓰고 안 입고 허리띠를 확 졸라매서 돈을 모은 후에 필요한 것을 사는 쪽인데, 남편은 그걸 매우 힘들어했어. 그리고 자금을 운용하는 데 있어 대출을 받아서라도 통장 잔고에 여유돈이 있는 걸 원했지. (지금이야 대출하는 것에 대해 치를 떨지만 그 당시에는 남편도 젊었으니 금방 갚을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대출을 쉽게 생각했지 싶어.)
15년 전 사업 초반에는 자금 관리를 내가 맡아서 했는데 갈등을 일으키는 원인 중 하나였어. 예를 들어 볼 게. 비수기고 손님도 매출도 떨어졌어, 월 중반인데 남은 보름을 이 페이스로 장사하다 간 당장 다음 주에 줘야 할 돈을 못 주는 상황이 펼쳐지겠구나 예상이 돼, 그런 판단이 서면 나는 일단 지갑을 닫았어. 20일에 있을 매장공과금 결제, 25일과 28일에 카드 대금, 대출금, 업체 결제금 등이 여유 있게 모일 때까지 안 입고 안 쓰고 살려고 하지. 술도 금주모드로 하고 평소 먹고 싶은 것도 좀 참아. 마트 장보기도 한 주 건너뛰며 최대한 절약하는 궁핍모드로 지내자고 남편을 독려하지. 며칠 그리 지내면 다음주가 행복 해 지는 것을 아니까. 대출금 상환 계획에 있어서도 나는 단기간에 많은 돈을 한꺼번에 갚는 쪽을 선택했어. 남의 돈을 빨리빨리 갚아버릴 생각이었거든. 기간이 길어질수록 전체상환금액이 늘어나 끌려 다니는 꼴이니 36개월이나 48개월 상환이 아닌, 몇 개월이나 1년 불필요한 생활패턴 줄여서 그 안에 빨리 갚아버리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남편은 아니었어. 대출금 상환 계획을 짧게 설정하여 타이트 한 운용을 하는 것에 대해 불같이 화를 냈지. 제정신이 아니라는 거야. 나의 생각과 행동은 아내로서 남편 마음을 편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돈을 더 벌라고 압박하는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어. ‘어차피 그 돈들은 다 내가 벌 텐데, 너는 돈 버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몰라! 그렇게 타이트하게 빚을 갚으면 어떻게 숨 쉬고 사냐?’ 그리고는 분을 이기지 못해 집 밖을 뛰쳐나간 적도 있었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 적도 있어.
처음에는 그저 큰 소리 내는 남편이 무섭기만 했어. 하지만 우리의 상황을 돌이켜보고 남편말을 곱씹다 보니 돈을 혼자 다 버는 것처럼 말하는 남편 태도에 화가 치밀었지. 장사꾼의 아내로서 직접 영업을 뛰고 엔지니어링을 하여 매출을 일으키는 것은 아니지만 가장 가까운 사람이 나의 존재를 무시한다는 생각에 분노가 차올랐어. 그래서 ‘돈을 혼자 다 벌어? 그래, 혼자 얼마나 잘 버나 보자.’ 이런 감정으로 며칠 냉랭하게 지내. 그런데 여기서 또 다른 문제는 우리 부부의 무드를 함께 일하는 직원들도 눈치를 챈다는 거였어. (아… 정말 다시 생각해도 끔찍하다. 당시 직원들은 우리를 뭘로 봤을까 싶어 ^^;) 그 당시 결혼식 전이었고 20대 중반이었던 나의 감정상태는 너무나 쉽게 잘 드러났거든.
분노로 며칠 들끓고 나면 이게 서러운 감정으로 바뀌어. 남편은 이미 화냈던 감정도 다 없어진 것 같은데 나 혼자 여전히 서러워. ‘우리 둘이 함께 밥 먹고 함께 일하고 함께 하루를 마감할 수 있는 것만으로 행복할 수 없는 걸까? 돈이 없어 힘들어도 마음을 모아 버티고 힘들 때일수록 서로 격려할 수 없는 걸까? 자금 압박을 더 느끼라고 몰아세운 것이 아니라 나 역시 버틸 것이니 하루빨리 빚을 털어버리자는 뜻이었는데, 궁핍해도 그와 함께 지내는 것에 감사하며 지낼 수 있는데, 그는 그게 안 되는 걸까? 위기의 순간에 나를 보며 힘내고 견딜 수는 없는 걸까?’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밤새 머릿속을 복잡하게 했지.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센스 없고 눈치 없는 남편은 이런 날도 어김없이 저녁식사에 소주 곁들여 하루 회포를 풀고 온 집안이 떠나갈 듯 드르렁 코를 골며 잤지만. (나는 15년 간 단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아무리 크게 싸웠어도 꼭 저녁 식사와 술상은 차렸어. 오히려 남편이 밥 안 먹는다고 밥상을 걷어찬 적은 많아. 하하.)
장사꾼 아내의 노고는 남편이 알아줘야 그 의미가 있어. 하지만 남편 역시 초보 장사꾼이었기에 안팎으로 모르던 것이 많았던 시절이야. 장사꾼으로서 남편은 매출이 잘 나오면 오늘 하루 잘 살아낸 것 같고 성취감이 들겠지만 아내에게 그 보다 더 큰 보상은 남편의 인정이야. 매출이 잘 나오는 상황에 남편의 격려와 인정이 따라온다면 천국이 따로 없는 인생인 거지. “일 도우랴 살림하랴 애써줘서 고마워, 같이 일하는 데 아침저녁으로 밥상 차려서 고마워, 좀 더 자고 싶었을 텐데 다리미질하느라 고생했어.” 당시 나는 남편에게서 이런 말들을 기대하며 하루하루를 살았어. 하지만 매일 기대는 무너졌지. 저녁에는 술 마시느라, 아침에는 술 깨느라 버거운 남편의 생활패턴에 점차 희망이 사라졌거든.
또, 남편은 당장에 돈이 없어도 담배는 사야 하고 술은 마셔야 했어. 0원을 벌었든 100만 원을 벌었든 일단 하루 고생했으니 스트레스를 풀어야 한다면서. ‘일도 내가 할 거고 돈도 내가 벌건데, 저녁 먹으면서 술 한잔 하는 게 그렇게 잘못된 거냐? 술 갖고 와 빨리.’ 남편이 이렇게 말하면 무섭기도 하고 싸우기도 지쳐 술상을 차려. 음식을 만들면서 내 무덤을 파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다가도 한편으로는 ‘술 한잔 같이 기울이며 그의 기분을 좋게 한 다음에 돈 아껴 써 보자고, 술 좀 줄이자고 얘기해 봐야 지.’라고 생각해.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고쳐 먹어. 그리고 최대한 생글생글 웃으며 함께 술 한잔 하지. 내가 그런 태도로 남편 얘기를 들어주다 보면 그는 기분이 좋아져. 그런 그를 보면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져. 기분 좋아진 내가 더 배실 배실 웃으면 남편은 그렇게 나를 또 예뻐해. 그렇게 또… 이성의 끈을 놓는 거지. (하하) 그런데, 이성의 끈을 놓았을 이때에 가장 큰 문제는 돈을 펑펑 쓰는 행동이었어. 홈쇼핑방송을 보며 안 사도 될 물건을 살 때도 있었고, 집 앞 대형마트에 가서 충동구매를 하기도 했어.
아 … 지금 다시 생각해 봐도 정말 왜 그랬나 싶어. 자식이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결혼식 준비를 하기도 전이었기에 둘이 정신 차리고 돈을 모아야 했는데 말이야. 나 역시 평소에는 똑똑한 척 계획적인 척 해도 남편의 흐트러진 모습 앞에서는 함께 흐트러지던 대책 없는 아내였어.
혹시나, 함께 장사하는 부부가 이 글을 본다면 꼭 얘기해주고 싶어. 어떻게 하면 덜 싸우고 장사하며 지낼 수 있을까? 서로 인정하고 격려하는 마음을 늘 한편에 두고 일을 하면 돼. 부부에게 통상적으로 적용되는 말 같지만 장사꾼부부에게 있어서는 조금 다른 점이 있어. 성별에 관계없이 사장인 사람이 먼저 배우자를 인정하고 격려해야 한다는 것이지. 그것도 아주 많이. 장사꾼으로 자존감이 가장 높아지고 성공에 가까워진 것 같은 느낌이 충만할 때는 매출이 많이 나왔을 때야. 언제나 그렇거든. 바로 그 시점에, 배우자를 칭찬하고 인정하고 고마워하면 돼. ‘역시 난 너무 잘났어, 역시 나는 될 녀석이었어’라는 교만함에 빠지기보다 겸손해야 해. 이 상황을 조금씩 누적해 두면, 힘든 시기가 와도 배우자가 고통을 덜어줄 수 있어.
나처럼 남편이 사장인 경우로 얘기를 이어가면, 평소 차곡차곡 쌓아 두었던 남편의 인정이 아내를 살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는 거야. 가뜩이나 돈 버느라 힘든 남편이 내가 하는 뒷바라지를 알고 있구나, 심지어 고마워하고 있구나, 이런 생각에 자존감이 우뚝 서게 되지. 때문에 자금 압박에 시달리더라도, 현실이 시궁창에 곤두박질쳐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남편을 독려해. 심지어 없던 돈을 만들어 올 수도 있지 않을까? 내 남편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말이야. 전화위복(轉禍爲福), 위기가 기회가 된다는 말은 이러한 시련을 부부가 함께 극복할 때 진정한 의미가 있어.
‘장사꾼의 아내로 산다는 것’을 연재하며 알게 됐지만 나는 이러한 과정을 거치지 못했어. 그래서 더 힘든 장사꾼부부로 살았지.
당시에 나는 장사가 잘 될 때는 괜찮았지만, 매출이 안 나와 자금압박에 시달리는 장사꾼 남편을 보며 ‘그러게, 누가 그렇게 돈을 펑펑 쓰래? 돈 혼자 다 번다며, 술 마시고 다닐 때는 좋았지? 아끼자고 그렇게 얘기할 때는 귓등으로도 안 듣더니, 돈 없을 때마다 왜 나한테 신경질이야!’라고 화를 냈어.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면서 나는 비교적 이른 시기, 이른 나이에 돈이 없으면 어떤 지옥에서 허우적거리는지 체득을 하게 돼. 20대 초반에 남편을 만나 물질적인 풍요를 바라보고 이 남자를 선택하여 장사를 시작한 건 아니었지만 돈 걱정에 매번 날카로운 말들을 주고받다 보니 결국 사랑도 돈이 있어야 하는구나 처절하게 알게 되지. 현실이 아무리 바닥인 와중에도 부부가 서로 격려하고 버티다 보면 다른 해결책이 보였을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그러지 못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