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불어도
초보장사꾼들이 장사를 시작하고 짧게는 2년, 길게는 3-4년 차가 될 때까지 고민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영업시간이야. (2년 안에 장사를 접는 상황은 아예 다루지 않을 게.) 대박 날 거라는 기대에 부풀어 섣불리 정한 최초의 영업시간을 고수하는 자영업자는 드물어. 몇 달 장사를 해보니 나 죽겠구나 싶은 생각에 조정이 들어가거든. 장사를 막 시작 한 15년 전에는 우리도 마찬가지였어.
아침 9시 오픈, 저녁 9시 마감으로 정한 최초 규정에 맞추려 아침 8시 40분까지 출근하고 저녁 9시가 넘어서 퇴근했지. 그랬더니 정말 집에서는 저녁 먹으며 술 한잔 마시고 잠만 자게 되는 상황이었어. 몇 개월 지내다 보니 이건 못 할 짓이다 싶어 퇴근 시간을 한 시간 앞당기고, 또 몇 개월 지나 두 시간 앞당기고 그랬어. 이렇게 조정하고 나서는 잘 지켰을까? 아니야.
지난번에 얘기한 것처럼 남편이야 빚 생각으로 괴로웠을지 언정 나는 매일매일 데이트를 하는 기분으로 출근을 했어. 그래서 손님이 없는 날은 일찍 퇴근하고 싶어 했고 영화도 보러 가고 싶어 했어. 벚꽃을 보러 가고도 싶어 했고, 드라이브 겸 여행을 가고 싶어도 했어. 하지만 우리는 장사를 하잖아, 매일 가게를 열어야 하잖아. 그렇기에 내가 체념하는 듯 기운 없어하면 남편은 또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원하는 바를 들어주려고 애썼어. 장사가 좀 된 날은 장사가 됐으니 가게 문을 일찍 닫고, 하루 종일 손님이 한 두 명 오면 손님이 없다고 가게 문을 일찍 닫았지. 속 된 말로 지들 꼴리는 대로 장사를 했어.
초보장사꾼의 근성을 판단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영업시간이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불어도, 집에 불이 나거나 부모님이 돌아가신 게 아니라면, 자식이 아파서 응급실에 가더라도 장사꾼은 영업시간 전에 가게 문을 열어야 하고 영업시간이 지나 문을 닫아야 해. 그게 진리야. 하지만 많은 초보장사꾼들은 가장 기본인 이것을 제대로 지키지 못해. 왜 그럴까? 보는 사람이 없어서? 그것도 맞는 얘기지만 정확히 따지자면, 적당히 현실과, 나 자신과 타협하려는 마음에게 스스로가 지는 상황이라고 보면 돼. 영업시간을 반드시 지키려는 자세는 스스로의 뇌에게도 각성을 일으켜. 안일 해 질 수 있는 자신을 스스로 붙들어 매는 의지력은 초보 장사꾼일수록 얼마나 영업시간을 고수하려 스스로 발악하는가에 달려있어. 이게 바로 근성이 되고 베테랑 장사꾼으로 성장하는 씨앗이 돼.
우리는 흔히, 시간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 사람을 일컬어 기본이 되어 있지 않다며 친하게 지내는 것을 꺼려해. 다른 장점이 많아 겉핥기식으로 친하더라도 시간 개념이 없는 사람과는 깊은 관계를 맺기 힘들어. 혹은 시간 약속 안 지키는 것을 그 사람만의 ‘개성’이라고 받아들이며 이해할 때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기도 하고. 하물며 장사는 매출이 걸린 문제인데, 고객과의 약속인 영업시간을 고수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장사가 잘 되길 바랄까? 고객이 이해해 줄까? ‘저 사장 스타일이 원래 저러니까, 내가 맞춰서 잘 방문해 보지 뭐.’ 이렇게 오는 고객은 절대 없어. 고객은 절대 진리로 대접을 원해. 대접받으면서 내 돈 쓰려하지 시간 개념 없는 사장 스타일에 맞추어 돈을 싸 들고 오는 고객은 없어. 얄팍한 상술에 속아 몇 번 찾아올지라도 기본이 갖추어지지 않은 사장이라면, 고객은 결국 외면하지. 이건 전 업종에게 해당되는 얘기야. 그래서 어떤 업종을 처음 장사하기 시작했다면, 반드시 3년 내에 흔들리지 않는 영업시간을 고수해야 해. 이건 망하지 않는 기본 중의 기본 원칙이야. 음 … 그런데 2020년 이후 요즘 시대는 흐름이 빨라져서 2년 내에 확립하는 것이 맞다고 판단이 되더라고. 영업시간 확립은 빠르면 빠를수록, 과도기가 없을수록 좋아.
휴무일을 지정하는 것도 절대 가볍게 이루어져서는 안 돼. 차라리 고민하는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절대 변경하지 않겠다는 전제하에 숙고가 필요하지. 1인 가게일수록 체력적인 요소를 고려 안 할 수 없으니 최대한 이랬다 저랬다 하지 않는 선에서 규율을 정해야 해.
음… 주변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상황을 말해보자면(내가 볼 땐 시기적으로 한 3-4년 전부터 인 것 같은데) 전국적으로 개인카페나 탕후루 가게, 이색 분식점 및 디저트매장이 많이 생겼어. 그런데, 장사가 잘 되는 곳을 보면 손님이 많던 적던 늘 문이 열려 있더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은 곳들은 가게 앞에 뭘 그렇게 써 붙여 놓고 문 닫은 날이 많은 지 모르겠어. 그게 아니라면 영업시간이 지났음에도 아직 오픈 전이라 든 가, 또 그게 아니라면 아직 문 닫을 시간이 안 됐는데 영업이 끝난 상황이라 든 가 하는 때가 많아. 써 붙인 것도 대충 이면지에 매직으로 휘갈겨서 뭐라고 쓴 건지 알아볼 수 없어. 자세히 들여다보면 휴무의 이유 역시 각양각색이야. 제일 많이 보는 건 ‘개인 사정으로 쉽니다’인데, 글쎄… 개인사정? 장사를 쉽게 보는 생각 짧은 사람으로 밖에 안 봐, 나는. 장사꾼한테 개인 사정이 어디 있어, 앞뒤 잴 것 없이 가게가 우선이지. 이런 각오 없이는 10년, 20년 장사할 수 없고 이런 각오로 일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몇 년 장사하고 접는 경우가 많아.
남편 역시 장사를 시작하고 만 3년 정도가 될 때까지는 들쭉날쭉 가게를 열었어. 아마 혼자 장사를 했다면 3년 안에 망하지 않았을까 싶어. 장사를 안 한 날이 훨씬 더 많았을 테니까. 장사꾼의 아내로 내가 한 일은 영업시간 내에 가게문을 열고 손님에게 ‘어서 오세요, 찾으시는 거 있으세요?’ 말하며 반겨주는 것이었어. 비록 오늘 매출은 0원일지라도 말이야. 사장인 남편이 없어서 원하는 설치를 못하거나 제품 AS가 바로 되지 않더라도 다음에 반드시 다시 오도록 철저하게 응대했지. 꼭 오늘 매출을 못 올리더라도 다음번 방문에서는 매출로 이어지리라, 다짐하며. 장사꾼의 아내로 살면 남편 대신 가게를 지키는 일이 아주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 돼. 아마 나처럼 장사꾼의 아내로 사는 사람이면 다들 공감할 거야.
지금이야 조금의 인사이트가 생겼지만 당시 스물넷, 스물다섯, 스물여섯 살이었던 나는 밤 8시까지 혼자 울면서 가게를 지켰던 적도 있어. 나보다 3-40살이나 많은 고객 차에서 제품 설명을 해 주다가 몹쓸 소리를 들은 적도 있고, 남편이 부재일 때 사장 나오라며 상스럽게 욕을 하는 고객의 컴플레인을 온몸으로 받은 적도 있어. 이제는 이런 상황들을 대처하는 것이 대수롭지 않지만 당시는 대학을 갓 졸업한 20대 중반의 미혼 여성이었기에 세상이 무섭고 도망가고 싶을 때가 많았어.
형편없는 영업시간으로 운영을 하는 와중에도 남편과 거래를 하기 시작한 손님들은 꾸준히 방문하여 단골이 되고 우리를 성장하게 했어. 운 좋게 장사가 잘 되고 직원들이 생기자(직원들을 채용하고부터는 영업시간을 잘 지켰어.) 남편은 슬슬 ‘사장님 놀이’를 하기 시작했어. 술자리가 잦아지고 외부 활동이 많아진 거지. 그래서 전날 과음으로 일어나지 못하는 날에는 나 혼자 출근할 때도 많았어. 그런 날 남편은 점심때가 다 되어 숙취 가득한 얼굴로 출근해 2-3시간 만에 밀린 업무를 처리하곤 혼자 집에 들어가거나 아니면 나까지 강제 퇴근 시켜 집에서 뒹굴고 싶어 했지.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이 시기에 남편은 이 사람 저 사람을 만나면서 근성 있게 매장을 열고 닫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배우더라고. 사실 나는 여기서 많이 아쉬워. 내가 만약 좀 더 현명한 아내였다면 이러한 사실들을 남편이 더 빨리 깨우치지 않았을까, 하고 말이야. 당시 20대 중반이었던 나는 승승장구하는 시기에 들떠 있는 남편의 마음을 붙들어주지는 못하고 심통만 부렸어. 혼인신고도 하기 전이라 남편 없이 매장을 혼자 지키는 상황에 대해 분노하기만 했어. 역시 나에게 지고지순(至高至順)한 현모양처는 가당 치도 않아.
직원들을 거느리며 쭉 장사가 잘 됐으면 좋았을 걸, 현실은 녹록지 않았어. 남편이 사장님 놀이를 중단하고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급여 지급이 막막한 통장 상태였어. 우리는 직원들에게 정말 미안하다고 머리를 조아렸고 마지막 임금을 주며 내보냈어. 그때 그 직원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지 모르겠지만 여전히 미안해. 못나고 부족한 사장 밑에서 고생만 하고, 그 보다 더 못나고 부족한 사장 마누라 밑에서 눈치만 보게 해서 말이야. 그렇게 직원들을 내보내고 우리는 다시 의기투합해서 장사에 매달렸어. 이때에 남편은 마음가짐이 사뭇 달랐지. 영업시간과 휴무를 칼 같이 지켰고 과음을 했어도 기어갈지 언정 반드시 제시간에 출근을 했어. 점심시간에 매장 한 구석에서 웅크린 채 졸더라도 절대 일찍 문 닫는 일은 없었고 말이야.
이때를 기점으로 남편은 현재까지 철저히 영업시간을 고수해. 이후 2세가 태어나고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유치원 각종 행사에 참여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있었지만, 남편은 가게를 지켰지.
장사를 하면서 손님에게 믿음을 주는 것은 노력과 시간이 아주 많이 필요해. 하지만 그에 비해서 형성된 신뢰를 저버리는 행위는 너무나도 가볍고 쉽지. 장사꾼이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마인드 중 하나가 이거야. 이걸 모르는 장사꾼은 없을 테지만 차이는 어디서 오는 걸까? 바로 내가 이것을 체득(體得)하고 있는지, 머리로만 알고 있는지 에서 비롯 돼. 체득을 위해서는 ‘성찰(省察)’을 해야 하는데, 장사를 하다가 고비가 오거나 침체기를 겪는다면 우선순위를 재정렬하며 반드시 내면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거야. 여기서 주의할 점은 성찰한다면서 이 사람 저 사람 만나 술을 마시고 신세 한탄이나 하며 돈을 쓰는 행동은 지양해야 한다는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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