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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리텔러 엉겅퀴 Jun 07. 2024

사장님 놀이

9화 시건방 떨던 시절

지난 화에서 잠깐 언급한 ‘사장님 놀이’를 얘기하려고 해. 돌이켜 보면 정말 코웃음만 나.




가랑비에 옷 젖듯 대출금은 스멀스멀 늘어났지만 장사는 눈에 띄게 잘 됐어. 2009년에 10평짜리 가게에서 둘이 시작한 사업 2년 만에 직원을 두고 본격적인 ‘사장님 놀이’를 했던 때가 그때야. 매출을 높이기 위한 전략회의를 하고, 관련 업체들과 미팅을 통해 AS계약을 따오고, 바쁘게 움직이는 만큼 통장 잔고가 늘어가고, 직원들이 하나 둘 고용되니 한껏 의기양양 해질만한 시기지.



사장님 놀이로 흔히 예상할 수 있는 미팅을 가장한 술자리, 사업 구상을 위한 술자리, 능력치(?)를 자랑할 만한 술자리 등등으로 남편은 주변 사람들과 만남을 가졌고 사회인 야구 생활도 열심히 했어. (남편은 사회인야구를 오래 해왔어.)



 이때는 당연히 아이도 없고 결혼식을 올리기 전이어서 남편의 외부 활동에 내가 거의 동행했거든. 심지어는 ‘예쁜 언니’들이 나오는 미러 볼 많은 룸 있지? 그런 곳도 따라갔어. 나는 남편 옆에 앉아 있었지만 다른 관계자분들 옆에는 ‘예쁜 언니’들이 한 명씩 앉아 있었고 일 얘기를 하다가 야한 농담도 주고받고 뭐, 그런 시절이었지. 남편과 술을 마시던 다른 사장님들은 옆에 앉은 ‘예쁜 언니’를 조물딱거리며 ‘슬라임놀이’를 하다 가도 맞은편 나를 보며 “오늘은 제수씨가 왔으니까 점잖게 좀 술 마시자!” 이딴 개소리도 하고 그랬어. (하하)


한 번은 남자들이 다 술에 취하고 노랫소리로 시끄러운 틈을 타 어떤 ‘예쁜 언니’가 나에게 오더니 말을 걸었어. ‘몇 살이야? 어디 살아? 늦은 시간까지 애인 따라다니기 힘들지 않아?’ 라며 … 어두운 조명에 멀리 떨어져 앉아 있을 때에는 몰랐는데 목소리를 들으려 얼굴을 마주하니 향수냄새에 진한 속눈썹과 버건디 색 입술이 확 나를 사로잡았어.  그 ‘예쁜 언니’는 당시 대학을 갓 졸업한 나를 무척이나 부러워했어. 엄청 사랑하고 믿음이 있는 게 아니라면 남녀가 이런 곳을 손 꼭 잡고 오기 힘든데, 대단하다고 했어.


아마 그 당시 남편은 결혼하기 전이기도 하니 안도감을 심어주기 위한 요량으로, ‘오빠에게 여자는 너뿐이다’ 이런 느낌을 주기 위해 당당하게 룸살롱에까지 나를 데리고 갔던 것 같아.(하하) 나는 도대체 그런 술자리에 왜 매번 순순히 따라갔을까? 나도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




사장님 놀이에 술자리 이슈 말고도 취미 겸 하는 운동 얘기가 빠질 수 없어. 골프가 생각날 테지만 남편은 운동이라면 야구밖에 할 줄 몰라. 유년시절에 야구선수 생활을 잠깐 했던 남편은 성인이 되어서도 사회인야구팀에 소속되어 야구 인맥을 유지하고 있었어. 워낙 타고난 운동 신경이 좋았던 남편은 일반인 사이에서 기량 뽐내고 인기를 끌 만한 수준이었지.


“비즈니스 네트워크를 형성하다 보면 그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만 만나는 ‘갇힌 인맥’을 형성한다.” 당시 남편이 나에게 했던 말이야. 맞는 말이긴 해. 사업하고 장사하다 보면 취미생활 할 시간이 어디 있어. 밥도 제 때 못 먹고 일에 매달려도 부족한 게 사업인데, 매일 업무 관련 미팅만 하고 머리를 그쪽으로만 쓰다 보면 다방면의 교양과 상식들을 쌓을 수 없다 랄까? 뭐, ‘그런 의도’였다고 봐.


남편은 그 시기에 자신의 ‘그 의도’대로 다방면의 인맥 형성을 위해서 사업만큼 야구를 열심히 했어. 다행스러웠던 건 남편이 장비 빨 세우는 타입이 아니었다는 거야. ‘진정한 도인(道人)의 도복은 낡아 있을 때 빛이 난다’라는 말을 하며. (하하 … 이런 얘기도 다 남편이 했던 말이야.) 야구 역시 골프만큼 장비에 돈이 많이 드는 스포츠인데, 천만다행으로 남편은 실력에 비해 장비 욕심이 없는 사람이었지.


하지만 문제는 야구를 위해 가게를 비우는 시간이 자꾸 늘어난다는 거였어. 나 역시 야구를 좋아했기에 남편이 경기를 하러 갈 때면 언제든 어디든 따라다녔어. 새벽야구, 야간야구 할 것 없이 따라나섰고 참관하길 좋아했기에 남편이 근무시간에 야구를 하러 가면 쫓아가곤 했지. 그런 날은 매장에 직원들만 남아있었고 말이야. 그런데 몇 번 그리 하다 보니 남편은 나라도 매장에 남아 직원들을 관리해야 할 것 같다며 날 버리고(?) 혼자 야구팀에 나가기 시작했어.




그 이후에는 어땠을지 살짝 짐작이 가지 않아? 5-6화에서도 얘기했지만 우리 가게는 아내인 내가 남편 대신 직접적인 매출을 일으키는 데에 한계가 있는 업종이야. 직원들이 있긴 해도 고난도의 카오디오 작업은 남편이 부재여서 불가능할 때가 생겼고, 설치 업무를 하다 가도 작업 실수가 이루어지면 수습이 안 되어 우왕좌왕했어. 총체적 난국인 거지. 구매를 결심한 손님의 제품을 그 자리에서 설치하거나, 고장 난 제품을 가지고 방문 한 손님의 요구를 그 자리에서 들어줘야 매출로 이어지는데 정작 최고 엔지니어인 남편이 부재중이니 손님들을 놓칠 때가 많아졌지.


설상가상으로 남편이 일하는 모습을 보며 심도 있는 엔지니어링을 더 배워야 하는 직원들의 사기도 하락했어. 기본적인 엔지니어링은 숙지가 되었으니 사장이 없으면 알아서 들 잘할 거라며 너무 안일하게 직원들을 믿어버린 남편의 기대는, 좋게 얘기해서 기대지 방치나 다름없었어. 남편이 부재인 가게에서 매출이 잘 나오지 않을 때마다 나는 초조했고 멘붕이 왔어. 정신줄 부여잡고 최선을 다해 이것저것 물건은 팔았지만 정작 설치를 당일에 해 줄 수 없을 때가 많아져 이런 상황이 길게 가지는 못 했지.


우리가 하는 업종은 과거나 지금이나 젊은 연령대의 손님이 방문하는 매장은 아냐. 최소 40대 중후반부터 많게는 80대 어르신 손님까지 방문하는 곳인데, 그들 눈에는 남편과 나의 행동이나 생각들이 다 보이지 않겠어? 남편과 나는 당시에 우리의 실력이 좋아서 장사를, 영업을 잘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생각이 얼마나 오만했는가 부끄러워. 우리가 잘 났던 게 아니라, 손님들이 우리에게 적선(積善)을 한 것인데 말이야. 젊은 부부가 열심히 장사하는 모습이 예쁘고 기특해서 뭐 하나라도 더 사주고 손님 한 명이라도 더 데려오고 그렇게 했던 것인데, 돈 좀 벌었다고 사장이라는 작자가 매장에 늘 없고 어쩌다 한 번 만나면 술에 취해 있으니, 아마 당시 단골손님들 눈에는 남편과 나의 모습이 손바닥 안을 보듯 다 보였을 거야.


손님이 줄어드니 당연히 매출이 줄고, 급여 지급에 난항까지 겪을 위기를 겪다 보니(8화 참조) 남편은 겸손해졌어. 수습을 위해 눈물을 흘리며 직원들을 내보내고 독한 각오로 다시 장사에 몰두했지. 뒷바라지해준 나에게 감사해하며 결혼계획도 세우고, 묵묵히 자신을 지켜봐 주는 사람들을 떠올리며 착해졌어.


인간이 어리석은 이유는 돈이 없을 땐 비굴하게 살고 돈이 많아지면 건방지게 산다는 거야. 돈이 없으면 자신감이 떨어져 저(低) 자세 모드로 성실하게 살다가 돈이 많아지면 그걸 아주 티 내고 싶어서 고개를 쳐들고 목소리가 커지고 행동이 커져. 그러며 시건방을 떨며 살지. 자신이 뭐라도 되는 것처럼.


장사꾼 남편의 1차 사장님 놀이는 이렇게, 초보장사꾼 시절에 아주 잠깐 존재했어. 그런데 말이야, 내가 ‘1차’라 했으니 2차 사장님 놀이도 있었다고 예상할 수 있지? (세계대전도 아닌데 참 어이가 없다. 하하.) 1차 사장님 놀이를 강제 종료하며 성찰하지 않은 남편은 몇 년 후 다시 2차 사장님 놀이를 하기 시작해, 그 이야기는 한참 뒤에 이어할 게.




사진출처

© paul_1865,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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