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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리텔러 엉겅퀴 Jun 10. 2024

자영업자에게 매일 마시는 술이란...

10화 자기 관리가 이렇게 안된다고?!

지난 화에서 소개한 아주 시건방진 ‘사장님 놀이’를 끝내고 우리는 결혼 준비와 동시에 장사에 다시 몰두했어. 하지만 이 시기에 남편은 원형탈모에 시달리는 등 스트레스가 극심했지. 손톱 크기만 했던 원형 탈모는 점점 커져서 파워에이드 뚜껑만 해졌고, 신경성으로 오는 허리 통증으로 붙이는 파스를 달고 살았어. 스트레스의 가장 큰 원인은 대출금이 늘어난 재정 수준에 있었어. 갚고 빌리는 것을 반복하면서 스멀스멀 늘어나던 대출금이 사장님 놀이에 빠져 있을 때는 뵈지 않았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매달 압박에 시달려야 할 만큼의 수준이 되었던 거지.  





설상가상으로 이 시기에 남편은 치핵 수술도 했어. 어느 날 볼 일 보러 화장실에 들어간 남편이 울부짖는 소리에 놀라 함께 병원에 갔는데, 에고 … 응급 수술을 해야 할 수준이었던 거야. 진단 결과 원인은 매일 마시는 술에 있었어. 



남편은 원래 술을 잘 마시던 체질이 아니었지만 장사를 시작한 2009년도부터는 365일 중에 360일 음주를 했거든. 장사가 잘 된 날은 기분 좋아 마시고, 장사가 안 된 날은 스트레스받는다며 마시고 했으니까. 사장님 놀이를 하면서 폭음하던 기간, 분기별로 있는 비수기에 낮술로 알코올에 젖는 기간 등등… 장사를 시작하고 4년 가까이 남편의 간, 대장, 항문은 혹사를 당했던 거지. 그렇게 치핵 수술로 인해 1박 2일 입원하고 고생을 했지만, 남편은 일주일 만에 실밥을 제거하고 바로 술을 또 마셨어.  



가게 오픈 이래 일요일 하루만 쉬며 매일 장사를 하던 우리는 치핵 수술 때문에 장사 시작 후 처음으로 3일 정도 연속해서 쉬었는데, 이때 남편은 쉬어도 맘 편히 쉴 수 없었다고 해. 누워 있을 처지가 아니라 가게 문 열고 돈 벌어야 하는데 그럴 수 없으니 저절로 인상만 써졌다고 해. 그래서 뭘 했다? 실밥 풀자마자 장사 후에는 또 술을 마셨다! 자신은 맘 편히 아플 수도 없는 자영업자라며 신세 한탄을 섞어서… 이 상황을 당시의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어. 분위기는 어땠을까? 바로 싸움각이었지. 



나는 ‘내 남편이 이렇게 자제력이 없는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에 정말 마음고생을 심하게 했어. 처음으로 이 남자와 그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때야.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거든. 하지만 나는 나의 이성을 외면하고, 감성에 젖은 연민을 내세워 ‘아파하는 남편을 잘 간호해서 회복하면 또 으쌰으쌰 열심히 살아야지’ 그렇게 결론을 지었지.



당시에는 나 없이 장사할 남편을 생각하면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어. 나아가서는, 자기 관리 안 되는 남편을 둔 것이 내 인생의 숙제처럼 여겨졌어.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숙제 말이야. 솔직히 말하면 억하심정에 버텨보겠다는 마음가짐 더 맞을 것 같아. 당시는 나도 20대 중반으로 어렸으니까 그게 더 자연스러운 심리였겠지. 남편과 갈등이 생길 때마다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 계속 그 따위로 살아봐, 결국은 늙어서 후회할 거야, 나는 끝끝내 버텨서 후회하는 너를 보고 말리라, 나에게 감사하는 너를 보고 말리라.’ 이런 생각을 하며 살았어.  



치핵 수술은 장사 시작 3년 동안 마셔 댄 술에 비해 참 약소한 이슈였어. 이때라도 경각심을 갖고 건강 관리를 하면 참 좋았겠지만 남편은 전혀 그럴 의사가 없었어. 당시 30대 초반이었고 고작 치핵 수술 정도로는 ‘성공=건강’의 의미를 알지 못했어. 



치핵 수술 이슈가 지나고 한참 후에 우리는 결혼식을 올렸어. 그리고 신혼여행을 다녀오기 위해 장사 시작 4년 차에 처음으로 일주일을 쉬었지. 이때까지 우리는 월세를 살았는데 돈은 없지만 신혼여행은 또 포기할 수가 없더라. 전셋집도 없고 사업하며 늘어난 빚만 있는 처지였지만 남들 하는 건 다 하고 싶은 마음에, 결혼해서 이만큼 잘 산다는 걸 내세우고 싶은 마음에 무리한 신혼여행을 계획했지. 정말 우리는 빛 좋은 개살구 같은 커플이었어. 주제도 분수도 모르고 말이야.



인생에는 공짜가 없잖아, 돈 없는 인간들이 ‘미래의 신용’을 땡겨 다녀온 자본주의적 신혼여행의 대가는 혹독했고 자금 압박은 최고 정점에 달했지. 결국 남편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또 다른 선택을 하게 돼. ‘투 잡’이라는. 



남편의 선택에 불을 지핀 것은 임신 사실을 알게 된 것이었어. 매일 10시간씩 장사를 하지만 예전에 비해 돈이 잘 벌리지 않고 빚은 늘어만 가니 이 상태로 8개월 후에 아기가 태어나면 정말 큰일이겠구나, 생각했나 봐 남편은. 아이가 크고 나중에 남편과 한 얘기인데, 이 시기에 남편은 새 생명이 태어나는 축복과 같은 상황을 온전히 누릴 수 없었다고 해. 2세가 찾아온 건 너무 기쁘지만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에 하루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고 해. 그래서 임신한 와이프에게 잘해주는 것도 더 더욱이나 힘들었었다고, 변명 같은 핑계를 하더라고. ^^



그렇게 투 잡을 하며 남편은 8개월 간 밤잠을 4시간 정도만 자는 생활을 했는데, 충분한 휴식을 못하니 체력이 점점 안 좋아졌어. 그래서 낮에 장사하다 한가해지면 가게 뒤쪽에서 웅크린 채 쪽잠을 자는 생활을 했는데 잠이 부족하니 식욕까지 감소해 점점 살이 빠졌지. 또, 남편 말로는 점점 불러오는 내 배를 보면서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오히려 밤에는 잠이 잘 안 왔다고 해. 그래서 남편은 이때에도 매일 술을 마셨어. 이유는 잠을 자야 한다며. 하하. 임산부인 나는 속이 썩어 들어갔겠지? 남편은 새벽 3-4시쯤 업무가 끝나고 귀가하면 맥주 500미리 1-2캔을 쭉 마시고 그대로 자더라, 기절한 듯이. 100만 원 남짓의 돈을 더 벌어보겠다고 한 것에 대한 결과는 건강 악화였어. 





이런 남편을 뒷받침하기 위해 나는 장사할 때 거의 쉬지 못했어. 임신 초기에는 그렇게 잠이 쏟아지는데 남편이 구석에서 쪽잠을 자고 있으니 잠깐이라도 눈을 붙일 겨를이 없었어. 홀몸이 아니었지만 쪼그려 앉아 허드렛일을 많이 했고 심지어 가게 방문 차량에 대한 발레도 이 시기엔 내가 집중적으로 했어. 남편이 늘 잠에 취해, 술에 취해 있었으니 말이야. 배가 많이 불러오자 손님들은 임산부가 발레파킹하는 것에 대해 부담스러워했지만 뭐 어쩌겠어, 임산부여도 나는 장사꾼의 아내이고 장사꾼 남편이 조금이라도 쉬기 위해 나는 최선을 다할 뿐이었어. 출산 예정 일주일 전까지 남산만 한 배를 끌어안고 손님 차를 주차하는데, 핸들이 배에 걸리는 일도 비일비재했지.



또, 장사꾼의 아내로서 남편이 잘 자는 게 힘들다면 잘 먹이기라도 해야 하겠다는 강박에 사로잡혔던 나는 식사 준비에 엄청 열을 올렸어. 돈도 아낄 겸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점심도시락을 싸고, 퇴근 후에도 남편 저녁상에 혼신을 쏟고 말이야. 



출산을 기점으로 남편은 다시 온전한 장사꾼으로 돌아갔는데, 이때를 상기해 보면 나는 출산 후유증과 신생아 돌보는데 정신없었고 남편은 2세까지 나온 마당에 가게를 살려야 한다는 절실함에 우왕좌왕하는 시기였어. 우리는 각자의 역할을 다하며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또 다른 고군분투를 시작해. 이후의 스토리는 다음화에서 이어가도록 하고 이번화에서 진짜 중요한 얘기만 마저 쓸 게.








아까 자기 관리 안 되는 남편을 둔 것을 인생의 숙제라고 생각하며 억하심정으로 버텼다고 했잖아? 15년 전 어린 내가 당시의 성찰로 깨달은 바는 현실 거부로 인한 현실 증오, 그리고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하는 억하심정, 이런 것들이 더 많았어. 그리고 장사 시작 10년 즈음이 되어 가면서부터는 ‘아, 인생에는 이런 고비가 있구나, 고비는 끝없이 계속되는 거였구나’라고 조금씩 받아들여지기 시작했지. 그런데 거기서 세월이 더 흘러 장사 15년 차에 접어든 작년부터는 또 다른 생각이 들어. ‘자제력이 없는 사람, 자기 관리 안 되는 사람’을 남편으로 둔 것은 인생의 고비가 아니라, 내가 바로 그러한 사람이었기에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결과였다고 말이야. 내 삶의 모든 것은 결국 나로 인한 것인 거야.



글이라 이 정도로 표현하지만 우리는 다투기도 엄청 다퉜어. 나는 본인의 안 좋은 습관을 자각하지 않고 개선하지 않는 남편이 이해가 되지 않아서 몰아붙일 때가 많았고, 남편은 따박따박 옳은 말만 하는 나에게 할 말이 없을 때마다 경제력을 내세워 '돈은 다 내가 벌어!'라며 큰 소리를 쳤지. 한마디로 서로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만 하며 싸웠던 거야. 부부라는 이름 아래 한 이불을 덮고 살지만 같은 방향으로 미래를 바라보지 못해 안타깝게도 서로를 공격하며 살았지.



그래도 언제나 결론은 ‘오빠 내가 미안해, 내가 더 잘할 게. 돈 버느라 힘들지?’였어. 뒷바라지만 하는 장사꾼의 아내는 부부싸움을 하다 보면 돈 앞에서 할 말이 없어져. 돈 버느라 힘들어서 그렇다는데. 뭐 어쩌겠어. 처자식 먹여 살리려 아등바등하는 장사꾼의 고뇌를 아내가 알아주지 않으면 그 누가 알아주겠냐고. 그렇지?



장사꾼에게 있어 스트레스의 원인은 결국 돈, 매출이야. 하지만 이러한 장사꾼 남편의 고뇌를 아내가 결코 모르지 않아. 장사꾼 남편은 자신이 매출을 걱정하는 것만큼 아내가 남편의 건강을 걱정한다는 것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해. 때로는 아내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매일 습관처럼 마시던 술도 하루나 이틀 참아 보면 좋겠어. 또, 시간 내서 운동하기 힘들면 퇴근 후 단 10분이라도 좋으니 아내 손 꼭 잡고 동네 산책이라도 하고 말이야.

나는 지난날을 이렇게 살지 못했지만 과거의 내 상황을 현재 겪고 있는 장사꾼 부부가 이 글을 본다면 내 얘기들을 바탕으로 성찰하는 시간을 가져보면 좋겠어. 서로가 어떤 것을 바라보며 인생을 살고 있는지 들어주는 자세로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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