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토리텔러 엉겅퀴 Jun 03. 2024

빌렸다가 갚다가

7화 초보 장사꾼 시절 ③

부부성향이 다른 것도 갈등의 원인이었지. 나는 계획적인 성격인데 남편은 즉흥적인 성격이었거든. 연애할 때에는 서로의 다른 점에 이끌렸지만 현실로 살고 보니 서로 다른 성격에 있어 이해심이 상당히 요구되는 것에 각자 스트레스를 받았지. 남편은 통장에 돈이 없어도 내가 뭘 갖고 싶어 하거나 먹고 싶어 하는 것 같으면 일단 소비를 했어. ‘돈이야 또 벌면 되지.’라고 말하면서. 



연애할 때에는 이게 참, 좋았는데 같이 장사를 하면서는 고마운 일로 느껴지지 않았어. 당장은 날 위한 것일지 몰라도 카드 결제대금일이 다가오면 결국은 싸움의 원인이 될 것이 뻔했거든.‘돈이야 또 벌면 되지.’라고 말하는 남편이 처음에는 강해 보이고 책임감 있어 보여 멋지다고 생각했지만 장사가 절대 쉬운 게 아니잖아. 돈 버는 건 정말 힘든 거잖아. 내뱉은 말처럼 쉽게 돈이 벌리지 않게 되면 그로 인한 스트레스를 나에게 풀었고 그러면 퇴근을 하고 나서도 우리 둘 사이의 감정은 냉랭할 뿐이었어. 이런 상황이 자꾸 반복되면서 나는 마음의 상처도 많이 받았고 인생의 회의감을 느끼기 시작했지. 계획적이고 분석하길 좋아하는 성격의 나는 요목조목 남편에게 우리 상황의 개선점을 얘기해. 그러면 남편은 ‘다 너랑 먹고살기 위함이다, 그런데 정작 너는 나를 궁지로 몰고 간다’라는 말을 하며 화를 낼 때도 있었고, ‘걱정 마라 돈은 또 내가 벌어 올 게’ 라며 나를 다독일 때도 있었어.



15년 전 장사를 시작해 5년 정도 자리를 잡기까지, 매출이 일주일 이상 나지 않아 재정 상태에 빨간 불이 들어오면 우리는 정말 하루하루를 버티는 수준이었어. 그런 시기에 남편이 자주 하던 말 중에 하나가 있어. ‘돈은 쓰면 또 풀린다.’ 참, 어이가 없어. 이런 말을 떼부자가 했으면 진리였을 텐데 빚으로 사업을 시작한 초보장사꾼이 하는 말이었으니 얼마나 한심한 소리야 정말. 



떼부자가 쓰는 돈이야 경제 흐름에 영향을 주는 만큼 액수가 큰돈이니 그런 말이 적용되는 것이고, 우리 같은 애송이들이 쓰는 돈은 먼지 같은 수준인데 그 돈을 쓴 들 다시 주머니에 들어올 것 같으냐, 우리는 당장에 그 돈도 아쉬운 형편인데 누가 누굴 따라 하냐, 돈이 없으면 일단 안 써야지 굳이 대출까지 해서 돈을 쓰느냐, 그러니까 돈이 없지!



 나는 이렇게 팩폭 하는 말들을 연사 해 남편을 자극했어. (참, 옳은 말만 따박따박한다, 정 없이^^)

이성과 논리로 똘똘 뭉친 나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다툼의 상황이 정리될 때면 남편에게 고개를 숙였어. ‘나보다 나이도 훨씬 많고 인생을 많이 살았으니 뭔가 있겠지’라는 생각과 함께 착한 아내, 순종적인 아내가 되고 싶어서. 물론 남편은 ‘착하고 순종적’이라는 수식어가 나와는 절대 어울리지 않는다고 할 테지만 의견을 대립하다 가도 언제나 꼬리를 내리는 건 나였어. 남편이 사장님이니까. 결국은 사장님 맘대로 되는 거니까.



부부인데, 전혀 상반된 경제 가치관으로 살아가니 돈이 모일 수 있었을까? 함께 의기투합해도 모일까 말까 하는 것이 돈인데, 특히나 자본주의 체제에서 돈을 떠나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 그렇다고 빡빡하게 운용 계획을 세운 내가 잘했다는 건 아냐. 나 역시 현실감 떨어지는 돈 관리로 남편을 맥 빠지게 하고 너무 내몰았던 것이 분명히 있어. 남편은 너무 안일했고, 나는 너무 융통성이 없었다고나 할까?



순이익 500만 원으로 목표를 잡고 시작한 가게에서 자리를 잡는 4년 간은 이렇게 돈에 있어서 순탄치 못 했어. 내가 돈 관리를 했지만 대출금 갚는데 급급했기에 실질적으로 모을 수 없었지. 돈을 못 모은다며 남편은 그 시기 즈음 경제권을 가져갔고 나는 자연스럽게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났어. 결혼식을 올리고 한 달 뒤 임신을 했거든. 그때가 2013년이야. 장사 시작 4년 동안 다투고 고생하며 직원들도 생기고, 시스템을 갖춘 어엿한 매장의 모습이 됐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겉만 번지르르한 유리의 성 같았어. 어쨌든 나는 2세를 위해 태교에 전념하기 시작했고 장사를 하면서 돈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그제야 깨닫던 시기였지. 이걸 장사 시작하기 전에 알았어야 했는데 말이야.



경제권을 장사꾼남편에게 일임하고 전업주부로 들어서면서 돈에 관한 것은 일체 신경을 쓰지 않았어. 당시에는 쉬는 날 없이 장사를 했으니 남편이 알아서 잘하겠거니 했거든. 그런데 빚은 계속 늘어나는 상황이 이어졌더라고. 내가 나중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1000만 원을 빌려서 500만 원을 갚고 나면 다시 700만 원을 빌리고, 300만 원을 갚고 나면 다시 400만 원을 빌리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었어. 돈이 아예 없는 상황에서 대출을 받았던 것도 아니었어. 며칠 술 안 마시고 정신 차려서 일주일 장사 열심히 하면 급한 불은 끌 수 있거늘 왜 대출을 늘렸냐고 이유를 물어보면 남편은 이렇게 말했어. 통장에 잔고가 넉넉하게 있지 않으면 장사하는데 마음이 불안해서 막상 손님이 왔을 때 입이 안 떨어지고 영업이 잘 되지 않는다고.



장사꾼남편이 이런 말을 하면 장사꾼아내는 무슨 생각을 할 것 같아? 진심으로 나는 물어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장사 10년 이상 한 다른 장사꾼들에게 물어보고 싶어. 다들 우리 남편과 같은 생각인지 말이야. 그 당시 초보장사꾼 아내로서 나는 남편을 정말 이해할 수 없었어. 발등에 불이 떨어졌으면 이 악물고 돈 벌 궁리를 해야지, 3-400만 원 부족하다며 대금 결제 일주일을 앞두고 돈부터 빌릴 생각을 하는 모습이 한심해 보였어. 남편은 초보사장 딱지를 뗄 무렵까지 대출을 일부 갚고 다시 대출을 받는 루트를 몇 번 반복했어.



남편은 아직까지도 세상에 장사하면서 빚 안진 사람 없다고 얘기해.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요식업의 대가, 기업 대표들 다 빚이 있다며 빚도 능력이라고 얘기해. 맞아. 맞는 말인데, 장사꾼의 아내는 그래도 빚 많이 질 수 있는 능력자 남편 말고 살짝 부족해도 빚 없는 능력자 남편과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 장사꾼의 아내는 다 그래.

이전 06화 장사하는 게 쉬운 줄 알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