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아이가 태어나면 괴리감을 느끼는 남자와 여자
부모로서 장사꾼 부부의 삶은 어떨까? 결혼하여 함께 장사를 하다 자녀가 생기면 ‘독박 돈 벌기’와 ‘독박 육아’를 해야 하는 상황이야. 결혼 계획이 있는 초보 장사꾼 부부라면 이러한 부분을 염두 해 가족 계획을 세워야 해. 작은 아기에서 어엿한 성인으로 자라도록 헌신을 다하는 것은 자영업을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거든. 매출을 올리는 것이 쉬울까? 자식을 키우는 것이 쉬울까? 인성 문제로 한 순간에 몰락하는 유명인들을 보면 답은 너무나도 명확 해. 사회에 큰 도움이 되지는 못 할지 언정 물의를 빚는 사람을 키워내고 싶은 부모는 없어.
하지만 초보 장사꾼일 때에는 이러한 통찰력이 없지. 함께 장사를 하다가 혼자 일하게 되어 힘든 점, 자식 혼자 낳은 것 아닌데 아이로 인해 자유를 구속(?) 당해 억울한 점 등의 마찰이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시기야. 세상 모든 아빠들이 돈을 버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고 한다면, 세상 모든 엄마들은 자식을 먹이고 키우는 것에 혈안이 되어 있다고 할 수 있어. 따라서 아빠와 엄마가 서로의 역할을 제대로 알고 자식을 올바르게 키우며 세상을 살아간다면 경제적으로 조금 넉넉하지 않거나 시련을 겪는 시기가 와도 합심하여 잘 헤쳐 나갈 수 있는 것이고.
우리 부부는 어땠을까? 2009년부터 함께 장사를 시작 해 2013년에 결혼식을 올리고 2014년에 첫 아이를 낳았거든. 부모가 되기 전 5년 간 장사를 할 때에는 함께 일을 하며 지지고 볶고 하다 가도 저녁에 술 한잔 기울이며 회포를 풀었어.
하지만 첫 아이가 태어난 그 날부터 모든 것이 달라졌지. 난생 처음 겪는 진통 후유증과 젖몸살, 밤낮으로 수유를 해야 하는 상황에 1분 1초가 마음이 편할 수 없는 산모가 된 나는 혼자 돈을 벌러 나가는 남편이 안쓰럽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어. ‘혼자 장사하다 보면 이런 저런 것이 힘들 텐데, 점심은 제 때 거르지 않고 잘 먹으려나?’ 생각하면서도 독박 육아를 해야 하는 상황에 ‘현실적인 엄마의 자세’로 정신을 가다듬을 수 밖에 없었어. ‘내 밥이나 잘 챙겨먹고, 아이 안 아프게 잘 키우자’라고.
24시간 독박 육아를 하는 나와는 다르게 12시간 독박 돈 벌기를 하는 남편은 아이를 낳은 후 백일이 지나도 일년이 지나도 퇴근 후 일과가 달라지지 않았어. 달라진 게 있다면 주량 정도 일거야.
2009년부터 장사하며 매일 소주 1병씩 마시던 남편의 주량은 2병으로 늘었고 퇴근 후 TV 앞에 작은 교자상을 펴고 산모 미역국에 소주를 마시거나 친정 엄마가 사다 주신 슈크림 소보로 빵에 맥주를 마셨지. 출산 후 백일이 지나고 몸이 회복 된 나는 독박 육아에 독박 살림까지 도맡게 돼. 남편은 그때에도 퇴근 후에 대충 손발만 닦으면 알집 매트 위에 교자상을 폈어. 그럼 나는 딱 시간 맞춰 차려 놓은 안주상을 셋팅 했고. 무엇 때문에 하루가 그렇게 힘들었는지 남편은 매일 인상을 잔뜩 쓴 얼굴을 하고 있었어. 아장 아장 걸어 다니는 아이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소파에 기대어 리모콘만 돌리며.
5년 간 함께 장사를 했기에 업무 시스템을 아는 나로서는 남편이 혼자 일을 하는 모습이 집에 있는 시간에도 훤하게 그려졌어. 그래서 한가한 낮 시간에 전화 해 아이 보느라 힘들다고 하소연 하다 가도 손님이 오면 전화를 툭 끊어버리는 남편에게 서운하다 투정 한 번 할 수 없었어. 그렇게 전화가 끊기면 다시 전화를 해 주겠지, 기다린 적도 많고. 하지만 남편은 ‘엄마가 된 아내, 세상에 태어난 딸래미’의 소소한 일상을 별로 궁금해하지 않았어. 어떻게 알았냐고? 퇴근 후 전화로 못다한 얘기를 이어 나가면 ‘일하는 사람한테 전화해서 징징거리지 말아라.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얘기이고 퇴근 후에 만나서 얘기해도 되는 것들 아니냐’라고 하는 모습을 보며 깨달은 거지.
함께 장사를 할 때에는 어떤 상황에서 어떤 생각을 하는지 서로 너무 잘 알던 부부지만 출산 이후 낮 시간을 떨어져 지내면서 모르는 것이 많아졌어. 가장 큰 차이점은 그나마 나는 남편의 고충을 어느정도 알고 있는 상태지만, 남편은 나의 고충이 무엇인지 전혀 감도 못 잡는 상황이었다는 거야. 그 괴리감은 장사꾼 부부에게 있어 큰 갈등을 초래했고.
특히나 가부장적이고 옛날 사람 마인드가 강한 남편은 당시에 ‘자식 교육’에 대한 비전이나 마인드가 전혀 없었어. 그가 입 버릇처럼 하던 말이 있어. ‘애들도 다 지 밥 그릇은 갖고 태어난다’ 나는 이 말이 어찌나 듣기 싫었던지. 또한 얼마나 교양 없고 무식한 소리라고 여겼는지.
남편의 말이 전적으로 틀렸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가 주장하는 내용이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적용되는 것은 아니잖아. 고대 신화에서 나오는 얘기처럼 세상에 버려진 아이를 온갖 산짐승이 돌보아주고 그런 현실이 아니니까.
최소한, 챙겨주는 밥상 앞에 앉아 스스로 숟가락질이라도 하고 또래 문화가 형성될 법한 시기에 해도 되는 말인데, 젖 먹이일 때에도 걸음마를 막 뗐을 때에도 남편은 자녀 교육관을 그리 밝혔어. 그것은 나로 하여금 '함께 장사하며 고민을 할 때와는 달리 자녀 교육은 상의 없이 나 혼자 알아서 해야겠네' 라고 마음 먹은 계기가 돼.
남편 입장에서는 자식을 낳기 전이나 후나 똑같이 장사를 하는 상황이었던 거야. 단지 챙겨주는 마누라가 없으니 밥 시간을 잘 맞추지 못하거나 손님이 몰릴 때 혼자 업무 처리를 해야 한다는 고충이 있었을 거고. 집에서 독박 육아를 하고 있을 마누라의 모습을 상상도 못하지. 왜? 엄마도 엄마가 처음인 것처럼,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니까. 당장 눈앞의 자식을 돌봐야 하는 나는 틈틈이 육아 서적을 보고 관련 기사를 찾아보며 배워 나갔지만 남편은 그런 상황이 아니니 육아를 하기 위한 부모 교육에 대해 전혀 필요성을 못 느꼈지.
그저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까, 어떤 아이템으로 갈아타야 인생이 빵 터질까, 남편은 그런 생각을 하며 지냈어.
두 살 터울로 둘째를 출산하며 엄마로서 기본적인 스킬이 본격적으로 늘어간 나였지만 남편은 여전히 아빠의 자질이 부족한 사람이었어. 나아진 것이 있다면 매출이 늘어 빚을 좀 갚고 외식도 좀 할 수 있게 된 상황이었지. 가장으로서 열심히 벌긴 했지만 장사꾼 남편은 돈만 있으면 내 가족을 행복하게 할 수 있을 거란 부족한 통찰력을 갖고 살았어. 둘째 임신 때가 본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하던 시기인데, 잦은 외박, 월 100만원이 넘는 택시비와 대리비, 과도한 음주로 인해 쉬는 날 조차 집에서 내내 자는 상황 등 돈 버는 것 이외에 가장으로서 존경할 만한 점이 현격히 부족했지.
첫 아이만 키웠을 때까지는 참았는데, 아이가 둘이 되도록 달라지지 않는 남편을 보며 분노가 차오르는 나였어. 특히나 매일 술을 마시며 건강관리를 하지 않는 것도 힘들었지만, 아이를 낳기 전에도 낳은 후에도 사업하다 보면 그럴 수 있다며 룸살롱을 드나들고 어느 날 ‘뭔 가에 꽂히는 날’이면 안마시술소를 가는 버릇이 있던 사람이라는 것이 내가 가장 분노를 누적하는 요인이었어. 그리고 이러한 문제점의 가장 큰 방점은, ‘남자가 살다 보면, 술 마시다 보면, 사업하다 보면 그럴 수 있다’라고 얘기하며 큰 소리 치는 순간이었지. 무릎 꿇고 싹싹 빌어도 모자랄 판에, 술이 깨고 나서도 그렇게 큰 소리 치는 것을 15년 넘게 참은 나 역시 참 미련하단 생각이 들어.
요즘은 어떠냐고? 15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남편도 나이를 먹고 체력이 떨어 과거에 비하면 횟수는 10분의 1로 줄었지만 여전히 1년에 3-4번은 술을 마시고 연락 두절이 돼. 다음날 새벽이 되어서야 슬그머니 들어오는 남편은 종일 죽상을 하고 있다가 저녁이 되면 부부관계로 기분을 풀어주거나 혹은 주말에 과도한 지출을 하여 나를 웃게 하려 애쓰지. 본인 딴에는 나름 ‘감성 치료, 금융치료’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15년의 세월 동안 같은 상황이 수 백 번 반복 되면서 남은 세월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 … 성찰하게 되는 요즘이야. 사람 쉽게 변하지 않으니까.
남매가 입학 하기 전, 나는 장사꾼 남편이 돈을 벌기만 하면 무슨 짓을 하던 믿어주고 지지하며 뒷바라지 하던 순종적인 아내는 아니 었어. 잘잘못을 따지며 엄청 몰아붙였지. 하지만 나로서는 남편이 혼자 돈을 버니 집안 살림과 육아는 오롯이 내 몫이라고 생각하며 그저 최선을 다해 살수 밖에 없었어.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 술 김에 돈 많이 써서 미안하다 그날 바로 사과하지 않는 남편에게 하루 이틀 잔소리 하는 정도로 화를 풀어내고 차곡차곡 분노의 감정을 쌓아두며 살았지.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두살 터울 남매를 오롯이 혼자 키우는 것은 순수 생활비를 몇 백만원 씩 줘도 참 힘든 일이거든. 세상에는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 더 많으니까. 특히나 자식교육에 있어서는 더 그렇지. 한마디로 어린 자식들을 키우다 보면 남편의 뻘짓에 대해 분노하고 감정 쏟을 시간이 없다는 거야.
이제는 훌쩍 커버린 남매를 보며 최근에는 아이들의 사고관에 대해 깊은 고민이 생겼어. 15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바가 없는 아빠의 생활 습관이 과연 자녀 교육에 있어서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칠 건인지 나 혼자 끙끙 앓고 있지. 자식을 낳기 전에는 남편도 나도 똑같이 살던 생활패턴이지만 엄마가 되면서 부터 이 악물고 자기계발을 하며 올바른 인생을 살려고 노력 한 나와 달리 남편은 여전히 술을 마시고 건강관리를 하지 않는 것이 서로의 감정을 멀어지게 했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사람을 사랑하더라구. 한때 그 사랑을 다른 곳으로 향하게끔 하려고 시선을 달리 해보기도 했지만 결론은 같았어. '아, 나는 그래도 이 사람을 사랑하는 구나'
장사꾼 부부로 내 가게를 하며 살다가 자식을 낳고 키우는 15년의 시간은 분명 '독박 육아'와 '독박 돈 벌기'에 해당되는 고난의 시절이었어. 누구나 처음에 장사를 시작할 때에는 이런 부분까지 예상하지를 못 해. 그저 장사가 잘 되는 것만 상상하지. 하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살다보면 통찰력을 발휘해야 하는 시련의 시간을 반드시 만나. 다들 겪어봐서 알겠지만.
장사를 하든 안 하든, 부부에게는 사랑이 밑받침 되어야 하잖아. 도대체 부부에게 있어 사랑이란 뭘까?
프랑스 소설가 생텍쥐페리는 사랑을 이렇게 말했어.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 마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같은 방향을 보는 것이다.”라고. 초보 장사꾼 시절을 회상하는 다음화부터 풀어나가겠지만 나 역시 15년 전에는 이 진리를 몰라서 '남편이 나만 바라 봐 주었으면'하는 마음으로 살았어. 이 사람이 도대체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 알려고 하지 않고 그저 나만 바라봐 달라고 떼를 썼지.
반드시 어떤이에게는 도움이 될 거울과 같은 이번 에피소드를 여기서 줄일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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