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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리텔러 엉겅퀴 May 20. 2024

시작과 루틴

2화 

누구에게나 시작은 중요하지? 직업을 떠나 모두에게 그렇듯 장사꾼에게도 하루의 시작, 일주일의 시작, 한 달의 시작, 일 년의 시작이 중요해. 특히나 하루의 시작, 일주일의 시작을 놓고 보면 더 예민한 것 같아. 



직장인과 달리 ‘시작’이라는 시기적 초반의 산뜻함과 자신감을 장사꾼은 온전히 희망차게만 받아들일 수 없어. 혹시나 자영업에 대한 경험이 전무한 누군가가 장사를 하려는 꿈을 꾸며 이 글을 본다면 기대하는 희망만큼 예기치 못한 시련이 반드시, 그리고 너무나도 많이 있을 것이라는 예상을 하길 바라.



10년 이상 장사를 꾸준하게 한 사람은 내 말에 공감할 거야. 강산이 변한다는 세월 동안 얼마나 우여곡절이 많았는지. 어떤 사람이든 망하기 위해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은 없어. 다들 장밋빛 인생을 꿈꾸며 시작해. ‘이제 내 가게를 차렸으니 좋은 일만 있겠지’ 하고 말야. 특히나 직장 생활을 잠깐이라도 하다가 자영업 세계에 발을 들인 사람일수록 더욱 그런 희망을 갖지. 하지만 장사 첫 날부터 피부로 확 느낄 거야. 사장이 되니 상사 눈치 보지 않아 좋은 것 빼고 나머지는 모두 불편하다는 것을. 왜 그럴까? 바로, ‘있던 것’들이 없어졌기 때문이야. ‘있던 것’은 직장을 다니며 제약이라고 느꼈던 업무상 지침이나 규약 및 질서와 체계인데 이제 막 사업을 시작한 자영업자에게는 그러한 점이 전혀 없기 때문이지.



사소한 한가지부터 얘기하자면, 직장 다닐 때는 화장실 변기를 청소할 일이 없을지 몰라도(업무적으로 초반에 청소부터 시키는 사장 밑에서 일을 했던가, 직원들끼리 돌아가며 업무상으로 청소하는 것 말고) 장사를 하며 어느정도 자리를 잡을 때까지는 반드시 장사꾼 스스로가 변기를 붙잡고 청소를 해야 해. 장사가 안정권에 접어들더라도 화장실 청소를 중요하게 여겨 혹은 직원들에게 본보기가 되기 위해 종종 자발적으로 변기를 닦는 경우를 제외하면 장사꾼은 좋든 싫은 ‘내 가게’의 청결을 위해 변기를 닦아야 하지.



바로 이 포인트에서 비롯 되어 장사꾼의 아내는 변기를 닦아. 집에 한 두개의 화장실이 있어서 한 두개의 변기를 닦는 건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일이지만, 장사꾼의 아내는 집에 있는 변기를 제외하고도 남편 가게의 변기를 닦아야만 하는 사람이야. 장사꾼의 아내로 살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지.








요즘에 어떤 사장이 가게 화장실 변기를 아내에게 닦게 하고 또 그런 시설의 가게가 얼마나 있냐, 하며 공감 못 할지 몰라. 맞아, 시대상이 과거와 달라져 자상하고 좋은 남편을 강요하기에 변기 청소를 자처하는 남편들이 많지만 그건 집에서나 그런 것일 뿐이야. 남편이 사장이라면 가게에서는 사장님으로서 더 중요한 일처리를 해야 하기에 ‘변기를 닦는 일’은 아내의 일로 자연스럽게 넘어가지. 


요즘은 가게의 시설 상태 또한 좋아져서 웬만한 상가에 입점하는 가게라면 개인 점포에서 화장실 청소를 하는 일은 없어. 층마다 가게 몇 곳이 화장실을 공용으로 쓰고 건물 내에 청소 이모님이 따로 있지. 점포 내에 개별 화장실이 있는 경우에도 규모가 크다면 청소업체를 따로 쓰는 것이 일반적이야. 하지만 이런 건 정말 요즘, 그러니까 최근 몇 년 내의 상황이야. 이렇게 말하면 내가 정-말 옛날사람 같지만 10년 전만 해도 백화점이나 마트, 그리고 일정 규모 이상의 건물이나 매장이 아니라면 개인 점포의 화장실은 열악했거든. 그 옛날부터 지금까지 부부가 창업을 해서 둘이서만 꾸려 나가거나 직원이 한 두 명만 있는 경우, 혹은 최근 수년 내에 상가 입점 한 상황이 아니라면 변기를 부여잡고 박박 닦으며 청소를 해 대는 것은 장사꾼의 아내가 해야 할 일이야.


변기를 닦는 것은 예시이자 허드렛일을 대표하는 것이기도 해. 장사꾼의 아내로 살면 집에서 하던 온갖 궂은 일을 가게에서도 똑같이 한다고 보면 돼. 꼭 요식업이 아니더라도 음식물을 포함한 쓰레기를 버리거나 분리수거를 하는 일, 손님용 냉장고 청소, 겨울전에 해야 하는 난로 청소, 정수기에 고인 커피 찌꺼기 처리, 식사 전후에 준비와 뒷 처리 등등 장사꾼의 아내가 모두 해야 하는 일이야. 장사꾼의 아내는 사람들에게 ‘사모님’으로 불릴 수 있지만 정작 현실은 청소 이모님인 경우가 많지.




서두에 언급한 하루의 시작, 일주일의 시작에 대한 중요성을 얘기 해 볼 게. 장사꾼은 매출에 예민해. 그럴 수밖에 없지 바로 생계로 이어지니까. 장사꾼의 아내로 살면 남편을 포함한 가족들로부터 ‘내조나 잘 하면 되는’ 그런 역할을 종종 강요당하게 되는데 그것과 관련하여 직접 겪어 온 일상이야. 



장사꾼에게 하루의 시작이나 일주일의 시작은 더욱 예민한 때야. 예를 들어, 1일인데 월요일이야, 그럼 그날은 초 예민모드가 발동된다 보면 돼. 장사꾼의 아내는 그 분위기를 따라야 하고 남편의 시각에 맞춰 매출에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해. 15년 넘게 장사를 하며 이것과 관련하여 생긴 징크스도 여럿 있어. 운동선수만 징크스가 있는 것이 아냐. 장사꾼은 운동선수만큼 징크스를 신경 쓰지.  그리고 그 징크스를 이용하여 스스로를 괴롭히고 아내도 괴롭혀.



월요일인데 매출이 그저 그런 수준이었다가 화요일에 오른 경우를 예를 들어 설명해 볼 게. 월요일에 매출이 별로이면 남편의 경우 반드시 다음날 옷 코디를 바꿔서 출근을 해. 그렇게 했는데 화요일에 매출이 잘 나왔어, 그럼 어떻게 되는 줄 알아?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 주말 장사때까지 일주일 내내 그 옷만 입어. 셔츠도 바지도 심지어 벨트까지, 겉옷도 신발도 가방도 모두 똑같이. 속옷과 양말만 갈아 신고 출근하는 꼴이 되는 거지. 혹여나 벗어 놓은 옷을 지저분하다는 이유로 내가 세탁기에 넣었다간 불호령이 떨어져. 매출 떨어지면 어떡할거냐고 바로 꾸중을 듣지.



만약, 옷이 부득이하게 세탁기에 들어가버려서 다른 옷을 입고 나가게 된 경우, 상승세였던 매출이 떨어지기라도 하면 나는 진짜 정말 진심으로 대역죄인이 돼. 내조를 못 한 꼴이 되고 말야. 그래서,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에게 꼭 오늘 입은 옷을 세탁해도 되는지 아니면, 다음날 바로 입을 수 있게 손질만 해 놔야 하는지 확인하는 절차가 반드시 필요해. 이건 혹여나 우리 부부가 냉전기간일때에도 예외는 없어. 늘 공유가 되어야 해. 싸워서 감정이 안 좋더라도 매출로 이어지는 상황에 대해 신경쓰지 않는 건 결국 내 얼굴에 침 뱉기가 되니까.





눈이 번쩍 뜨이는 예시를 또 들어볼 게. 결혼생활 15년이 넘다 보니 잠자리 이슈가 자주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쩌다 아이들이 학교 가고 없는 오전에 관계를 한 날이었어. 글쎄 무엇 때문에 아침 댓바람부터 내가 예뻐보였는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는 없지만 그날은 어쨌든 오전에 ‘부부 이벤트’가 있었다고 보면 돼. 그리고 나서 출근을 했는데, 매출이 평소보다 2-3배가 뛰었다면, 그랬다면! 좀 남사스럽지만 이것 마저 그 주의 루틴이 된다고 보면 돼. 하하. 다음 날 같은 시간대에 어김없이 몸과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하지. 장사꾼의 아내는 결코 집에서 조차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니까. 어때? 진짜 흥미롭지? 모든 장사꾼의 아내가 나처럼 이런 일상을 사는 것은 아닐테지만, 어쨌든 장사꾼에게 있어 시작과 루틴은 정말 중요해. 생계가 달린 문제고 또 정말 말 그대로 ‘사장 하기 나름’의 결과속에서 인생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지.



직장인이나 일반인들은 전혀 이해 할 수 없는, 때로는 비상식적인 태도(그래서 가끔 또라이 소리도 듣지만)로 일상을 마주해야 하는 장사꾼의 삶과 그 옆에서 남편만을 바라보며 사는 장사꾼의 아내의 삶을 다음 화에서 이어 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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