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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리텔러 엉겅퀴 May 24. 2024

징크스

3화 자영업자의 전투적 신념

사장님에게 있어 징크스는 운동선수의 그것만큼 상징성을 띤다 할 수 있어. 지난 화에서 잠깐 언급한 징크스에 대한 분량이 아쉬워 본격적으로 이번 글에서 다루려고 해.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니 징크스 Jinx는 불운(不運)을 뜻하는 말이었어. ‘오늘 왠지 느낌이 싸한 게 매출(실적) 느낌이 좋지 않다.’라고 하면서 놓친 것이 없나 부랴부랴 생각하는 바로 그것, 그것이 징크스가 돼. 그리고 그와 반대로 쓰이는 말이 루틴 routine인데, 일상에서 긍정적으로 반복되는 일련의 습관이나 행동을 말해.



우리 부부의 예를 들자면, 출근길 신호가 딱딱 맞는 날이면 손님 역시 끊기지 않고 딱딱 잘 오는 그런 상황이 있어. (업종 특성상 우리 매장은 손님이 한꺼번에 몰리는 것보다 끊기지 않고 한 팀, 두 팀 천천히 오는 것이 제일 베스트거든.)





징크스를 따지는 성격에 대해 말하자면 호탕하고 긍정적이라기보다는 치밀한 계획으로 미래에 닥쳐올 수 있는 불안에 대해 대비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어. 평소 작은 일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성격이거나 신앙심이 엄청 강하거나 타고난 성향이 초긍정일 경우 징크스 따위는 모르고 사는 사람일 수도 있지만 이런 사람도 장사를 오래 하다 보면 저절로 징크스를 갖게 되더라. 장사를 잘해보려고 이렇게 저렇게 연구하고 성찰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반복되는 현상이 보여 스스로 징크스를 만드는 거지.



남편의 징크스 두 가지만 얘기해 볼 게. 일단 ‘월요일 아침에는 절대 성질을 내지 않는다’라는 것이 있어. 이렇게 쓰고 보니 우리 남편이 허구한 날 성질을 부리는 사람 같은데, 그건 절대 아니야. 주말 지나 월요일 아침은 늘 뭔가 바쁘고 어수선하잖아? 그만큼 더 노력을 한다는 얘기지.



아이들이 어렸을 때에는 월요일 새벽 6시부터 소란스러워져 푹 쉬지 못하는 때가 종종 있었어. 어린아이들은 자고 일어난 후 텐션이 제일 강한데, 장난감으로 매우 요란하게 놀거나 새벽부터 자기들끼리 몸으로 노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해. 매장에서 매일 12시간 가까이 일하는 남편은 컨디션을 위해 30분이라도 더 자야 하는 소중한 아침시간이지만 엄마인 내가 감당 못할 수준으로 아이들 텐션이 올라가면 자던 남편이 벌떡 일어나 외쳤어. “조용히 좀 해 라!!!” 그러면 아이들은 일순간 조용해져. 하지만 남편은 버럭 하는 순간 잠이 달아나고 ‘아이들한테 월요일부터 왜 버럭 했을까, 좀 더 참을 걸,’ 하며 금세 후회해. 아이들은 잠깐 혼나도 뒤돌아서면 잊고 다시 텐션이 올라가, 참 다행스럽게도. 또 그날이 월요일인지, 토요일인지, 무슨 요일인지도 모르는 나이였기도 하고. 



 여하튼 그런 날은 남편과 나만 ‘성질’의 여운을 느끼며 출근 준비를 하고 장사를 시작하는데 돌아보면 이런 날은 반드시 매출이 좋지 않았어. 아무래도 남편의 감정이 철저하게 반영된 상황이라 할 수 있겠지.



두 번째 징크스는 새 옷이야. 새로 산 옷을 입고 다음 날 출근을 하면 반드시 그날 매출은 처참하게 0원이야. 이건 절대 예외가 없었어 15년 동안. 우리 부부에게는 정말 끔찍한 징크스지만 재작년부터는 이 징크스를 철저히 피하려 발악하며 살고 있어. 왜 도대체 옷을 사고 다음 날 입으면 매출이 0원일까? 희한하지?



 장사꾼인 남편은 그렇게 퇴근한 날이면 지난 연재에 말한 대로 코디를 싹 바꿔. 아무리 비싸게 주고 산 옷이라고 해도 훌러덩훌러덩 벗으며 혼자 한탄을 하지. ”에이, 개나 줘버릴 옷.” 우습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어. 나도 처음에는 상황이 그저 웃겼으니까. ‘아니 뭐야, 왜 저래. 괜히 옷 가지고 난리야 정말.’ 겉으로 표현은 안 하고 혼자 이렇게 생각했지만 또 가만히 보니 이게 정말 징크스가 됐더라고. 절대 웃을 일이 아니었어. 장사꾼의 아내로서 징크스를 피하려면 옷을 사고 다음날은 절대 못 입게 해야만 했지.




지난겨울에도, 일하면서 입고 다닐 두툼한 니트를 샀거든, 감촉과 핏이 좋아서 남편이 구매하고 다음날 바로 입으려 했지만 난 철저히 뜯어말렸어. 월요일부터 공치고 싶지 않으면 자중하라며. 남편은 그 말에 바로 수긍했고, 쉬는 일요일에 마트 갈 때 굳이 입어서 더 이상 새 옷이 아닌 상태로 만든 후 출근할 때 입었어. 새 옷을 사도 새 옷이 아닌 상태를 만들어 열흘 만에 출근룩을 완성한 거지.



세상만사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못 할 것이 없다고 사람들은 말하지. 장사할 때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것 같은 이 진리가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아. 특히 시대적 분위기에 영향을 받는 업종이라면 장사꾼이 잘해보려고 아무리 피나는 노력 해도 그 시대가 돌보아주지 않을 때가 있어.



최첨단 장비를 갖춘 동물복지 시스템을 갖춰 놓았더니 갑자기 조류독감이 퍼져서 닭, 오리 등을 전량 폐사 처리해야 하는 그런 상황, 이건 정말 하늘이 원망스러울 때야. 원두커피 유통 업체의 경우도 하늘 길이 막히면 장사하는데 답이 없어. 국가 간 불화나 외교적인 이익 때문에 수출입에 제한이 생긴다면 장사꾼이 아무리 만발의 태세를 갖추어도 곡소리 나는 상황만 전개될 뿐이지.



자영업자는 그런 암울한 때에도 긍정, 긍정을 외치며 한편으로는 불안해하고 노심초사 떨어가며 하루를 살아. 닥쳐 올 시련을 조금이라도 덜 힘들게 겪기 위한 방어태세를 갖추고 평정심을 유지하려 애를 쓰지. 징크스는 이런 마음으로 사는 장사꾼의 전투적인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절대 우스울 수 없고 오히려 존중할 요소인거지.



 징크스는 장사꾼에게 있어 실과 바늘 같은 관계라고 할 수 있어. 어딜 가나 같이 다녀야 하지. 인간의 삶은 생각한 대로 흘러간다는 말이 있잖아. 생각만 해도 불안 한 징크스를 장사꾼은 애써 외면하려 하지만 매출이라는 절대적인 결과에 의존해야만 하는 장사꾼의 삶이라면 오히려 징크스를 피하기보다는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봐.



다시 우리 남편 얘기를 해 볼 게. 원래 타고난 성격이 시원시원하고 인생을 심각하게 사는 것에 대해 반감이 있던 남편이지만 장사 시작 15년이 지난 지금, 일 할 때만큼은 방어하고 대비하려 노력해. 본성은 낙천적인 사람이었지만 오랜 시간 장사하며 인생이 마냥 긍정적이지 않다는 걸 체득(體得)했기에 통찰력을 발휘하려 애를 써. 15년 동안 한 자리에서, 한 업종을 망하지 않고 장사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지.



하지만 아내로서 나는 가끔 안타까워. 우리 남편이 참 고생이 많았구나, 싶은 생각에.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장사하며 우여곡절을 겪으며 본래의 괄괄했던 성격도 많이 깎였어. 될 대로 되라지, 어떻게든 되겠지, 술이나 마시자, 했던 젊은 날도 지금은 스스로 후회하는 것 같아. 무엇이 그렇게 ‘한 성격 하던’ 남편을 기죽게 만들었는가, 발끈하는 마음도 들지만 그래도 감사해. 덕분에 우리 식구 안정적으로 살 수 있으니 말이야. 





마지막으로, 징크스가 미신일까? 종교적인 관점에서 얘기해보려고 해. (왜냐하면 우리 부부는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린 가톨릭 신자거든.) 장사꾼 아내로 15년을 살면서 이제는 내가 남편보다 더 징크스를 피하려 하고 루틴을 찾는 모습을 보며 그는 가끔 핀잔을 놓곤 해. ‘너 성당 다니는 사람 맞냐, 장모님도 너도 신이 보면 참 웃기는 캐릭터일 것이다.’ 이러면서. 



본래 장난꾸러기 기질이 있는 남편이기에 나는 그런 핀잔을 새겨듣진 않아. 도인(道人)처럼 모든 걸 초월해서 세상을 살 수 없기에 종교적인 신념이 있어도 일상이 우리 부부에게 보내는 복선(伏線)과 같은 신호를 결코 무시할 수가 없더라고. 가톨릭 신자다운 표현을 딱 한 번만 하자면, 장사를 하면서 갖게 된 징크스들 또한 ‘주님의 뜻’이라고 여기며 살고 있는 중이라는 거야.



나의 이런 생각을 미신에 의존한다며 비난할 수도 있어. 하지만 15년 넘게 장사를 하며 만들어진 징크스를 경계해서 나쁠 건 없다고 봐. 왜, 그런 말 있잖아. ‘똥이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냐?’라는. 옛날 옛날, 동네 어르신들께서는 복 달아난다고 문지방을 밟지 못하게 하셨고, 다리를 떨지 못하게 하셨지. 풍수지리적으로 머리를 어느 쪽으로 두고 자야 하는지 따지고, 출산을 하면 해야 하는 것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을 구분하고, 봄에 입춘대길(立春大吉)을 써 붙이는 것 등등 미신 여부를 떠나서 이것들은 과거부터 내려져 오는 관습이야. 심지어 공교육에서도 다루지. 잘못된 신념이다, 자신감이 부족이다,라고 치부하기보다 오리엔탈적인 루틴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세상을 두루두루 융통성 있게 살 수 있는 지혜라고 봐.



장사 왜 해? 돈 많이 벌고 싶어서 해. 우리 식구들 부족한 것 없이 잘 먹고 잘 자고 편하게 지내게 하기 위해서 해. 세상에 이름을 알리고 위대한 기업가가 되는 꿈도 너무 좋겠지만 자영업자의 초심(初心)은 가족의 행복을 꿈꾸는 소박함에서 비롯될 거야. 징크스는 이 소박한 꿈을 이루기 위해 스스로 규율을 만들고 성찰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것 같아. 장사꾼 남편을 보며 장사꾼 아내인 나는 이렇게 징크스에 대한 생각을 정리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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