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상에서 피어난 영화
2025년 이후 법이 새롭게 정립되면서 시민들은 자신의 권리를 찾고자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범죄자와 분리되어 살게 해 주세요."
새로운 대통령이 자리매김하면서 조금은 더 안정적으로 살고자 하는 국민의 권리를 무시할 수 없을 수준으로 청원이 계속되자 국방부와 경찰청, 법무부 그리고 사회복지부는 힘을 합쳐 범죄로부터 국민을 안전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냈다.
내 이야기가 시작되는 곳이다.
2025년 이후부터 조금씩 만들어진 지금의 크라임시티는 어느덧 2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이곳은 크든 작든 범죄를 저지르면 이곳에 오게 되기 때문에 경미한 절도죄부터 크게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범죄 형량이 정해지면 크라임 시티로 오게 되는데, 형량을 다 채웠을 때는 본인이 살던 곳으로 돌아갈 수 있다. 하지만 한번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절대 받아주지 않는 비범죄 도시는 굉장히 냉혹했다.
결국 크라임 시티 사람들은 비범죄 도시에 정착이 어렵자 결국 자신의 형량을 다 채웠음에도 크라임 시티를 절대 벗어날 수 없는 요람이 되어버렸다.
처음부터 비범죄 도시는 이렇게 냉혹하지 않았다.
비범죄 도시에 간 사람들은 정착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취업조차 쉽지 않자, 결국은 또 자신만의 방법으로 살아남기 위해 죄를 저질렀다.
그러자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라는 인식과 함께 크라임시티 사람들은 더욱더 현실에서 외면받게 되었고, 지금의 크라임 시티 사람들은 비범죄 도시에 진입하기 조차도 포기해 버렸다.
사람마다 범죄를 일으킨 이유는 다르지만, 비범죄 도시 사람들에겐 그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어쩌면 병균보다 우리 도시 사람들을 더 싫어할지도.
범죄자와 범죄자가 아닌 사람으로 도시를 구분하자 내가 태어난 이 도시는 이미 태어나기 전부터 축하보다는 우려와 비판을 받는 곳이다.
우리 도시의 사람들도 이 안에서 일을 하고, 번 돈으로 세금을 내지만, 이미 이 도시가 지어질 때 막대한 세금이 사용되어서 그런지 도시에 시설이 지어진다고 하면 비범죄자 도시의 사람들은 욕부터 하기 바빴다.
이곳은 각자 정해진 벌에 따라 늘 해야 하는 업무가 다르고, 업무 외에 강제노역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힘든 삶 안에서 사실 누구나 기대고 싶기도 하고, 힘들면 사람에게 위로받기를 원하는 게 사람이다 보니 전쟁 중에도 아이가 태어나듯 크라임 시티 안에서도 사랑이 꽃피우고, 사람이 태어난다.
시티 안이 아이들이 태어나다 보니 병원은 필수이고, 모든 국민은 기본 교육을 받을 권리를 지켜주자는 정부의 지침으로 웃기지만 학교라는 곳도 지어졌다.
사실 학교의 기능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지만, 그래도 모양새는 갖추어야 하니 존재하는 곳이 맞는 것 같다.
나쁜 행동을 한 사람은 미워해도, 아이는 죄가 없다고 하지만 이곳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은 달랐다.
비범죄자 도시에선 크라임 시티 사람들의 존재 자체부터 증오이며, 그들이 낳은 자식 또한 비범죄자 도시의 사람들의 세금으로 키워진다는 인식 때문인지 우리 시티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이름이 아닌 숫자로 분류된다.
이건, 마치
‘너넨 절대로 우리 도시에 넘어 올 수 없는 애들이야!’
하는 선긋기와 같다고 할까?
"2045년, 4월 1일 17시 21분. 1390번째 출생“
의사에 말에 그렇게 내 이름이 정해졌다.
여기는 숫자가 이름이다 보니 5살까지는 내 이름을 이상하다고 느끼지 못했다.
시티 사람은 누구나 목걸이나 명패, 옷에 5-7자리 숫자가 적혀있어서 모두 서로를 숫자로 부르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늘 아침 일찍 부모님이 노동을 나가시면, 심심해서 그림이라도 그리고자 집에 종이가 없는지 찾고 있었다. 매일매일 그림만 그리다 보니 종이가 남아나질 않는다는 아빠의 호통에도 심심한 걸 어쩌겠는가.
할 일 없는 나는 그것만이 내 놀거리였다.
집 밖에 나가면 경찰들이 뛰지 말라며 소리를 지르고, 골목에선 돈을 뺐는 언니-오빠들.
큰 길목에는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 맨날 심부름을 시키며 어린애들에게 장난을 걸기 바쁘니 종이를 찾아 나서기엔 무리가 있다.
그러다 발견한 엄마의 소중한 붙박이장이 눈에 띄었다.
엄마가 늘 자는 자리 머리맡에 있는 장은 중요한 물건을 넣어 두는 곳이라 만지지 말라고 했지만, 지금 내 옆에 없는 엄마는 무섭지도 않았다.
'벌컥'
힘껏 문을 잡아당겨서 장을 열고 안을 천천히 살펴봤다.
"흠.. 엄마는 이렇게 좋은 종이를 두고... 치사해."
약간 색이 바래있기는 했지만 곱게 펴진 종이는 그림을 그리기에 충분했다.
그중 가장 빳빳하고 두꺼운 종이가 껴진 수첩이 보여서 얼른 꺼내 들었다.
"오호~ 이거라면 그림을 여러 장 그릴 수 있겠다."
신이 나서 얼른 수첩을 열어보자, 안에는 꽤나 많은 내용의 글씨들이 적혀있었다.
순간, 너무 많은 글씨에 당혹스럽기도 했지만, 태어나서 이렇게 작은 수첩에 많은 글이 적혀 있는 것은 처음인지라 어떤 글이 적혀 있는 것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엄마, 아빠가 적어준 한글판으로 가서 글씨들을 하나씩 비교해 보며 천천히 읽었다.
"법.. 우.. 원.. 파안.. 걸? 결... 문!"
한 글자를 읽는데도 받침이 많아서 그런가 어린 나이의 나는 글씨가 참 어려웠다.
그래도 세상에서 제일 즐거운 놀이를 찾은 것처럼 신나게 글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이... 르.. 음 바악.. 지 스응?"
이름이 맞다! 늘 내가 듣고 적어보았던 이름이라는 글자가 맞았다.
"우와!!! 이름!!! 이름이 이게 뭐야?????"
신기한 마음에 여러 번 이름을 여러 번 읽어보았다.
"박지승!! 박지승이야! 이름이 박지승이야! 우와!"
숫자만 있던 내 이름과 다르게 한글이 적힌 이름은 나에게 나이트 형제가 비행기를 발견한 것 마냥 신기했다.
그 뒤로 나는 이름이라는 글자를 계속 찾아 나섰다. 이름이 적혀 있을 만한 수첩과 종이를 찾아서 엄마의 수납장을 계속 뒤적거렸다.
"오! 여기도 이름이다! 이름... 기임... 우.. 저엉...!! 김.. 우정? 우정이다!"
마치 친한 친구를 만난 것 마냥 우정이라는 이름을 입 안에서 되뇌었다.
너무 예쁜 이름이라는 생각과 함께 나도 한글 이름을 갖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어린 나이에 알 수 있었다.
'이건 엄마, 아빠의 원래 이름이구나.'
"지.. 승... 우정... 흠"
여러 번 입 안에서 이름을 되뇌며 생각해 냈다.
"지..우..? 지우!! 좋아!! 지우야!!! 내 이름은 지우야!!!"
'철컥, 드륵.. 끼익.. 끽'
"구공아~"
늦은 밤이 된 지도 모르고, 하루 종일 글씨만 살펴보다 보니 밤이 되었다.
온 집안은 어질러져 있었고,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엄마 아빠는 집을 보며 놀랄 새도 없이 내 입에서 나온 말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엄마! 아빠! 나는 지우라고 하고 싶어! 나 이제 구공이 말고 지우라고 불러줘! 응? 지우!! 예쁘지??"
'털썩'
엄마는 왜인지 모르게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고 말았다.
아빠는 그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살며시 안아주었다.
그렇게 난 알 수 없는 슬픔의 공간에서 구공이라는 이름 대신, 지우라는 새이름을 갖게 되었다.
이 글은 상상으로 만들어진 글입니다. 실제 현실과 다릅니다. 또한 개인의 창작물이니 불법 스크랩 혹은 무단복사는 금합니다.